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21일(화) 상영회 및 좌담회(엮인글)를 가진 <철의 꿈>에 관한 리뷰로 쓴 원고.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영화주간지 <매거진M> 지난주(88호)에 영화평론가와 미술평론가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 기획에 수록됐다. 영화계 입장은 김영진 영화평론가의의 글이 실렸다. '연출자의 의도와 다르게 풀어본 <철의 꿈>'이라는 딱딱한 제목을 처음에 달아서 보냈는데, 편집진이 아래처럼 유연하게 푼 제목을 붙여줬다.
철을 말하고, 신을 읽는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이별한 연인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철의 꿈>은 암각화가 물속에 잠긴 현실을 통해 고대 원시 신앙체계를 물밑으로 밀어내고, 근대가 부상하는 현실에서 (제)철을 새로운 신으로 지목한 영화로 나는 해석했다.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육중한 제철/제강 장면도 새로운 신을 제조하는 과정으로 빗댄 화면이리라 풀이했으며, 한국 근대기의 정점에서 빚어진 노사 갈등과 노동운동 중에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측에 맞서 웅장한 철제 구조물인 골리앗에 올라 고공시위를 하는 현상을 철이라는 새로운 신의 부정적인 면으로, 근대화가 제공한 안락한 생활을 새로운 신의 긍정적인 면으로 풀이한 작품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영화 좌담회 때 박경근 감독이 밝힌 제작 의도는 내가 예측한 포인트와는 달랐다. 감독은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제철/제강의 즉물성에 훨씬 매료되어 영화에 착수했다고 말하더라. 어쩐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해설파트가 빈약한 반면,제철/제강 과정과 조선소 현장 화면에 너무 장시간을 안배한 게 아닌가하고 느낀 터였다. 철의 즉물성을 순수하게 응시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지만,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한국 근대기의 정치적 명암을 기록한 과거 영상이 삽입된 터라 비평가인 나는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 것이다.
정리하면 <철의 꿈>은 스토리텔링을 최소한으로 제약하고, 제철/제강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철의 면모에 집중한 영상물이었던 셈이다. 영화 말미에 배를 추진하는 웅장한 프로펠러를 여러 노동자들이 다듬는 장면이 나온다. 그 화면을 보면서 현대적 미술가 뒤샹이 1912년 항공공학박람회를 관람하면서 동료 조각가 브랑쿠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 수 있겠나?” 소수의 직업 예술가의 전유물인양 간주되었던 조형적 완성미를 대량 생산체계가 나눠 갖게 된 현대 사회에 대한 뒤샹의 직감일 것이다. <철의 꿈>은 프로펠러라는 공산품에서 조형적 완성도를 발견한 뒤샹의 근대적 미감을, 웅장한 조선소 현장으로 확대시켜서 시간예술로 계승한 후대의 해석인 셈이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알려진 미술계 인사가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을 갖춘 영상 작업으로 기울다가, 급기야 미술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창작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그렇고, 스티브 맥퀸도 그렇다. 미디어 아티스트 매튜 바니의 영상작품은 러닝 타임이 무려 3시간이 넘을 뿐 아니라, 극장 스크린을 통해 온전히 관람할 수 있다. 한국에선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이 그의 형 박찬욱과 단편 영화 <파란만장>(2011)을 아이폰4로 촬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올해 박찬경은 급기야 장편 극영화 <만신>을 개봉하기에 이른다. 미술가 출신 영화감독의 영화 작품을 평균적인 영화들과 선명하게 구분할 기준을 정하긴 어렵다.
다만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박찬경은 대사를 통한 즉자적인 스토리텔링보다 시각적인 단서를 통해 관객이 감독의 의도와 영화의 스토리를 추정하게 만드는 연출법을 쓴다. 영화의 공식이 스토리텔링을 출연진의 대사나 독백에 크게 의존하는 점에 비추어볼 때, 미술가 출신 영화감독 중 일부는 분명 상이한 방법론을 택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 해도 박경근의 <철의 꿈>은 스토리텔링을 대사나 독백보다 시각적인 화면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풀어나간다. 영화 도입부 내레이션에서 언급된 고대 암각화의 고래는 현대적 조선소에서 구축 중인 범선의 단면과 닮아 있는데, 이런 시각적인 유비로 고대의 신과 현대의 신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 같다. 대사나 해설보다 스토리텔링을 거의 전적으로 화면에 의존하는 연출 방식. 감독의 의도와 평론가인 내 해석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리라.
<철의 꿈>은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로마아시아영화제 대만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했고, 미국 MoMA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상영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해외 영화제와 미국 미술관이 이 영화를 초대하고 수상을 결정한 데에는<철의 꿈>이 재현하는 즉물적인 제철/제강과 조선소의 스펙터클과 더불어서,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화를 고증하는 과거 기록 영상물이 동아시아 근대의 형성을 철이라는 단일한 키워드로 풀어낸 점을 높게 샀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건 아니건 말이다. 이미지로 전달하는 연출자의 의도와 텍스트로 풀어내는 비평가의 관측은 이렇듯 어긋날 때도 많다. 그렇지만 서로 상이한 감상 포인트를 만들어 내고야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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