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감정과잉과 절제 사이-아니쉬 카푸어 (씨네21)

* <씨네21>(975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7회.



감정 과잉과 절제 사이의 말춤

 

아니쉬 카푸어, <무제>(의 부분), 2007
아니쉬 카푸어와 친구들, <자유를 위한 강남 Gangnam for Freedom> 2012


단도직입적인 감정표현과 직설화법은 비평가와 논객에게는 비교우위와 변별력으로 간주될 수 있으나예술작품이 그 방식을 택하면 대중의 지지를 받더라도 비평가에겐 감정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극적인 카타르시스를 향한 높은 수요 때문에직설화법과 감정과잉은 대중영합주의의 카드다예술가는 아쉬울 때면 감정과잉의 카드를 곧잘 빼든다.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감정과잉 메시지 앞에 노출된 관객은 해석의 부담을 내려놓고창작자가 건네준 음식을 일방적으로 받아먹으면 된다해석의 수고를 덜어주는 예술은 대중을 배부른 돼지로 접대한다흔히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예외 없이 비평가들의 융단폭격 대상이 되는 까닭은아무 생각 없는 작품의 상업적 성공이 대중 우민화라는 값비싼 지불을 한 결과여서다.

감정의 해방구로 작동할 때 표현주의는 순기능으로 작동하지만흔히 격한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은 예외 없이 격조를 유지하지 못한다감정과잉 예술의 반대편에 감정절제의 미학이 있다추상회화나 미니멀리즘 조각에선 스토리를 찾기 어렵다아니 스토리를 애당초 담지 않은 순수 형식 실험에 가깝다추상 예술에 무제라는 제목이 유독 많이 채택되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리라스토리가 누락된 작품은 당연히 난해하다그것은 해석의 지평을 무한정 열어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열린 해석의 지평에 뛰어드는 극소수 애호가들이 내용 없는 작품을 읽는 뾰족한 해법을 갖고 있는 것 같진 않다아마 그들만의 이심전심이 미니멀리즘 미학을 즐기는 전부일 거다그 점 때문에 미니멀리즘은 종종 가식처럼 느껴진다.

표현주의의 감정과잉과 미니멀리즘의 감정절제는 미술시장에선 잘 통하는 극과 극 전략이다아트 페어에서 항상 고정된 지분을 차지하는 부스는 아무 내용 없는 모노크롬 회화와 반 고흐의 계승자인양 안료를 덕지덕지 화폭에 처바른 표현주의 회화다.

기하학과 유기체의 형상을 뒤섞은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감정과잉과 감정절제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것 같다신묘한 제작 공정은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작품의 표면에 마술적 신비주의가 묻어 있다선명한 메시지는 지양하되해석의 지평을 무한히 열어둔다기하학적 형식미와 재료의 물질성으로 수렴했던 전대 미니멀리즘의 도그마에 연루되지도 않는다아니쉬 카푸어가 절제된 색채와 형태로 귀결되는 점은 미니멀리스트이지만그의 단색조 작품은 여지없이 확장된 표현을 과시하며늘 어떤 형상으로 귀결되곤 한다.

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그였기에그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표현의 제약을 상징하려고 입을 봉하고 손에 수갑을 찬 채,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집단 말춤을 유명 미술인 동료들과 춘 것도 그의 종래 미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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