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973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6회.
표현주의, 감정의 해방구 또는 광신
상. 상대 선수를 조롱하는 말을 마이크로 전하는 프로레슬링 무대
하. 무수히 생산되는 리얼리티 방송 가운데 ‘정자매 리얼리티’
어딜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데, 대중의 열광적 지지가 모이는 히트상품이 있다.
프로 레슬링이 그렇고, 장르영화에서 배우의 오버 액션이 그렇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연출도 그러하다. 선거철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자들의 정치 약속 또한 그렇다. 이들은 표현주의 미학을 상한선까지 밀어붙인다.
각본에 따라 우승이 예정된 선수는 상대방을 무력화 시키는 피니쉬 무브로 승부를 가른다. 모든 선수들은 승패를 결정짓는 자신만의 피니쉬 무브를 보유하고 있다. 목을 쥐어 내동댕이치는 ‘초크슬램’ 팔꿈치로 가격하는 ‘엘보우’, 높은 곳에서 온몸을 던져 상대를 내리찍는 ‘스완턴밤’ 등. 피니쉬 무브가 시행되는 다소 긴 시간동안 상대 선수는 그저 두 손 놓고 피니쉬 가격을 기다리는 식이다. 겉으론 정신을 잃은 척 눕거나 서있지만 아마 각본일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표현주의는 곡예에 가까운 격투기로도 부족했던지, 격돌하는 두 선수는 상대에 대한 과장된 증오심을 관객이 죄다 듣도록 마이크로 전달한다. 일테면 격앙된 내면마저 가시화하는 설정인 거다.
리얼리티 방송의 차별성은 연예인의 실제 사생활을 훔쳐보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각적인 대사나 표정연기에 치중한 편집은 이미 리얼리티를 충분히 훼손하며, 출연자 스스로도 오버 액션의 자기주문을 거는 것 같다. 이런 설정은 시청자가 리얼리티 방송을 탓하는 결격사유이긴 고사하고 열광 요인이 된다.
개신교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저분한 키치 조형물로 장식된 연단 앞 목사의 설교도 비슷하다. 목사의 설교는 쇼맨십과 격앙된 표현의 총체다. 그러나 현장의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일치된 후렴처럼 아멘 혹은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목사에게 화답한다.
내공이 실린 열연과 감정 과잉은 곧잘 혼동된다. 이런 혼동을 정당화시키는 건 다수 관객의 동조에서 온다.
프로레슬링, 리얼리티 방송, 개신교 설교 방송 등. 이 모두는 얼핏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인기몰이의 비결은 허구적 쇼맨십에 있다. 리얼리티의 훼손이라는 허물도 쇼맨십과 구경거리라는 반대급부와 맞교환된다. 대중이 공정거래로 묵인하는 거다.
감정 과잉으로 치우친 모든 종류의 표현주의는 유치하고 싸구려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표현주의는 털어내지 못한 격함 감정을 대리 해결하는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즉 프로레슬링, 리얼리티 방송, 개신교 선교 등의 히트 상품은 현실을 우롱하는 집단 최면의 결과이기 보다,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대중이 리얼리티의 거짓을 용인한 결과일 게다. 그럼에도 과한 표현주의적 열광은 항상 위험하다. 이들을 쇼맨십으로 이해 못하고 진지한 현실로 착각하는 소수의 관객은 늘 광신자가 되며, 이들의 굳은 신념은 예외 없이 현실의 품격을 깎는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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