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7일 화요일

이주리 작가론(제4기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예술가 결과보고전)

* 작년 11월25일(월) 인천아트플랫폼에 방문(엮인글)한 직후 작성한 이주리 작가론. 이 원고는 <제4기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예술가 결과보고전>(2014.1.10~2.23) 도록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 글을 작성한 직후 디오라마에 관한 아이디어를 별개의 글로 옮긴 것이 <씨네21>(934호)연재물이다. 



반복,75x105cm, acrylic on paper, 2013 


선혈 낭자한, 그들만이 꿈꾸는 땅



반이정 미술평론가

곡예와 처형을 연상시키는 도상들이 놀이동산 혹은 사형장처럼 보이는 공터에 뒤엉켜서 던져진다. 끔찍한 사지절단마저 유쾌하고 간결한 장식물처럼 판타스마고리아를 만들어 낸다. 단두 처형된 시체들을 즐비하게 나열한 험상궂은 화면들은 이주리의 그림에서 주 무대를 차지한 채 반복적으로 출연한다. 이런 취미는 어떤 해석으로 풀이될까?

인체를 해체한 엽기 행각은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 되면서도, 열광적인 팬들의 지지를 받아 떳떳한 구경거리의 한 유형으로 분류된지 꽤 오래다. 산 채로 배에서 내장을 뽑히는 고문을 당한 성 에라스무스의 순교 장면은 후대 무수한 화가들이 인용하면서 이미 인기 도상의 반열에 올랐다. 성자의 고문을 다룬 그림은 흡사 성인의 수난을 신자들에게 숙지시키려는 종교적 목적을 배면에 깔고 있으나, 인체가 절단 나는 끔찍한 순간을 바라보려는 대중의 관음적 수요가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험상궂은 화면이 쉴 틈 없이 양산되는 속내이다. 전 근대기에 행해진 공개 처형 역시 권선징악이라는 계몽적 목적을 담고 있었다지만, 처형 장면을 구경하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2만여 인파는 추상적인 교훈이 아닌, 목이 날아가거나 목이 매달려서 죽임 당하는 하드고어한 처형 장면을 희소한 스펙터클로 받아들였기에 모여든 것일 테다.

현대미술에도 충격 미학의 계보는 이어진다. 제이크&디노스 채프만이 내놓는 축소 모형은 나치의 포로수용소에서 자행된 역사적 선례를 훨씬 극단적인 표현의 디오라마로 재구현한 것이다. 즉 인류에게 행한 나치의 만행을 고발할 목적보다 야만 행위가 만들어 내는 시각적 파괴력을 허구적으로 극대화 시켜서, 고유한 충격 미학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2012년 이후 이주리의 드로잉 연작은 마치 채프만 형제의 디오라마 입체 작품을 평면 버전으로 옮겨온 것 같다. 흑백으로 묘사된 평면 드로잉들은 총천연색 입체 디오라마의 흉악한 장면을 조감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 같단 말이다.


성스러운 피, 75x105cm, acrylic on paper, 2013



욕망에 불타는 성냥개비들, 혼합재료, 35x83x60, 2013cm



2012년 개인전 전경


2012년 이후의 드로잉은 다종의 엽기적 광경으로 채워져 있다. 머리와 인체가 분리된 인물, 인체 기관이 교환 가능한 정체모를 인물들, 나아가 단두 처형 장면까지. 이주리가 구성한 인물상에서 정상의 인체는 종적을 감춘다. 뇌사로 죽음으로 직결되는 점과 인체 훼손으로 처형자를 모욕하는 점 때문에 단두 처형은 역사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처형으로 오래 채택되어온 처벌이었다. 절단 낸 인체 기관들을 광장에 널브러뜨린 하드 고어한 광장을 하늘에서 내려 보는 듯한 이주리의 조감 드로잉은 16세기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나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 중 지옥 부분의 완화된 현대판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종의 엽기 코드가 화면 전체를 빼곡히 장악한 이주리의 드로잉 연작을, 그저 은폐된 관음증만으로 전부 설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성격이 상반되는 둘을 충돌시켜 어처구니없는 익살을 만드는 건 작가가 즐겨쓰는 작법 같다. 예를 들면 성혈(聖血)과 세속적 처형이 한 화면에서 충돌하는 식이랄까. 몸통에서 분리된 사지들은 분노나 욕망을 대리하는 표식이기보다 그저 잘 정제된 괴상한 취미의 장식물처럼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괴한 장면들 앞에서도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사지절단의 난장판이 벌어지는 장소가 어딘지 주목하면 좋겠다. 난장판은 주로 쇠락한 공장이나 구시대의 놀이터에서 벌어진다. 이주리가 구사하는 전 근대적 판타지의 배후에 거의 예외 없이 근대화의 생산 체계인 공장이 들어선 점을 주목하자. 이는 좁게 보면 상반되는 성격 둘을 충돌시키는 이주리 창작법의 연장일 수 있고, 넓게 보면 비현실적 공상의 산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현실의 공장을 차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공상 생산 공장과 더불어, 눈여겨 볼 부분은 무기체들이 유기체의 활력을 탑재한 채 화면 속에 표현주의를 더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건물과 도로가 시멘트 무기체인 현대 도시는 머리 셋을 단 용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고층건물과 현대적 마천루는 곤충의 다리를 달고 있다. 생명을 덧붙인 현대적 도시는 흡사 고딕 풍 우울과 불안감을 품은 괴물처럼 보인다.

재현 예술의 기능이 현실에 없는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진입로로 통용되었던 역사를 감안하더라도 엽기와 유머, 현대와 고딕, 거부감과 관음증처럼 상반되는 두 요소를 나란히 전개 시키는 이주리의 연금술 공장에 관해선 해설이 추가로 필요할 것 같다. 이 정체불명의 난장판에서 작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주리는 엽기행각이 태연하게 자행되는 판타스마고리아의 공장 터에서 이 모두를 총괄 지휘하는 공장장은 아닌 것 같다. 이 공장의 배후에 분명 작가가 있을 테지만, 공장 위 창공에서 난장판을 구경하는 방관자의 모습으로 작가는 묘사되고 있다. 엽기적 난장판을 창공에서 내려 본 시각으로 묘사한 이유도, 전지적 시점을 확보하기 위한 구도일 것이다.

사지 절단된 인체를 광장에 늘어놓은 드로잉을 내놓기 전까지, 이주리의 초기 행보도 살필 필요가 있다. 청 테이프와 종이를 무작위로 뜯어 붙여 완성한 인물상에선 파편화된 오토 딕스풍의 표정이 읽힌다. 넥타이 맨 회사원, 빌딩으로 보이는 직육면체 구조물, 인물과 배경을 모조리 파편화시킨 초기 판타지의 환경은 또 다시 현대 사회다. 2012년 전후 드로잉에서 등장하는 공상 생산 공장은 초기작에선 소규모 생산 단위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바로 바코드를 찍는 점원의 기계적인 계산, 한가한 편의점 내부, 순환구조에 따라 손님을 맞이하는 세차장과 교통사고 피해자를 무감동하고 익숙하게 처리하는 익살맞은 구급요원의 모습이 그것이다.

현대 사회와 전근대의 고딕 코드를 결합시키는 이주리의 작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저항법일 수도 있고, 비이성의 난장판을 허용하려는 소수자의 취향인 것도 같다. 만일 부조리에 맞서는 저항이라면 현실의 분노를 악의 없이 해결하기 위해 상상력에 기대어 현실로부터 탈주하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리라. 항해 수단으로는 턱없는 종이배들이 꾸준히 출연하는 것도 미지를 향한 탈주의 상상이 만든 결과이리라.

그러나 현실 탈주보다는 비이성의 난장판을 용인하는 진입로의 확보 혹은 개인적 취향의 표출이 더 타당한 해석 같기도 하다. 꽉 짜인 이야기의 기승전결보다 충격효과를 위해 이야기의 개연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일탈. 갖은 엽기를 만화경처럼 모아놓은 화면에서 흔히 꼭 끼어들기 마련인 섹스 코드를 이주리의 작품에서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점 역시 비이성의 난장판에서 유아기의 위안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작가 개인의 지향성 문제로 수렴 될 것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순수 공상의 세계를 구축을 지향한다면 성인 판타지물은 좀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을 터이다.

이주리의 작업 여정은 표면적으로 불과 수년 사이에 급변했다. 인체를 해체시키는 표현주의적 묘법은 정갈하게 마감되었고, 표현주의적 색채 사용도 흑백의 단순성으로 수렴되었다. 초기 작업이 한 명의 인물이나 하나의 사건에 집중한 반면, 2012년 전후로 축소된 입체 디오라마를 평면으로 옮겨놓은 듯한 구성이 지배한다. 나아가 실제 디오라마를 차용한 소형 입체 인형을 만드는가 하면, 애니메이션으로 매체의 활용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제작 방식과 재현 매체가 변화했음에도, 작가가 고수하는 주제는 변치 않고 일관된 것 같다. 바로 간섭 받지 않는 개인적 판타지 혹은 창작 소신의 원점을 고수하는 것 말이다. 이 일관된 주제를 발전시키려면 향후에는 협업의 가능성을 열어둘 걸 제안한다. 근래 시각예술 창작의 한 유형으로 이미 자리를 굳힌 다원예술처럼 말이다.



교통사고, mixed media on paper, 98x109cm 2007 



그들만이 꿈꾸는 땅,75x105cm, acrylic on paper, 2012 




 이주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