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일 목요일

0402 은밀한 가족 Miss Violence ★★★★☆

4월2일(수) 16시30분. 왕십리CGV <은밀한 가족 Miss Violence>(2013) 시사회.

별점: 







* 반전이 중요한 영화인 점에서, 이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생일 파티에서 빚어진 돌발적인 참사 장면이 제시되기 앞서, 노년의 남성이 손녀딸의 생일을 축하하며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친밀한 스킨십을 나누는 장면 그리고 그런 스킨십에 영 내켜하지 않는 여자아이들의 표정으로부터 성희롱의 인상을 짧게 받긴 했다. 그러나 노년의 남성과 그 어린 여자아이들이 아버지와 딸 혹은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근친상간적 단서로 보기엔 너무 도약일 수 있다고 느끼면서 처음 받은 인상을 지워버렸다.

영화 후반부를 보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으로 엄격한 가풍을 고수하는 어느 노년의 괴짜 남성과 그 밑에서 기계처럼 꽉 짜인 가풍을 따르는 비정상적으로 순종적인 여자 가족 구성원들(아내, 딸, 손녀, 손자)의 다소 지루한 에피소드의 연속처럼 읽힌다. 그래선지 시사회를 보는 내내 관람 도중 극장 밖으로 나가는 관람객들이 속출하는 걸 지켜 봤다. 말도 안되는 엄격함으로 가족 구성원을 통솔하는 나이든 남성의 고루함이 일면 이 영화의 전부인 양 이해될 만했다. 영화의 전반부만 보면 그랬다. 그렇지만 영화는 끝까지 지켜 봐야한다.   

엄격한 가풍 때문에 가족들의 모습은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취하는 정적인 포즈를 연상시킬 때가 많다. 남성의 가부장은 네모 반듯한 식탁의 정중앙에 앉은 그와 양편으로 나뉜 가족들로 정형화되곤 한다. 남성이 복지사에게 고백한 대로 그의 가정에서 관찰되는 '힘겹게 이룬 평온'은 더러 부자연스운 화면 프레임으로 속출한다. 영화 스토리를 형식주의적으로 구성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노년의 주연 남성은 예측 가능 범위를 벗어나면 독재적으로 변신하고 만다.  예측 가능성에 집착하고 일정이 딱딱 떨어지도록 계획을 짜는 그의 성품이 가족의 대화 단절을 낳는다. 이 장면에서 나름 '플랜맨'으로 사는 나 자신을 반성적으로 되돌아 봤다. 

남성의 엄격함 만큼이나 영화 프레임도 엄격하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올라오는 크레딧은 아무 배경음악 없이 무음 상태에서 검정 화면에 고전적인 흰색 타이포그라피로 올려진다. 그 장면마저 섬뜩하다.  

아무튼 영화 후반부에 배치된 반전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반전을 예측한 관객은 매우 소수이거나 전무할 수도 있다.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노년의 사내가 가족 구성원을 지배한 중앙집권적 통제력은 상식을 뛰어넘는 성적인 지배에서 오는 거였다. 그는 가정이라는 은밀된 울타리 안에서 장성한 딸도 어린 손녀도 성을 매개로 관계를 맺는 성주였다. 딸과 손녀의 매춘을 주선해서 생계를 삼는 상상 초월의 가족 성매매 브로커였다는 것.  

<은밀한 가족>은 일면 굉장한 영화적 시도라는 느낌이 든다. 영화에 허용될 수 있는 연출의 최전선까지 표현과 상상력을 밀어붙인 점, 후반부의 반전이 평균치 관객의 윤리 감각에 위협적인 도전이 되는 점, 세상 어디엔가 존재할 법한 극소수의 불편한 가족 진실을 소재로 선택한 점, 무엇보다 복잡하고 일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영화 후반부에서 충격적인 장면으로 깔끔하게 해결되도록 한 점 때문이다. 


* 장성한 딸 엘레니로 출연하는 '엘레니 로시누'의 외모는 얼핏 내가 좋아하는 메조 소프라노 바셀리나 카사로바를 아주 약간 닮아서, 혹시 카사로바가 성악을 넘어 무대 연기에도 도전한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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