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47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3회분.
버리느냐 마느냐
상좌. 8090시절 스타들이 출연하는 tvN <방자전> 2014년
상우. 앤디 워홀 <타임캡슐> 1974~1987년
하좌. 송동 <버릴 것 없는> 2005년
하우. 송동 <버릴 것 없는>(부분)
현재의 사용가치는 낮지만 과거사를 품은 연민어린 감정, 그것이 추억이다. 추억은 곧잘 어떤 사물에 덧씌워있기 마련인데, 학창시절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더미, 헤어진 애인이 주고 간 선물, 오랜 치통 끝에 뽑아낸 치아 따위가 추억 때문에 처치곤란 상태로 남겨진 물건이기 십상이다. 추억 집착은 무용한 사물들을 집안에 차곡차곡 쌓는 동기가 된다. 한물간 스타들을 패키지로 묶은 TV방송이 연신 편성되는 이유는 시청자들의 지난 추억을 대리 충족시킬 때 철지난 스타들의 마스크만한 플랫폼이 없어서 일거다.
예술가 중에서 방대한 수집품목에서 신선한 착상을 얻어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앤디 워홀의 수집벽은 남달라서 저장강박증에 가까웠다. 1974년부터 그가 사망한 1987년까지 잡다한 자료를 담은 상자에 날짜와 색인을 붙여 보관했는데 그 수가 무려 612개에 달한다. <타임캡슐>이라 명명된 이 보관상자는 팝아트를 위한 원자재 역할을 했을 것이다. <타임캡슐> 안에는 범죄사진과 치아 틀까지 보관되어 있었다.
저장강박증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한 어머니의 1만점이 넘는 소지품들로 초대형 설치물을 꾸민 중국인 예술가 송동이 있다. 한없이 늘어놓은 낡은 신발들, 쓸모를 다한 라이터와 그릇들이 전시장을 가지런히 채운 설치물 <버릴 것 없는>은 송동의 어머니의 일생을 대리 증언하기도 하며, 관람객들에게 그들의 지난 추억을 환기시키기도 하며, 혹은 중국식 물량공세의 시각적 스펙터클이 되기도 한다. 저장강박증은 깊은 상실감과 애정결핍의 체험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 결핍 부분을 보상받으려고 사물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단다. 비단 저장강박이 아니어도 당장 용도가 없는데도 행여 나중에 쓰임이 생길까봐 집안 가득 무용한 살림을 쌓아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무용한 소지품들 앞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저할 때, 산적한 추억 더미를 과감하게 청산해주는 반강제적 해법이 있다. 주거지를 옮기는 이사가 그것이다. 이삿짐의 부피를 줄여야 하는 다급한 마음에, 애지중지하던 소지품의 절반을 단칼에 처분한 경험이 있을 거다. 죄다 버린 후 홀가분한 깨달음이 내려앉는다. “별 거 아니었네.”
버트란드 러셀까지 인용하자니 과하지만, 수백만 개의 은하 중 단 하나의 은하, 그 속에 있는 3천억 개의 별 중 단 하나의 별,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들 중 단 하나인 지구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환기하면 추억이 벤 소지품과 추억에 대한 집착이나, 나의 존재감마저 모두 티끌처럼 느껴진다. 인생무상을 곱씹으며 눈을 떠보면 어느덧 우리 앞에 새로운 소지품 더미가 또 한가득 쌓여있기 마련이다.
버리느냐 마느냐. 그것이 언제나 문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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