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9일 수요일

0318 도서관전쟁 ★★★★ /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

3월18일(화) 1030시. 롯데시네마 건대 <도서관전쟁 Library Wars>(2013) 시사회.
감독: 사토 신스케   
출연: 에이쿠라 나나, 오카다 준이치, 쿠리야마 치아키, 후쿠시 소우타, 다나카 케이, 이시자카 코지   

별점: 





원작 소설을 지닌 영화로, 동명 소설 <도서관 전쟁>이 출간된 직후 프랜차이즈처럼 만화 애니메이션에 이어 영화까지 각색되어 나온 인기 문화상품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다 보고 귀가해서야 알았다. 대중적 호기심과 기대감을 충족시킬 요인을 많이 내포한 영화다. 점수를 후하게 준 이유는 '유해 도서나 유해 미디어가 범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라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를 소재로 다루되, 유해 도서 금지 입법을 만들고 금서를 압수하는 공권력 행사와, 그에 맞서 금서 해방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이들이 대립각으로 놓고 그들을 대립하는 무장단체로 설정한 상상력 때문이다. 유해도서를 규제하는 단체는 양화대. 유해도서를 보호하는 단체는 도서대다. 도서대는 도서관을 거점으로 활동하는데 중무장한 군사 조직이다. 과연 일본다운 상상력이다. 탄성을 곱씹으며 영화를 봤다.

범죄자의 배후에 그들이 접한 책과 영화가 있으리라는 추측은 더러는 적절할 수 있으나 대부분은 사실과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범죄자가 접한 허구적 서사가 범죄에 사상적 원점이라는 믿음은 두텁다. 범죄의 원점을 정치 사회적 부조리에서 찾게 되면 위정자나 정부가 난처할 터이니 책이나 영화 같은 손쉬운 희생양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점에서 <도서관 전쟁>이라는 소설 혹은 만화 혹은 영화는 매체의 자기변호로 읽히기도 한다. 

후한 점수를 준 또 다른 이유는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대립이라는 사회 문화적 쟁점을 딱딱하고 섬세한 상호 공방으로 그려내지 않고, 무력 스펙터클이라는 허구적 틀을 빌려서 극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영화에서 보듯 양서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사정에는 비단 정부와 보수주의 단체의 압력 만 있는 건 아닐 거다. 가벼운 정보에 경도되는 군중의 선호도와 무심함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더 큰 원인일 거다. 그래서 도서관 전쟁의 장정적 승리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도서대에게 돌아간 영화 말미에서도 이런 대사들이 나오는 거다. "(대중들의) 흥미가 사라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그러니까 계속 싸워야하는 거라고."  

'정론은 옮은 것이지 무기가 되어선 안된다.'라는 도죠 교관의 완고한 원칙은 그가 하급자를 칭찬하면서 했던 말, '유연한 판단'이라는 격려와 살짝 충돌한다. 언제나 실마리 해결의 열쇠는 유연한 판단인 경우가 많은데, 영화 초반부부터 반전의 마지막 장면까지 엄격한 교전 규칙을 지켜야 하는 도서대가 문제를 풀 때는 어떤 개인의 일탈적 단독행동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일탈적 단독행동은 엄격한 원칙 때문에 풀 수 없던 실타래를 풀어준다. 정론은 적이 많고 내부고발자나 배신자도 많다. 정론의 원칙으로만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 

일본 영화를 볼 적마다 그 고유한 예절 문화 때문에 정서적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 주연 카사하라는 이요원을 약간 닮았고, 테즈카는 원빈을 약간 닮았으며, 니시나 사령관은 권해효를 약간 닮았다.

** 양화대와 도서대의 교전이 장례식과 교차편집된 영화 후반부 장면은 <대부1>에서 영세 장면과 연속 암살 장면의 교차편집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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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화) 1630시. 메가박스 동대문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What Maisie Knew>(2012) 시사회.
감독: 스콧 맥게히 & 데이빗 시겔   
출연: 줄리안 무어, 오나타 에이프릴,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스티브 쿠건 

별점: 






아역 배우를 주연으로 세운 성인물이다. 이렇게 말하면 통 감이 안잡힐 거다. 성인들이 결혼 사랑 이별 등으로 복잡하게 엮이는 관계망을 조망하는 영화인데, 그 매개가 어린 미성년 소녀라는 얘기다. 매우 특이한 구성으로 성인들의 갈등을 풀어간다. 아이가 잠깐 화면에 등장하는 게 아니고 화면에서 가장 많은 빈도로 출연한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기운이 감돌기 때문에 마음 편히 관람하게 되진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성인 세계의 극단성을 미성년의 아이를 중심에 놓고 주도한 점에서 높은 실험정신이 느껴진다.  

법적인 양육권을 주장하며 아이 때문에 대립하는 이미 갈라진 부부와 그들과 이용 가치 때문에 만나는 다른 성인들과의 관계망을 순수한 눈으로 조망한 영화다. 영화가 빛나는 점은 파국으로 치닿는 감정 싸움에서, 격정에 사로잡힌 어른들은 대체로 이성을 잃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반면, 항상 무표정하지만 침착한 모습의 아이는 이들과 대조된다는 점이다. 아이의 어린 감정이 충분히 타칠만한 사태들이 속출하지만 그런 비극 앞에서 관객에게 아이의 눈물 동냥으로 호소 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아이는 딱 한번 찔끔 눈물을 보인 게 다다. 이 얼마나 대단한 감정 절제인가. 대단함. 

친부모, 이혼한 친부모의 남자애인/새아내 그리고 어린 아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이들의 연기력이 모두 출중하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정작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불성실한 친부모가 나온다. 그러나 잘 뜯어보면 그들을 악한으로 몰아세우는 인상은 없다. 선명한 선악 구도는 쾌감을 안길 수 있지만, 실제 인간관계를 그릴 때 있어서 선악구도는 사실성을 훼손하기 쉽다. 

"내일 (엄마말고 다른 사람들이랑) 해변에 갈 거냐?"는 친엄마의 질문에 아이가 답변하는 "응"은, 친부모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 쌓인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간명한 긍정 답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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