2014년 3월 5일 수요일

0304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Stories we tell ★★★★★

3월4일(화) 11시.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사라 폴리 감독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Stories we tell>(2013) 시사회.

별점: 






다큐멘터리 장르인줄 모른 채 시사회에 참석했다. 사실의 나열과 고발처럼 다큐멘터리 하면 흔히 떠오르는 밑그림 때문에 여러 수상 내역이 적힌 보도자료를 보고도 큰 감흥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만족스러웠다. 한 가족의 삶에서 벌어진 드라마성과 절제된 감정 조절에 탄복했고 무수한 영상자료를 보유한 서구(이 영화는 캐나다 영화다)의 문화에도 감탄했다. 한국은 영상 자료 기록에 대체로 무심한 사회이다보니 더더구나. 

세상을 일찍 뜬 어머니에 관한 회상이 이야기의 큰 틀인데, 딸인 감독이 찍은 가족 구성원들의 회고담 인터뷰 영상과 인터뷰이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과거 영상들을 하나도 패키지 해서 구성한 다큐다. 생전 젊은 시절 영상들을 이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는 내내 놀랍다. 무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질은 보장할 수 없지만 부분부분 단속적으로 촬영한 영상물이 무척 많았다.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전적으로 과거 영상과 현재 촬영된 영상들의 편집에 의존한다. 모든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니, 이야기의 극전 전환을 위한 실제 돌발 상황과 갑작스런 고백들이 언제나 구비되어 있는 거다.   

감독인 딸이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의 인터뷰를 따서 만든 가족 다큐멘터리일 뿐이지만 독특한 면모가 있다. 먼저 원점인 어머니와 연결되어 등장하는 여러 가족 구성원들이 한지붕 한가족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살아오면서 2번의 결혼과 1번의 비밀 연애를 해서 여러 씨가 다른 자식들을 낳았다. 그 중 일부는 그동안 비밀이었다. 그 가족사의 비밀이 다큐멘터리를 극영화처럼 느끼게 만든다. 

식상된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실제 한 사람의 생애와 연결된 여러 사람들의 사연과 고백들이 그 흔한 극영화의 작위적인 드라마성을 훨씬 능가하는 점을 입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할 만큼 화면 전개가 빠른 편집으로 구성되었고, 돌발 상황들로 인해 관람의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흥미진진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매달리는 무한개의 스토리를 섬세하게 주목한다면 괜찮은 예술적 서사를 만들 수 있겠더라. 아이디어 고갈로 지친 예술가가 자기 삶에서 포함된 비밀을 직시하고 거기서 서술의 욕망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비밀 연애의 진상을 공개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다큐멘터리의 자기지시적 고민, 메타 비평적 번민이 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감독인 딸, 비밀연애남, 딸의 법적인 아버지. 이 세 사람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영화 후반부가 그렇다. 어머니의 사생활 보호, 비밀 공개로 상처받을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감독인 딸의 심려와 딜레마, 이에 반해 연애의 과거사를 출판물로 내놓으려는 비밀연애남의 서술의 욕망.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자기시지적 메타 비평이 개입되는 순간이다.  

자기 아내의 비밀 연애를 알고나서도 딸과의 관계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진술에서, 한국 사회에선 체험하기 힘든, 인간 관계를 대하는 성숙한 시각도 느꼈다. 
또 두 사람 사이의 공개적인 연애가 '증인'을 개입시켜서 연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거라는 내레이션를 듣고 느낀 바가 컸다.  


(자막 일부가 올라가고?) 마지막에 삽입된 인터뷰 영상에서 또 한번의 유쾌한 반전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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