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3(목) 16시30분. 메가박스 동대문. <테스 Tess>(1979) 시사회.
별점: 보류 (30년전 영화를 지금 정서로 평가하긴 힘들더라)
1979년 개봉(국내 개봉은 1981년)된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가 칸영화제 클래식 복원 프로젝트에 따라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복원되어 재개봉한다. HD급 화질이라고 보도 자료에 소개되어 있던데, 워낙 필름으로 제작하던 옛시절 영화인지라 오늘날의 고화질 관점에서 보면 안된다. 1979년의 고풍스러운 크레딧 매너도 눈에 띤다. 오프닝과 클로징 크레딧이 단 몇 초만에 끝날 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을 대문짝 만한 크기로 화면에 올린다. 그러고보니 개봉 직후 국내에서도 여배우의 정측면 얼굴을 크게 담은 <테스>의 영화 포스터가 유행했던 게, 아른아른 기억 난다.
오프닝 크레딧에 "이 영화를 샤론(1943– 1969)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뜨는데, 그가 결혼했던 미모의 여배우로 20대 중반에 사망했다. 1979년에 개봉한 <테스>에 과거 연인에 대한 이런 헌사는, 로만 폴란스키에게 늘 따라붙던 여성편력을 생각하면 의아한 매너 같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 같기도 하다. 영화가 개봉하기 불과 2년 전인 1977년. 43세의 로만 폴란스키는 13살 소녀 사만다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는 바람에 영국으로 도피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테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로만 폴란스키는 <테스>를 개봉하기 3년 전인 1976년부터 향후 <테스>의 여주인공이 될 당시 15세 소녀 나스타샤 킨스키와 연인 관계에 들어갔다가 영화가 끝난 후 관계가 깨졌단다. 어린 여자를 사랑한 폴란스키
영화의 원작 소설인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의 부제가 '순결한 여성'이었을 만큼, 영화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성윤리 때문에 비운의 삶을 살다가는 미모의 젊은 여성 테스(극중 17세)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문의 계통을 중시하느라 집안의 작위를 매매하는 일도 있었던 모양인데, 가문의 체통을 내세워 명문가와 친분을 쌓으려던 계략 때문에 어리고 예쁜 딸 '테스'가 휘말리는 성적인 유혹이나, 결혼 이후까지 문제가 된 그녀의 과거사 따위를 다룬다. 그런 점에서 불과 몇십년 혹은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이성애 관념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테스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탐독할 만큼 당시로서는) 합리적이던 남편은 "당신의 외모는 물론 그래로지만 본질이 바뀌었다."며, 마음을 닫는다.
19세기 가부장적 성윤리의 불합리성을 다룬 <테스>인 만큼, 오늘날 정서로는 공감하기 힘든 장면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극중의 비운의 여성 테스를 향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안타까운 심경이 관객의 마음을 옥죄어 온다. 아마 그 점이 영화를성공으로 연결시킨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 => 사랑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상대에 대한 원망감.
* 재밌는 건 소설과 영화의 실제 배경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지만, 어떤 사정 때문인지 영화가 로케이션 장소로 택한곳은 프랑스여서 최대한 영국과 유사한 정경을 지닌 곳을 찾았다고 한다. 영화 속 실내 장면도 어두운 벽지와 무거운 커튼이 드리운 빅토리아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 연신 꼿꼿하게 남성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는 어린 나이의 테스에게 남자 주인공이 던진 대사에 뜨끔. "한참 물이 올랐을때 너 자신을 이용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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