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3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차원 붕괴의 유희 (씨네21)

* <씨네21>(951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5회분.



차원 붕괴의 유희






상좌. 펠리스 바리니, 베르샤유 궁전 통로에 설치한 ‘여덟 모서리’ 2006
상우. 안드레아 만테냐, '신혼의 방'의 둥근 천장 프레스코 1465~1474
하. 에드가 뮐러의 거리 분필 예술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 회화의 숙명은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2차원 예술의 한계를 안고 있다. 3차원처럼 보이는 착시를 극대화 시키려고 원근법과 갖은 눈속임 기술이 개발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극사실주의 그림이 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새의 눈을 속였다는 솔거의 그림 혹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사이의 눈속임 그림 경쟁 같은 신화가 동서 화단에 전해지는 건, 3차원에 근접하는 재현 기술이야말로 2차원 예술인 회화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기 때문이리라.

극사실주의 그림의 우월함이 전시장 안에 갇혀있는 동안, 또 다른 눈속임 기술의 극단은 비주류 화단에서 실험되고 있었다. 길거리로 전시공간을 확장한 분필 예술가(chalk artist)들이다. 그들은 실제 공간과 그림이 연속되는 것처럼 연출했다. 분필 예술의 눈속임은 가령 정형화 된 회색 도시의 마천루(현실) 안에 난데없이 폭포와 정글(그림)이 등장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분필 예술가의 공공미술은 특정 각도에서 볼 때만 착시 효과가 발생하는 점에서 ‘각도 특정적 예술’이다. 길바닥에 그려진 분필 예술의 착시 효과는 확정적인 현실의 공간을 해체한다. 분필 예술의 경이로움에 쏟아지는 대중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한계점도 있다. 그들의 주제가 곧잘 환상적인 형상으로 수렴되어 천편일률적으로 흐리는 점이 그것이다.

그림을 실제 공간과 연결시켜서 3차원의 환영을 만드는 기술은 현대 분필 예술가 이전부터 계보가 있었다. 이탈리아 두칼레 궁전 안에 만테냐가 15세기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신혼의 방 Camera degli Sposi>이 대표적이다. 궁전의 평평한 천장에 만테냐가 단축법으로 그려 넣은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둥그렇게 파인 건축적 구조물처럼 보인다. 둥그런 구멍 주변으로 천사와 인물들이 모여 아래를 내려 보는 것처럼.

2차원 캔버스에 3차원 착시를 올리는 기술이 회화의 전통이고, 2차원 길바닥에 현실의 공간들과 연속되는 3차원 착시를 유발하는 게 분필 예술가 혹은 만테냐의 실험이었다. 반면 3차원 공간을 2차원처럼 오인하게 만든 비주류 눈속임이 현대 예술에서 시도 되었다. 스위스 예술가 펠리스 바리니의 환경 그래픽은 마치 3차원 공간 위에 색 도장을 찍은 2차원 사진처럼 보이게 만든다. 분필 예술가처럼 바리니의 공공 디자인도 특정 각도에서 바라볼 때 착시 효과가 발휘되는 점에선 같지만, 평평한 바닥면이 아니라 다면적인 공간의 배율과 원근법을 정교하게 계산한 산물인 점이 다르다.

거리감을 판단하는 눈의 관성에 편승해서 3차원 같은 2차원을 제작하는 게 회화의 전통을 만들었다면, 펠리스 바리니의 환경 그래픽은 눈의 관성을 역이용하여 멀쩡한 3차원 공간을 2차원처럼 착시하게 한다. 확고부동한 차원이 허물어질 때의 쾌감은, 흔히 일상의 공식을 허무는 예술의 본질과 상통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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