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월) 11시. 스폰지하우스광화문. 젬 코헨 감독 <뮤지엄 아워스 Museum hours> (2012) 시사회.
별점: ★★★★☆
주제가 내 전문 분야랑 일치한 점, 내겐 너무 친숙한 유럽미술관이 화면을 시종 채운 점 때문에 <뮤지엄 아워스>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극영화의 주제로 미술관을 다루되 신선한 접근법을 보여줬다. 그게 가장 맘에 들었다. 나이든 미술관 지킴이 역을 맡은 로버트 바비 소머에 대한 보도자료의 해설에 따르면, 영화 속 그의 대사처럼 실제로 그는 젊어서 공연 매니저로 오랜 세월 일했더라. 재밌게 살아온 것 같았다.
극중에서 그가 미술관 지킴이로서의 자기 직업을 소개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일부는 재밌었고 일부는 평소 느꼈던 생각이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대사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부산 맞게 살다가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미술관 지킴이다. 내가 앉아있는 곳의 뒤로 갤러리의 큰 문이나 작품들 앞에 놓인 가드라인이 보이는데, 집으로 치면 대문과 울타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은 그래서 도피처 같다." / "모든 미술관 직원이 나와 같지는 않은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 모르겠고, 이 일을 즐거워 하는 것 같진 않다. 나는 브뤼헬의 작품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즐겁다. 같은 작품을 오래 보노라면 새로운 장면을 발견할 때가 많다." / "관객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은 화장실의 위치이다."
미술품 관람에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도 공감이 간다. 아이들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작품은 목을 자르는 장면을 묘사한 미술사의 도상들이라고 한다. 이 영화가 극중 미술관으로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을 택한 이유는 이야기의 중심을 화가 브뤼헬에게 맞췄기 때문이다(빈 미술사 박물관의 명성은 브뤼헬의 다양한 소장품에서 온다). 미술관 입장객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 해설 시간에 해설자가 브뤼헬의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들려주고 질의응답을 받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브뤼헬이 미술관이 없는 무자비한 시대를 살아서 당시에는 대중에게 공개될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오늘날 그 당시 명성이 높았던 보수적인 작품들과 대등하게 공공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고, 풍경화가 종교적 행사의 배경으로만 쓰이던 시대에 브뤼헬이 당대 농민을 정직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풍경화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정보도 소중했다.
그 밖에 병실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 자연광을 사용해선지 실내의 조도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장면이나, 두 남녀 주인공이 오스트리아의 지하호수 세그로테 Seegrotte를 둘러보는 동안 병실의 상황을 병렬 배치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지하호수를 둘러본 직후 병실 상황을 전화로 전달받고 절제된 대사로 감정을 나누는 장면도 멋지다. 나는 아무튼 영화 속의 감정 과잉을 싫어해서.
미술관 안에서 차창밖을 내다보며 '사물의 덧없음'에 관해 나직히 독백하는 영화의 마지막 처리도 깔끔하다.
* 낮에 너무 졸려서 15분 간격으로 계속 알람을 울려서 겨우 맞춰간 오전 시간 시사회였다. 정각 11시에 도착했는데 데스크에 아무도 없어서 잠시 당황했다. 정시에 시사회를 바로 시작한 거다. 황급히 들어가서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 영화의 인상 때문에 현지에 대한 로망이 부푸는 때가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비엔나(빈)가 그렇다. <비포 선 라이즈>는 젊은 시절 비엔나에 대한 로망을 부풀린 영화다. <뮤지엄 아워스>도 못지 않게 비엔나 로망을 부풀리는데, <비포...>와는 달리 청춘 애정물이나 나아가 중년의 애정물의 색채를 띠지 않고도 충분히 비엔나라는 도시를 중후하게 사용한 점이 이 영화의 가치를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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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3일(월) 14시. 왕십리CGV. 감독 한동욱. 주연 황정민 한혜진 <남자가 사랑할때> (2014) 시사회.
별점: ★★★☆
영화 로케이션의 명소가 부산에서 군산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최근 <씨네21>에서 읽었다. 근래 개봉된 <변호인>도 군산에서 로케이션을 잡았고, <남자가 사랑할때>는 영화의 무대가 아예 군산이다. 그래서 군산의 유명 중국집 '빈해원'이 수차례 화면에 나온다. 2년 전인 2012년초에 군산에 놀러 간 적이 있어서 그때 빈해원을 가봤다(사진보기). 그렇지만 극중 배우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고 서울 말씨를 쓴다.
대부업을 하는 조폭이 돈을 수납하는 과정에 돈 없는 상대에게 각서를 요구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그 점에 착안해서 거래 상품으로 이성애를 설정한 것이 이 영화가 각별하게 러브스토리에 접근한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에 빠지는 조폭을 다룬 <약속>이나 혹은 무수한 미녀와 야수 시리즈의 현대판 쯤 되는 영화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영화가 보여준다. 말주변이 없는 조폭 출신 황정민의 거친 표현 방식이나, 말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힐 자신의 속사정 때문에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오해를 받는 황정민의 억울한 처지 등은 모두 형언하기 힘든 사랑에 대한 대체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대중영화를 지향하는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막바지에 가서는 과도하게 해설적으로 변한다. 그 점이 아쉽지만 대중적으론 볼 만한 작품이다. 연기력으로 8할을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한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대중적 연애물이다. 수준은 상향 조정된.
* 내친 김에 오랜만에 하루 시사회 3편을 내리 볼까 고민 하다가 피곤하고 시장해서 16시30분에 잡힌 <베일을 쓴 소녀>는 보지 않고 귀가했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간 영화 일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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