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반 고흐 브랜드 (씨네21)

* <씨네21>(926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3회분.  금주 출간 예정인 <반 고흐 평전 불꽃과 색채>(이상북스)에 소개글을 하나 썼는데, 그 글에 일부를 추가하고 압축시켜 완성한  '브랜드 시리즈 8탄' 



반 고흐 브랜드



좌상. 반 고흐를 자사 홍보에 활용한 현대자동차의 아트카 이벤트 2013년.
좌하. 반 고흐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정계 요인들 중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모습도 보인다. 2012년.
우. 반 고흐 사망 100주기에 뉴욕 크리스티에 나와서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 8,250만 달러(한화 약 7백7십억 원)에 팔린 <가셰 박사의 초상>(1890) 1990년.


반 고흐는 19세기를 산 네덜란드 화가의 이름이지만, 현세대에 두루 개입하는 전방위적 브랜드이며, 개입한 싸움에서 항상 불패 카드로 통한다. 반 고흐 전시회가 한국에서 크게 열린 2012년 11월. 문화부장관을 포함한 정계 금융계 재계의 요인들이 두루 개막식장을 채웠다. 이중 눈에 띤 인물은 단연 차기 대통령선거 당선 안정권으로 분류된 안철수 무소속 후보다. 그는 전시 개막식에서 축사까지 했다. 예술 평가를 좌우하는 것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이다. 반 고흐는 예술과 담을 쌓고 지내던 불특정 다수의 잠든 호기심을 모조리 흡수하는 문화 블랙홀이다.

국내 전시와 연계하여 현대자동차가 ‘그랜저 반 고흐 아트카 포토레이스’ 이벤트를 내놓은 건 이런 사정 때문이리라. 반 고흐의 작품 이미지를 차체에 올린 자칭 아트카를 매장에서 전시하고, 이 장면을 촬영해서 SNS에 게재한 응모자들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행사다. 천재 예술가에 대한 집단최면이 확산될 때 상품 인지도까지 덩달아 상승하는 점을 노린 것이다.

반 고흐는 매혹적인 각주를 달 요건을 겸비했다. 자해와 자살로 이어진 정신질환은 ‘예술가의 광기’를 손쉽게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불행이다. 생전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6백여통의 서신은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그의 육성 메시지같은 무게감을 지닌다. 그의 개인주의 성향도 현대적 예술가상의 시금석으로 이해될 만하다. 생전 홀대받던 작품들이 역대 최고 낙찰가 기록을 갈아 치우는 오늘날 경매장의 풍경도 반전 드라마의 통쾌함을 준다. 이처럼 작품 이외의 드라마는 전문가와 비전문 대중의 기대감을 나란히 충족시킨다.

반 고흐의 인지도 상승은 그가 남긴 무수한 자화상 덕이 크다. 자화상은 작품만큼이나 화가라는 개인에게 주목하게 만들며, 유별나게 많이 남긴 자화상 때문에 남다른 자의식의 소유자라는 세간의 선입관도 강화된다. 그런 대중적 믿음은 그가 모델료가 없어서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는 진실은 외면한다. 반전의 백미는 생전 평가절하 되었지만 오늘날 오히려 반 고흐 그림의 브랜드처럼 군림하는 ‘불타는 붓질’일 텐데, 이는 반 고흐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브랜드는 아니었다. 물감을 두텁게 올렸던 선대의 바르비종 화풍과 몽티셀리의 임패스토 기법을 수용해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결과였다.

반 고흐는 브랜드다. 생전 그림을 거의 못 판 비인기 화가, 현대 미술 경매장 최고 낙찰가 갱신, 외면된 작품 세계, 속물적 교양의 정점, 정신질환과 자살, 천재 예술가 신화, 상품 판촉의 손쉬운 매개. 이 모두를 포괄하는 브랜드다. 양립 불가능한 요소를 무수히 포함한 모순된 브랜드다. 월등한 반 고흐의 작품 앞에서 탄성을 애써 숨기고 싶어지는 까닭은, 찬사의 혜택을 예술이 아닌 상업 자본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예술 평가는 산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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