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5일 화요일

0324 필로미나의 기적 ★★★★★ / 웨이스트랜드 ★★★★

3월24일(월) 14시. 메가박스 동대문 <필로미나의 기적 Philomena>(2013) 시사회.

별점:  








50년 간 주변에 숨겨온 자기 아이를 찾는 어느 나이든 여성의 사연이 스토리의 뿌리이지만, 튼실한 가지들이 무성하게 매달린 이야기를 지닌 영화다. 흔히 '이 영화는 실화에 기초했다'는 자막이 스크린 위로 뜨면 인간 역정을 드라마로 만든 작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보는 내내 김이 새기 마련인데-특히 유명인사를 다룬 영화들일 경우, <필로미나의 기적>은 실화가 들려준 사연도 놀랍지만, 그것을 영화로 각색하여 내놓은 허구적 연출물 마저 놀랍다. 명백한 제도적인 악행이 저질러졌음에도, 선악구도를 엄격하게 양분해서 관객의 감정을 격동시키지 않은 점이 특히 섬세하다.   

<필로니마의 기적>은 두 주인공의 사연으로 엮였다. 주인공 필로미나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청소년기 수녀원에서 지내던 소녀시절에 애인의 아이를 임신한다. 수녀원 측에서 그녀 몰라 거금을 받고 그녀의 아이를 미국에 임양시켜서 아들과 생이별하게 된 불운한 과거를 품고 있는 나이든 여성이 필로미나다. 또 다른 주인공은 그녀의 사연에 관여하는 전직 BBC 기자 출신의 중년 남성 마틴이다. 필로미나(주디 덴치)와 마틴(스티브 쿠건)은 협력 관계에 있지만, 긴세월 서로 상반된 견해를 품고 살아와서 자잘한 충돌을 낳는다. 필로미나는 수녀원이 자신의 아들을 외국에 돈 받고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가톨릭신자여서 수녀들의 태도를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반면, 오히려 관찰자인 마틴은 회의적인 무신론자여서 수녀원의 태도에 필로미나보다 더욱 격분한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입양된 아들의 소식을 얻고 미국으로 향하는 두 사람. 아들은 미국 공화당에서 요직에 있었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995년 HIV로 사망한 동성애자이기도 했다. 미국 공화당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아들은 생전에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지 못했다는 사연을 들은 필로미나는 "어릴 때부터 예민했고 멜빵바지를 즐겨입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답하는데, 이 대사에 객석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다. 필로미나가 자신에게 친아들(해외에 강제 입양된)이 있었음을 숨긴 것처럼, 아들도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숨겨왔던 거다. 

미국에서 아들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 아일랜드에 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전언을 듣고는, 50년 내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들을 생각한 필로미나는 크게 실망한 채 고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나, 마틴은 아들의 초상사진 속에서 '아일랜드 하프' 모양의 뱃지가 아일랜드맥주 '기네스'를 비교해서 보여주며 아들이 아일랜드를 잊지 않았다고 그녀를 설득한다. 수소문한 결과 아들은 에이즈 감염으로 사망에 임박하자 자신을 임양시킨 아일랜드 수도원을 직접 찾아 친모를 찾았고, 실제 사망 후에도 그의 유지에 따라 아일랜드 수도원에 묻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래서 마틴과 필로미나는 아들의 입양 정보가 없다고 거짓말한 수도원을 다시 찾아야했다. 이때 마틴이 인용하는 T.S. 엘리엇의 시: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필로니마의 기적>의 질감은 두 종류의 순수한 주인공의 조우가 만드는 것 같다. 마틴은 불의에 의분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고, 필로미나는 성욕 때문에 임신한 자신의 탓이 크고, 양육권 포기 각서를 썼기 때문에 아이의 입양 정보를 숨긴 수도원을 탓할 수 없다는 극도의 순수함을 지녔다. 이것이 어떤 문제 앞에서 두 사람의 합의를 지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이야기가 작위적인 드라마로 주저앉지 않는다.  

칼 세이건의 원작을 토대로 만든 <컨택트 Contact>만큼은 아니어도 <필로니마의 기적>도 제도 종교의 공공연한 폐악을 둘러싼 두 주인공의 공방이 이야기의 한축을 형성한다. 수도원의 규율에 어긋난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질책하면서도 고해성사를 하러 들어간 필로미나가 아무런 고해도 하지 않고 성당을 나와서 마틴에게 (수도원의 잘못과 관련된)모든 상황을 세상에 공개하자고 결의하는 장면에선 아름답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수녀원에서 마주친 늙고 완고한 수녀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마틴을 보고, "남을 미워하면 자기만 망가진다"며 "당신처럼 되고 싶진 않다"고 선을 긋는 필로미나의 순수함은 여운이 된다. 바로 이런 실화/혹은 연출이 이 영화를 2류로 빠져들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필로미나의 이야기를 후일 책으로 묶어낸 마틴이 영화에서 언론사와 휴먼 드라마에 관해 나누는 대화도 재밌다. 휴먼드라마는 가식적으로 인물을 미화하는 것이어서 그런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은 대체로 멍청한 소비자라고 밝힌 대사. 또 편집자는 책(혹은 기사) 제목을 정할 때 제목이 어려우면 일단 꽝이라고 하는 대사. 웃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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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월) 1630시. 메가박스 동대문 <웨이스트랜드 Waste Land>(2010) 시사회.

별점: 








과연 무수한 '관객상'을 받은 영화였다. 일반적 관객에게 호소력이 큰 영화로 보였다. 브라질 현대미술가 빅 뮤니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작품의 완성도만 따지면 별점을 4개씩 주긴 어렵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2010년도 상영된(그보다 훨씬 이전에 촬영됨) 다큐멘터리라지만 화질이 지나치게 조악했고 핸드헬드 카메라의 떨림도 정도 이상으로 흔들린다. 그런 열악한 영상 조건마저 빅 뮤지즈의 쓰레기 예술에 대한 동기화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흔한 영화들의 화질과 비교했을 때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뮤니즈가 털어놓는 원경을 바라볼 때의 전망 소감은 자신의 창작 메커니즘의 원점이기도 하다. 즉 멀리서 볼때는 제법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세부를 바라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전망의 논리라는 사실 말이다. 전망의 아름다움에는 흔히 디테일은 누락되는데, 빅 뮤지즈의 작업도 큰 틀에서 보면 디테일이 모여서 형성하는 놀랄만한 전체 화면으로 승부하는 점에서 전망의 논리를 따른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빅 뮤니즈의 작업은 디테일의 실체를 확인할 때 전체 화면의 감동이 배가하게 된다는 점. 

<웨이스트랜드>를 통해 평소 알고 있던 빅 뮤니즈의 작업의 실제 규모와 그것의 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료와 관련된 개념을 정하고 밑그림이 될 장면을 먼저 촬영한 후, 마치 극사실주의 회화의 창작 방식처럼, 빔프로젝터로 바닥에 촬영된 사진의 영상을 투사한다. 바닥에 비친 이미지의 윤곽을 따라 쓰레기들을 배열해서 명암과 소묘를 조정한다. 빅 뮤니즈의 작업은 놀랄 만하지만 아주 흔한 미술사의 도상을 이용하는 점은 손쉬운 감동의 논리를 따른 셈이다. 그래서 비평적으로 논평거리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미술계의 배타주의가 만든 빈틈을 잘 공략한 셈이다.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빅 뮤니즈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전공자 그룹과 미술시장에까지 호소력을 행사하는 이유도 그런 빈틈 공략 때문일 것이다. 그 점에서 빅 뮤니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라는 화두에 가장 어울리는 현대미술가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반 대중이 시각예술에서 어떻게 감동 받는지를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작업의 주제와 연관이 깊은 사람들을 동참시키고, 그들이 작업 속에 직접 등장하면서 전에 없는 감동을 체험 하게 만든다. 그런 일반인의 감동 드라마와 그들의 이후 삶에 대한 영화 말미 스케치는 영화를 교조적인 감동 스토리로 꾸미는 것 같아서 맘에 걸린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후 삶을 설명할 필요는 있는 영화로 보였다. 

1983년 총상을 입어서 받은 현금 보상 때문에, 우연히 미국을 건너가게 된 빅 뮤니즈는 미국에서 고기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을 했다고 진술한다. 그 체험이 현재의 쓰레기 작업의 밑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사회적 과제를 예술로 연결시키는 일에 관심이 있고, 세상의 일을 외부에 알리는 일에 주력한다고 털어놓았다. 쓰레기를 줍는 브라질의 카타도르들을 데리고 '협업'의 형태로 대형 조형물을 구성하는 연출방식은, 주제의 현재성도 살리면서 협업 체계라는 동시대의 창작 흐름을 따르는 것일 게다. 

별 4개 씩 준 이유는 내가 3일 전 입주한 신림동 재개발 예정인 강남아파트의 형편 때문이다. 감히 비교할 순 없어도 이 아파트의 단지 안에도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서 있다. 세계 최대 쓰레기 집결지라는 브라질의 쓰레기 매립지에 카타도르라고 불리는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악취가 진동할 게 분명한 쓰레기 위를 거닐면서 물건들을 태연히 줍는 모습은 내게 큰 감동을 줬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카타도르들은 그 곳에서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어떤 18세 여성-12살 때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함-은 더러 쓰레기 더미에서 멀쩡한 음식물을 찾아내어 그걸 먹기도 한다고 태연하게 털어놨는데, 그런 고백들마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더구나 이 동네(신림동)는 재활용품 수집하는 차량들이 온종일 방송을 틀면서 동네를 헤집고 다닌다. 그 점마저 감정의 동기화를 부추겼다. 

이 다큐멘터리는 촬영 과정에서 딜레마와 만난다. 유명예술가와 협업에 참여한 쓰레기 줍는 일을 하는 카타도르들의 번민이 생긴 것이다. 사정이 훨씬 나아지자 자신의 생의 터전이라고 고백한 쓰레기 줍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된 것. 빅 뮤니즈는 다른 세상을 체험하게 할 때 진정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이고, 번민하는 카타도르들이 설령 다시 매립지로 되돌아간들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한 사람들이어서 상실감마저 완충될 거라고 간단히 응답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명성 때문에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자, 단순한 시선이 생겼고 소유에 대한 욕망도 달라졌다는 빅 뮤니즈의 독백도 공감이 갔다. 어려운 일(83년 총상)을 겪은 빅 뮤니즈나 어려운 일 때문에 매립지로 흘러들어온 카타도르들에게서 남과 다른 관대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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