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능하다면.
원고가 안 풀릴 때는 더러 있는 법이지만, 이번처럼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만큼 스스로 위축된 건 수년 만이다.
내심 자신있는 주제라 믿고 너무 늦게 착수한 게 패착이었다. 조바심의 부메랑으로 돌아왔으니까.
한번 다급해지자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봐 내내 조바심으로 속이 탓고, 진심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근데 그게 어디 가능한가.
자기 실망감 때문에 어제밤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영화 시사회를 보러나갔다가(영화가 별로여서 보다가 중간에 나왔다), 다시 대학 도서관에 들러 밤11시까지만 원고를 마치면 무조건 집까지 걸어서 간다고 다짐했다.
결국 밤 9시를 조금 넘겨서 미흡하게 원고의 끝을 봤고, 보상 차원이 아니라 벌주기 차원에서 집까지 걸어갔다.
차로 지나갈때 구경만 했던 도림천 길을 따라 걸었다.
자전거로 20분이 걸리는 거리여서 도보로 1시간을 넘으리라 예상했는데, 딱 1시간 걸리더라. 내 걸음 속도가 좀 빠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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