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일 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미디어 아트 업데이트 실패(씨네21)

* <씨네21>(94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1회분. 지난주 실렸는데 한주 늦게 포스팅한다.



업데이트 실패 


상좌. 업데이트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대화상자
상우. 윈도우 8.1 업데이트 실패를 알리는 대화상자
하좌. 히로시 스기모토 <부처의 바다>(1995) 
하우. 히로시 스기모토 <가속하는 부처>(1997) 



현대인의 시각 체험이 모니터 스크린으로 수렴되는 세상이다. 개선된 스크린 환경을 지원하려는 시도가 끝없는 업데이트 경쟁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럽다. 업데이트 설치를 권유하는 지속적인 대화상자의 출현은 보기의 패러다임이 쇄신되었다는 알림일 것이다. 컴퓨터 환경 업데이트는 최신 시각 체험을 위해 기존 패러다임과 결별을 고하는 신호다. 최신버전으로 갈아엎은 컴퓨터는 기존보다 나은 볼거리 환경을 제공하지만, 사용자들이 항상 최신버전을 주저 없이 택하지는 않는다. 기존 운영체제에 이미 최적화된 심신의 관성에 편히 주저앉고 싶어서거나, 혹은 최신버전으로 업데이트된 컴퓨터 환경에 부적응한 나머지 기존버전으로 되돌아간 쓰린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신버전 업데이트를 순조롭게 보장하는 조건은 크게 둘. 우선 사용 중인 컴퓨터가 업데이트를 수용할 만큼의 스펙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은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새로운 환경 변화에 직면하겠다는 사용자의 의지이다.

<부처의 바다>(1995)는 일본 사진가 히로시 스기모토가 교토의 산주산겐도 사찰에 모셔진 천수관음 조각 1001개를 인화지에 담은 대형 사진이다. 히로시 스기모토는 2년 후 이 사진 작품의 미디어 아트 개정판을 내놓는다. 미디어 아트로 업데이트된 작품 <가속하는 부처>(1997)는 고정된 사진 프레임 안에 갇힌 부처 군상이 흡사 전시장 실내로 밀려나오듯 채워지는 인상을 남기는 영상물이다. 미디어 작품 <가속하는 부처>는 사진 작품 <부처의 바다>의 업데이트 버전으로, 사진의 정태성에 감각 자극을 한정짓지 않고 역동하는 미적 체험으로 확장시키려는 예술가의 욕망이 매체 업데이트로 구현된 경우일 것이다.

뉴미디어 아트를 뉴미디어 시대의 관객이 대체로 기피하는 현상은 역설 같다. 왜일까? 감동이란 관객이 매체 위에 실린 예술가의 메시지(정보)를 온전히 수신했을 때 발생한다. 뉴미디어 아트의 출현은 감동이라는 메시지를 신속히 나르기 위해서 최적화된 동시대 매체를 사용한 경우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미적 체험을 기존 버전에서 구현하려고 관객의 고집이 업데이트 선택을 기피해서다. 업데이트 갱신이 빠른 뉴미디어 아트와 지난 시절 미적 체험을 고수하는 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여느 현대미술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을 훨씬 능가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감상자의 업데이트 거부가 만든 지체 현상.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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