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일(목) 14시. 롯데시네마 건대. 벤슨 리 감독 <배틀 오브 비보이 Battle of the Year: The Dream Team> (2013) 시사회.
별점: ★☆
전 세계 비보잉 문화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플래닛 비보이 Planet B-boy>(2008)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 감독의 극영화란다. 벤슨 리의 이름을 감독으로 각인 시킨 바로 그 전작 <플래닛 비보이>는 2009년 초겨울에 극장에서 보고 감상평을 길게 써올릴 적이 있다(엮인글). (1980년대에 내가 한시절 올드스쿨 비보이여서) 비보잉을 향한 관심은 내 안에 꾸준히 살아남아 있어서 깊이 몰입해서 관람했고, 세대차를 뛰어넘는 무시못할 기교와 파워를 지닌 동시대 비보이들에 감탄하면서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배틀 오브 비보이>는 한마디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형편없다. 무성의한 플롯, 갈등과 봉합의 작위성, 기본이 덜 된 배우들의 연기력에, 영화의 정점으로 떠올랐어야 할 브레이크 댄스의 스펙터클마저 카메라가 잡아내는데 실패했다. 연출가의 책임이다. 감독이 비보잉의 시각적 매력을 정작 알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무수한 댄싱 장면이 불연속적으로 편집되어 있다. 모든 춤이 그럴 테지만 브레이크 댄스는 화면 편집을 하더라도 댄서의 기교와 파워무빙의 연속성을 '거리를 두고' 잡아내야 만 감동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배틀 오브 비보이>는 뮤직비디오처럼 시종 짧은 화면들로 연결되어 있고, 댄싱 시퀀스가 너무 짧다. 또 인체의 부분만이 포착되는 근접 촬영은 사지가 유기적으로 전개되는 브레이크 댄스의 매력을 잡아내지 못한다.
브레이크댄스의 시각적 스펙터클을 잡아내는데 실패했다면 극영화 나름의 드라마성이라도 건져야 할텐데 긴 러닝타임에 걸맞는 드라마성은 종적을 감췄다. 단도적입적인 대화방식, 익히 예상되는 갈등의 조짐, 게다가 글래머한 여자 안무가의 난데 없는 출연은 뜬금 없기까지 하다. <배틀 오브 비보이>가 허구적 이야기에 찍는 방점은 하나다. 팀원 전체의 팀워크가 개인기보다 중요하다는 코치의 믿음이 팀원 전체에게 각인되는 지난한 과정이 바로 그 방점이다. 한국팀이 세계무대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건, 강한 서열이 만든 팀워크 때문이다. 그런 점을 이해하더라도 팀워크를 중시하는 무수한 시퀀스들은 교조적으로 느껴질 만큼 불편하다. 기어이 해낼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식 교훈이 이 영화를 채우고 있다.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비보잉은 예술성 기교 쇼맨십을 갖추고 있다." 끄덕.
벤슨 리 감독은 드라마를 구성하는데 상투적인 코드 사용에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느낌은 다큐멘터리 <플래닛 비보이>에서조차 똑같이 느낀 감정이었다. 2009년 당시 나는 <플래닛 비보이>를 보고 쓴 글에서 아래와 같은 지적을 남긴 바 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은 4개 국가를 '토속색'과 연관지어 관객에게 이야기 전달을 쉽게 하려 한 것 같다. 불가피한 조처인 걸 안다. 그래서 일본은 기모노차림 여성 앞으로 튀어나오는 비보이를, 파리는 에펠탑 앞에서 파워무브하는 비보이를, 미국은 라스베이거스 사막에서 호흡을 맞추는 3인조 비보이를 내세웠다. 근데 한국은? 아 이건 좀 깨대. 영화세트로 만든 판문점에서 대치 중인 헌병과 인민군 차림 비보이 간의 배틀을 연출했고, 심지어 절간에서 파워무브하는 설정도 나온다. 분단과 오리엔탈리즘의 소재화, 어떻게 좀 안 되겠니!"
* 반려동물은 평소의 연민과 애정 대상이지만, 그걸 서툴게 예술로 만들어 놓으면 큰 분노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 강아지 그 고양이>에 별점 1개를 준 이유다. 브레이크 댄스/비보잉도 꾸준한 애정 대상이지만, 처참하게 만든 비보잉 영화는 별점을 받을 수 없다.
** 시사회 직전에 어색하게 찢어지는 보컬로 '개나 줘버려~ 고양이나 줘버려'를 반복하는 노래가 극장에서 계속 틀어지더라. 너무 짜증이 나서 나중에 찾아보니 영화 <플랜맨>의 뮤직비디오로 출연 배우 한지민이 부른 거라네. 시사회 관람 전에는 좀 조용히 앉아 기다렸으면 좋겠다. 영화 홍보를 해도 왜 꼭 따위로 하는지. 롯데시네마 건대점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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