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9일 일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전체주의 미학 (씨네21)

* <씨네21>(939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9회분. 지난주 'TRANS X CROSS'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엮인글)로 인해, 연재물이 한 주 밀려서 실렸다. 금주에 다룬 주제는 동영상을 봐야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예술이 전체주의와 만날 때 


 

상: US Navy Presidential Ceremonial Honor Guard at Norway
중: 일본의 집단행동 경연대회 
하: 아일랜드 스텝댄스 경연대회



개인기와 체력에서 열세임에도 한국 비보이가 서구 비보이 문화의 종주국들을 차례로 누르고 세계 비보이 경연대회를 연이어 제패하는 까닭 중 하나는 서열과 규율을 중시하는 집단 문화에서 성장한 탓에 팀워크를 쉽게 형성하는 점일 거다. 영화 <배틀 오브 비보이>는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미국 비보이 크루가 한국 비보이의 공고한 팀워크를 배워서 전에 없는 대동단결로 파이널 승부까지 오른다는 이야기다. 팀워크는 위계질서와 구성원보다 집단을 앞세우는 군문화의 산물로, 흔히 개인적 표현주의와 등가로 인식되는 예술의 본질과는 정반대 속성이라고 믿어진다. 그럼에도 복수의 사람들이 팔다리와 인체를 기계처럼 정확히 일치시키는 일련의 집단행동은 예술에 준하는 감동을 전달한다. 나아가 세계 각지에서 팀워크의 우열을 가르는 경연대회들이 개최되고 호응 또한 매우 높은 점은 주목할 부분이 있다. 

군 의장대의 사열을 무대 위에 올린 다양한 ‘밀리터리 타투’는 이미 탄탄한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을 만큼 열광적 지지를 얻는다. 소총을 인체의 기관처럼 능란하게 다루는 정교한 집단 제식훈련은 특출한 개인의 표현주의로 예술을 한정짓던 고정관념까지 뒤흔든다. 집단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걸음걸이와 행동을 단체로 일치시키는 경연대회 ‘정확한 도보 경연대회 Precision Walking Competition’까지 연다. 블루스 냄새가 밴 미국 탭댄스가 프리스타일 성격이 강한데 반해, 꼿꼿이 세운 상체와 기계처럼 작동하는 하체를 결합시킨 아일랜드 스텝 댄스는 절제된 감동을 안긴다. 아일랜드 스텝댄스 경연대회는 다수의 안무가들이 인체를 기계적으로 일치시키는 점에서 군 의장대 사열이 연상될 정도다.

인체의 동작을 정교하게 통일시키는 집체예술에 큰 호응이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유 중 하나는 관객의 감정적 동조일 거다. 작품을 매개로 예술가 개인과 관객 다수가 연결되는 예술의 감상 방식은, 예술가가 완결된 작품을 제시하고 관객은 그걸 수용하는 일방향성을 띤다. 반면 복수의 행위자들이 팔다리와 인체의 각도와 흐름을 절도 있게 통일시키는 집단행동은 한 치의 오차나 한차례의 불일치가 작품의 실패로 귀결되기에, 관객은 한가하게 바라보고만 있기 어렵다. 초조한 심정으로 집단 퍼포먼스의 완전무결을 기원하게 된다. 행여 한명의 사소한 불일치로 전체가 누를 입을까봐 연민의 심정으로 퍼포먼스에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의 자발적 동참은 감동의 깊이까지 확장한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꽉 짜인 구성은 흔히 보수주의의 미감으로 통한다. 그러나 집단행동의 통일성이 전체주의보다 실험주의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집단행동에 내장된 시각적 긴장감 때문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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