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77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8회.
광대역 인맥 사진이 증언하는 것
상좌. 동료 연예인을 초대한 생일파티를 트위터에 공개한 낸시랭 2013년
상우.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을 합성한 새누리당 사천시장 후보의 선거공보물 2014년
하. 유다의 머리에만 광배를 그리지 않은 기독교 도상 1685년
기념 촬영은 특정인에게만 허용된 문화가 아니다. 만인이 카메라를 소유하게 된 이래 기념촬영은 특별한 이벤트이긴 고사하고 일상 문화의 일부로 정착했다. 그럼에도 연예인들 사이에서 촬영된 기념사진은 흔히 톱뉴스에 오른다. 연예인이 SNS 같은 개인 미디어에 동료 스타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은 약속된 기사감이 된다. “아무개, 광대역 인맥 새삼 화제”라는 제목을 단 기사에는 “아무개, 우와 대박이다. 부럽” 등의 네티즌 반응까지 짧게 소개된다.
일반인이 연예인 사이의 우애를 남달리 부러워하는 건 아닐 거다. 연예인의 기념사진은 인맥 과시에 목적을 뒀기에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거다. 그가 행한 일은 다른 유명 인사들과 같은 프레임 안에 자신을 위치시켰다는 점 외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인맥사진은 그의 고유한 능력인양 인용되고 믿어진다.
얼핏 네모진 사진 프레임 안에 뒤엉킨 연예인들은 서로의 인지도를 흡수하면서 상호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인맥 과시용 사진은 자기 유희용이기도 할 테다. 인맥 과시용 사진은 일반인과 스타 사이를 가르는 광배 효과를 발휘한다.기독교 이콘 회화에서 성인의 머리에는 광배를 올리는 전통이 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머리에서 광배를 지운 것도 성인과 배신자 사이를 구별하려는 시각적 표시였을 거다.
달리 하는 일 없이 동료 유명인과 같은 시공간에 있었음을 기록하는 건, 유명세를 날로 먹으려는 무임승차 혹은 불로소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유명인과 기념촬영을 하려고 줄을 서는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향으로 볼 때, 인맥과시는 자연스러운 성품일 것이다. 전성기를 누리는 사람과의 친분이나, 성능 좋은 제품의 소유를 자랑하는 건, 자신의 남다른 생존력을 과시하려는 심리에서 올 거다. 그렇기에 인맥 과시용 사진은 진화적으로 체득된 성품인 것 같다.
유명인사의 인맥과시 사진을 상업적으로 옮긴 것이 스타를 모델로 채용한 흔하디흔한 상업광고들이다. 피겨스케이팅 실력과 4세대 이동 통신기술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김연아의 광배를 쓴 LTE제품은 타사 제품보다 비교우위가 있는 것처럼 소비자에게 착시를 일으킨다.
인맥과시용 사진에 동료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알리바이가 숨어있는 건 분명할 거다. 그렇다고 스타들끼리 친분을 기념하려고 촬영하는 사사로운 사진을 차갑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그래선지 활동이 저조한 인사는 기념사진의 프레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적다. 이렇듯 기념사진은 종종 현역과 퇴역을 구분하는 시각적 증거물로 체감된다. 사진의 무서운 힘.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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