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토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투신자살 (씨네21)

* <씨네21>(936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8회분. 신간 소개 포스팅에 이은 공개 무료 강좌 공지글로 인해 연재물 올리는 시기가 계속 한 주 씩 밀린다.



온몸 던져 표현한다





상좌. 안철수 지지자 투신 소동 2012년
상우. <여고괴담5 동반자살> 포스터 2009년
하좌.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설치물 2012년
하우. 이브 클라인, <허공으로의 도약>, 1960년



<여고괴담> 10주년 기념작은 학교 건물 최고층 난간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교복차림 여고생 너 댓의 도열 장면을 포스터에 담았다. 청소년기 스트레스의 진원지 학교와 발육중인 여학생의 섹스어필 그리고 투신을 앞둔 초조와 절망감이 한 장의 포스터에 모두 담겼다. 투신자살은 허구적 이야기가 단골로 차용하는 메뉴다. 무수한 자살 사례 중에서 보는 이에게 가장 높은 극적 효과를 던지는 게 단연 투신자살이기 때문이리라. 투신자살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도, 여느 자살을 능가하는 가공할 시각 충격을 주리라 상상할 수 있다. 

고층에서 수직 낙하한 인체는 아마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인체는 터져서 해체되어 있을 수도 있다. 홀로 숨어 실행되기 마련인 일반적인 자살에 비해, 자살 현장 주변으로 인파가 모이는 점 또한 투신자살의 드라마성을 높인다. 구경꾼과 구조요원들이 에워싼 자살 예고자는 그 현장을 장악하는 주인공이다. 무대 위의 주연 배우처럼 말이다. 최정상에서 최하단으로 낙하하는 투신자살의 현상은 자살자의 위상 실추까지 중의적으로 설명한다. 온 몸을 던지는 이 극단적인 자기 표현법은, 심혈을 기울인 예술 작품을 설명할 때 흔히 동원되는 상투적인 수사법과 우연히 닮아있다. 그런 작품들은 흔히 “목숨을 걸고...”, “온 몸을 던져서...”, 완수되었다고 진술되곤 한다. 흡사 자살이라는 자발적인 죽음의 논리를 고백 형식으로 변환 시킨 것이 예술품 제작의 사연과 닮았다는 얘기이다.

투신자살은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이 허공에 단시간 몸을 띄운 대가로 생명을 내주는 거래이다. 인체를 허공에 붕 띄운 불가능한 미션을 기록으로 남긴 예술가가 있다. 이브 클라인은 유도로 단련된 자신의 인체를 허공을 향해 수평 각도로 던졌다. 그의 과단성 있는 투지는 주목을 주목 받았고 미술사도 이 사건을 두고두고 인용하고 회자했다. 그러나 진실은 이브 클라인의 투신 사진이 같은 장소에서 찍은 두 개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라는 점. 한 장은 이브 클라인이 등장하지 않는 텅 빈 공간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이브 클라인이 몸을 던진 사진이되, 그 밑으로 동료 예술가 여럿이 거대한 방수포를 팽팽히 펼쳐 떨어지는 그를 안전히 받으려고 대기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무방비 상태로 제 몸을 던진 듯 꾸민 이브 클라인의 <허공으로의 도약>은 극적인 상황을 증폭하려고 ‘연출력’을 빌린 거다. 이런 거짓은 예술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자살률 1위라는 마포대교의 오명을 지우고자 자살을 만류하는 문구를 대교 위에 새겨 넣은 이른바 ‘생명의 다리’ 리뉴얼 사업이 마포대교에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생명의 다리로 조성된 마포대교는 1년 사이 투신 사고가 오히려 4배 이상 급증했다. 자살 만류의 선한 취지는 이해하나, 자살을 만류하기 위해 다리 난간에 새겨 넣은 문구는 하나같이 신파조 가면을 쓰고 있다.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만류는 소통되기 어렵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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