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1015 말하는 건축 시티:홀 ★★★ + 공범 ★☆ + 캡틴 필립스 ★★★★☆

* 간만에 작정하고 오전 오후 저녁, 하루에 시사회 3편을 소화한 10월15일(화). 



10월15일(화) 10시30분. 왕십리CGV. 정재은 감독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시사회.

별점: 





2011년말부터 2012년 서울시청 신청사 개청식까지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화.  

기자 간담회 자리에 영화감독 정재은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울 신청사 컨셉디자인 당선자인 건축가 유걸이 나란히 출연해서, 내가 이 영화를 잘못 이해했구나 싶었다. 특히 탁자에 나란히 앉은 감독과 건축가가 간간 서로를 격려하는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진짜 뭔가 오독한 것 같기도 하다. 설마 전적인 부정까지는 아닐지라도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현재 완공된 서울 신청사의 문제점 중에는 신청사 디자이너인 유걸의 우유부단한 미학적 태도도 있다는 시사를  보내는 거라고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극의 갈등을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고,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오해와 갈등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것들을 일부 취사선택한다면 짜임새 있는 극의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감독에겐 이 다큐멘터리가 연출 문법의 새 국면을 바라본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평소 품은 믿음을 기자 간담회에서 감독이 내뱉은 진술에서 볼 수 있었다. 대략 요약하면 이런 거다. '건설사와 공무원이 일하는 모습에서 한국 사회가 구동되는 논리를 볼 수 있는데, 그 논리의 고질적인 문제란 비효율의 상시적 방치라는 점' 

멀리서만 지켜본 신청사 건설의 숨겨진 이면과 인간의 갈등을 지켜볼 수 있다는 관음적 가치도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다만 시공 전문 용어들이 무수히 쏟아지기 때문에, 극의 이해가 선형적인으로 이뤄지지 않고, 듬성듬성 어떤 갈등들이 열거되고 있다는 점을 짐작 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바로 그 점이 영화에 대한 몰입과 온전한 이해를 방해한다. 

신청사 디자인 심사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유걸의 응모작으로 결정났지만, 그 심사 과정을 영화로 지켜보고 있자니 예술심사란 게 결국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평소 생각을 다시 고개를 든다. 선정 사유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진술은 예상대로 아주 단조로운 요인들을 당선 이유로 내세운다. 콘서트홀을 건물 상층에 위치시켜서 서울시민의 높은 지위에 대한 상징성을 볼 수 있었다는 식으로. 내 저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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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화) 14시. 왕십리CGV. 국동석 감독 <공범>(2013) 시사회.

별점: 




이런 영화 앞에선 다시금 '취향의 편차로 작품의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와 같은 회의감의 오랜 원점을 매만지게 된다. 내 취향을 따르자면 <공범>은 도입부부터 식상했다. "딸은 내 심장이야"를 반복하는 애비의 대사를 통해 딸에 대한 애비의 강한 애착 혹은 애비의 착한 성정을 강조하려는 손쉬운 구성, 혹은 딸과 애비의 유치한 불짬뽕 대결 정도는 그럭저럭 넘어가 줄 수 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스릴러물이라는데 있다. 스릴러의 긴장과 갈등이 섬세한 개연성에 의존하지 않고, 그때그때 인위적으로 조장되거나 배우의 오버액션으로 밀어부치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게 된다. 거의 모든 출연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오버액션처럼 느껴지는 것도 스릴러의 허술한 플롯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낮은 수처럼 보였다.  

<공범>의 문제는 거듭 스릴러 장르적의 본질을 스스로 거역하는 점이다. 극의 긴박감은 개연적이지 못하며 '설명조'로 현재 상황이 긴박하다고 관객에게 공표하는 식이랄까. 스릴러의 긴박감은 배우들이 내뱉는 직설적인 감정 표현으로 대체되기 일쑤여서, 스릴러 플롯으로는 무성의하고 불성실하다. 때문에 초조함이 느껴져야 할, 공소시효 10일에서 10분으로 좁혀지는 영화의 긴박한 전개부가 그저 지루하게 느껴진다. 신파조로 흐느끼는 배우의 감정연기도 스릴러물과 멜로물이 괴상하게 착종된 이 영화에선 불필요한 파생물일 뿐이다. 이렇게 평해도 재밌다고 할 관객이 있을 터이니, 취향의 편차와 작품의 우열은 별개의 문제 같기도 하고....


*  김갑수는 사악한 눈빛이 먹히지 않는 배우더라.  
** 자칭 스릴러물이어서 포스팅에서 문제적 단서나 영화 후반부의 허술함을 지적할 수 없다. 스포일러일 수 있으므로. 
*** 감독과 주연이 참석한 기자 간담회가 열렸지만, 나는 보지 않고 나와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듣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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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화) 19시30분. 메가박스 코엑스. 폴 그린그래스 감독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2013) 시사회.

별점: 





지난주 언론 시사가 포함된 영화여서 보려고 했지만, 질긴 감기때문에 몸이 불편해서 불참했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일반 시사 기회가 생겨서 부랴부랴 챙겨서 보고 왔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미국 선장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다. 

<캡틴 필립스>의 별점은 ☆ 또는, 최소한 ★까지 받을 만하다. 이는 구출극의 감동 드라마 탓이 아니라 영화가 세계 최강대국(미국)과 최고 빈민 소수인종(소말리아) 사이의 대비를 식상한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않고, 관람 내내 내적 긴장을 느끼게 만드는 묘미 때문이다. 대형 화물선이나 육중한 군함으로 기호화되는 미국의 '크기'와 모터마저 쉽게 고장나는 보트를 타고 침범하는 소말리아 해적의 저돌성, (영어 못하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느리고 정중하게 영어 발음하는 미국인과, 단조로운 영어표현으로 의사소통에 임하는 소말리아 해적, 점령한 화물선의 시스템을 몰라서 우왕좌왕 헤매는 소말리아 해적과, 복잡한 화물선의 운항 매뉴얼로 해적에 골탕먹이는 미국 선원들. 100m 거리에서 흔들리는 표적을 명중시키는 전문적 사격술과 정교한 저격 소총을 보유한 미군 정예부대와 재래식 소총을 어깨에 대충 둘러매고 감정적으로 쉽게 격앙되는 소말리아 해적의 극적 대비. 하지만 이런 극적 대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관객이라면 미국을 선, 소말리아를 악으로 손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해적이 섬멸되고 미국인 인질이 구출되길 바라면서도, 미묘한 연민을 소말리아 해적에게 동시에 느끼기는 양가감정. 소말리아 해적단이라는 실제사건으로 세계의 전체 구조를 내려다보게 하는 배려있는 시선. 이것이 이 영화의 고득점 이유이다.  

<캡틴 필립스>만의 남다른 매력은 해적 배역으로 미숙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후진국민 다운 모습을 보여준 소말리아 배우들의 격앙된 감정 연기를 양가감정으로 지켜 보는 것이다. 자기가 위기에 몰렸으면서도 미국 선장에게 "걱정마라. 잘 될 거다."라고 미숙한 영어로 달래는 소말리아 해적의 단순함에선 애처로운 연민까지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숨은 매력은 위기 상황에 정제된 위기 매뉴얼에 따라 차분하고 차갑고 기계적인 대처하는 미국의 면모다. 이 차분한 면모는 강대국의 매정한 인상을 나란히 실어 나른다. 윤리적 옳고 그름에 대한 감독의 입장은 분명히 하되, 선악을 가르는 식상한 이분법에 의존하지 않기에 관객 스스로 관대한 생각의 지평으로 영화속 사건을 가치 평가할 수 있다. 강요하지 않는다. 


* 전술적 인내심. 선진국과 후진국이 위기에 대처할 때 보이는 차이점은 전술적 인내심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난다. 고로 전술적 인내심은 현명한 노하우이면서 동시에 교활한 처세다. 

**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과의 협상은 이미 물건너 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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