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봬도 나름 ‘결심맨’ - <사물 판독기> 펴낸 미술평론가 반이정
반이정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으로 뻗쳐 있다. 본업은 미술평론가이지만 한때는 시사칼럼도 열심히 썼고(“18대 대선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자전거 마니아로도 유명해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이라는 공저도 냈다. 지난해 12월엔 ‘미술평론가가 본 사물과 예술 사이’라는 부제를 단 <사물 판독기>를 출간했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칼럼 ‘반이정의 사물보기’를 다시 손봐 단행본으로 엮었다. <웃기는 레볼루션-‘무한도전’에 대한 몇가지 진지한 이야기들> <나는 어떻게 쓰는가> 등 여러 편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지만, 단독 저서는 <새빨간 미술의 고백> 이후 7년 만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지수가 최근 부쩍 치솟고 있다는 반이정 평론가를 <겨울왕국>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만났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던 그는 정작 자신의 신간 얘기보다도 영화 얘기에 더 신나하는 듯했다.
Q. <새빨간 미술의 고백> 이후 오랜만의 신간이다.
A.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완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현업 비평가라면 현안을 바로바로 비평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이번에도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원고를 전부 수정해서 실었다. 도판도 한점 빼고 전부 바꾸었고. 책을 내고 보니 중간 결산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배운 게 많다. 그래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총 10권의 개인 저서를 내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Q. <한겨레21>에 연재할 당시 원고량이 200자 원고지로 2.5매였다. 500자 안에 사물의 특성,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 사물의 사회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담은 게 인상적이었다.
A. 원래 빙 돌아가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하는 성격이다. 미술비평할 때도 실명비평을 자주 했다. 그런 태도와 성격이 반영된 게 ‘반이정의 사물보기’였다. 미술평론 중엔 재미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글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글쓴이는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다. 그런 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전에 없는 시도도 하고 싶었다. 미술평론가가 일상의 사물을 논평 대상으로 삼은 일은 아마 없을 거다.
Q. ‘반이정의 사물보기’는 직접 아이디어를 낸 거였나.
A. <한겨레21>에 연재하기 전, <중앙일보>에 ‘거꾸로 미술관’이라는 칼럼을 썼다. 평론가로서 막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지면 하나가 사라지니 서운하고 무료하더라. 그래서 <한겨레21>에 글을 쓰고 싶다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땐 <한겨레21>에 아는 기자도 없을 때였다.
Q. <사물 판독기>에 노순택 작가의 사진도 꽤 쓰였다.
A. <사물 판독기> 출간을 준비하면서 몇몇 사진작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런이런 주제의 글이 있는데 관련된 이미지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그중에 노순택 작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다. 진정성과 성실함이 오랫동안 쌓여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Q. 블로그에 영화평도 꾸준히 올린다.
A. 지난해에 했던 결심 중 하나가 ‘영화 시사회에 자주 가자, 그리고 본 영화에 대해선 반드시 논평을 쓰자’였다.
Q. 영화평은 어디에 기고하려고 쓰는 것도 아닌데, 참 부지런하다.
A.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블로그 유입 통계에 방문자의 성별, 나이, 검색어 등이 나온다. 어떤 검색어를 통해 블로그를 방문했는지 1위부터 10위까지 나온다. 예전엔 1위부터 4위까지가 미술 관련 단어들이었고, 요즘은 많을 땐 7개 정도가 영화 관련 단어다. 판도가 바뀌었다.
Q. 이러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거 아닌가.
A. 할 수도 있겠지. 영화평론이건 미술평론이건 시사평론이건, 평론가로서의 자질만 있다면 장르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심지어 사물비평도 했지 않나. 어떤 대상에 대해 논평하고 싶다는 심정적 동요가 생긴다면, 무엇이든 논평할 수 있는 거 아닐까.
Q. 영화를 대할 때와 미술을 대할 때 태도의 차이가 있나.
A. 그런 건 없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영화는 시간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예술이다. 미술은 한번에 보고, 한방에 (느낌이) 와야 한다. 미술심사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을 대할 땐 미술이든 영화든 몇 가지 포인트를 생각한다. 포인트를 두세개 잡으면 이야기를 쉽게 풀 수 있다. <사물 판독기> 원고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핑크색’이라고 하면 여자아이들이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색, 성인물에도 많이 쓰이는 색, 이렇게 포인트를 잡는다. 이 두 포인트는 상보적이지 않고 서로 부딪힌다. 이것들이 왜 충돌하고 왜 공존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유기적으로 풀어내는 게 <사물 판독기>의 관건이었다.
Q. 원고 마감을 빨리 하는 필자로도 유명하다.
A. 3년 전에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크게 당해 뇌를 다쳤다. 그 이후로 기억력이 많이 나빠져서 수첩에다 일일이 스케줄을 적어놓고 그 일을 이행하는 습관이 생겼다.
Q. 지난해에는 1일1식도 시작했는데.
A. 지난해 4월1일부터 주5회씩 1일1식, 정확히는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다. 처음엔 뱃살 때문에 시작했다. 지난해 4월9일에 허리 쟀을 때 93cm였고, 지난해 말에 재보니 81cm였다. 1일1식을 하면서 몸이 좋아진 것도 좋아진 거지만 가장 크게 배운 건 고정관념이 얼마나 사람의 가능성을 가두어놓는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40여년 동안 하루 세끼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외에도 매해 여름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있고, 주5회 하루 100개씩 푸시업을 하고 있다. 나름 ‘결심맨’이다. (웃음)
Q. 2014년의 결심은 뭔가.
A.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동시대의 한국미술을 정리한 글을 <월간미술>에 연재하고 있다. 연재가 곧 끝나는데 그 원고를 모아서 책을 낼 생각이다.
Q. 1월8일을 시작으로 3월까지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동시대 한국미술의 지형도를 조망하는 ‘9809’ 강연을 하더라. 공개 무료 강연이다.
A. 채프먼 전시와 관련해 송은아트스페이스쪽과 만난 적이 있다. 강연장이 있는 걸 알게 됐고, 동시대 한국미술을 주제로 강연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이번에도 내가 먼저 제안했다. 자기계발서에나 나오는 말 같지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거다.
글 이주현·사진 손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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