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4일 금요일

0314 씨, 베토벤 ★★

3월14일(금) 14시. 왕십리CGV 민복기 박진순 감독 <씨, 베토벤 See, Beethoven>(2014) 시사회.

별점: 








2012년 무대에 올려진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만든 모양인데, 영화 제작사는 그 연극을 제작한 극단 차이무가 공동으로 맡았고 출연진 또한 연극 때와 견주어서, 추가된 조연들이 있을 뿐 사실상 동일하다. 밀폐된 실내 카페에서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여성 셋이 나누는 속사포 같은 노변정담이 플롯의 큰 흐름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누는 여성들의 밀도있는 대화는 분명 연극 무대에선 각별한 친밀감을 주었을 것 같았다. 또 여성 각자의 내밀한 사생활에 포커스를 맞춘 대화일색이어서 무대 가까이에서 배우들을 지켜볼 청중들은 엿듣기의 매력과 가까운 친밀감이 교차된 정서를 느낄 법하다. 그렇지만 이건 영화다. 

카메라에 포착된 배우들의 바스트샷이나 어딜봐도 연극 배우다운 표현주의적 표정연기와 또박또박 발음하는 대사법 그리고 단발성으로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가는 속사포같은 대화술. 이 모두가 이미 충분히 연극 문법에 젖어있다. 하지만 이건 영화다. 연극 무대에서는 친밀감을 더해줬을 카페 실내라는 한정된 무대도 영화로 그대로 옮겨놓으면, 제한된 프레임으로 갑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더구나 이미 세 여인들이 쏟아내는 말폭포로 스크린이 충분히 숨가쁘게 채워진 터인데, 공간까지 협소하고 프레임이 제한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거듭,,, 문제는 연극의 매력을 영화로 번역하지 않고 스크린에 담은 점일 거다. 친구의 말허리를 툭툭 자르면서 끼어드는 속사포같은 여성 특유의 잡담이나,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기술, 여성들의 큰소리 대사를 카페 주인이 우연히 엿듣게 된다는 설정따위가 연극에서나 자연스럽지 영화에선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아무리 연극과 영화가 둘다 허구적 설정에 기반한 시간예술이라할지라도 말이다. 어느 여인에 대한 사랑을 못잊어 동네의 기인이 되었다는 일명 베토벤 아저씨를 둘러싼 각 다른 버전의 사연들을 카페안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털어놓는 모습이나, 난데 없이 카페에 들어와서 썰렁한 웃음을 선사하는 소심한 남자들의 통화 내용이나 술을 주문하는 스님 등의 개입은, 연극에선 여성들의 대화 썰물에 한시적인 휴식점을 찍어주는데에는 필요했을지 몰라도 역시 영화적 서사로 볼 때는 큰 재미를 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씨, 베토벤>의 배우들이 토해내는 대사와 몸짓이 무대에서 근접한 청중과의 호흡이 전제될 때 의미가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연극 작품이 영화로 스크린에 걸릴 때 가장 어색한 게 이 부분이다. 영화적 번역에 대한 게으른 고민이 가장 큰 패착이라고 본다. 특히 여성 셋의 성생활과 관련되어 명씩 돌아가며 일방적으로 털어놓는 긴 시퀀스는 다소 무안하고 거리감까지 느껴진다. 실제 20대 후반 여성 사이의 대화 내역이 과연 저럴까 싶은데, 그거야 허구적 설정이니 봐줄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여성 성생활 고백이 집중된 시퀀스들(이 일단 너무 많고)은 남성적 시각으로 해석된 느낌이 커서 막상 여성들을 타자화 시키는 인상이다.  

무수한 호들갑이 여성 셋중 한명(영-오유진 역)의 고백(이건 스포일러일 수 있어서 밝히진 않겠음)으로 인해 격앙과 격분 어린 충고로 이어지고 사랑을 둘러싼 다소 시시한 철학으로 매듭되는 점이나, 카페에 카페 주인과 또 다른 여성 멤버(하진-김소진 역)만 남았을 때 그녀가 털어놓은 자신의 비장한 사연과 커피에서 위안을 받았다는 마무리는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커피로 생애의 동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얼핏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아무튼 영화적 번역이 심각하게 고민되지 않은 연극의 스크리닝, 그리고 배우들의 연극적 연기력에만 의존한 영화화. 이것이 이 영화의 패착이라고 본다.  


* 배우중 일부는 객석에 앉아 영화를 함께 관람하던데, 대형 스크린 속에서 연기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맨 뒤의 편한 좌석(H8)을 배정 받았는데, 내 옆 자리에 앉은 분은 영화 중반부터 계속 코를 골면서 자서 무안해서 혼났다.
***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출연 배우 일부가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는데, 뒤에 일정도 있어서 시작 전에 나는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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