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05일(목) 14시. 씨네큐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Like father like son> (2013) 시사회.
별점: ★★★★★
"아버지의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현실의 사회 생활에선 좀체 뒤섞이기 어려운 두 계층이 그들 의사와는 무관하게 접촉해야만 하는 상황, 그로 인해 빚어지는 심리적 풍경을 다룬 영화. 두 가족은 경제적 처지도 사회적 지위도 가족관도 서로 상이하다. 자립의 가치를 지향하는 업무과중의 아버지와, 아이와 시간 보내기를 중시하는 비교적 한가한 아버지가 만나야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애들에겐 시간이 중요하다"고 믿는 아버지가 위의 대사를 상대편 아버지에게 한다. 그가 갈등 국면에서 내뱉은 또 다른 대사도 재밌다.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두 가정을 비교하는 지점으로부터 나의 지난 성장 과정을 자연 되돌아보게 됐다. 정확히 잘라 말할 순 없어도 내 유년/청소년 시절은 부모 자식 간의 공유보단, 각자 자립된 생활을 중시하는 가풍 밑에 있었다. 여가를 함께 한 기억도 거의 없고, 목욕을 함께 하는 일도 없었으며, 그런 걸 자연스럽게 몸에 밴채 성장한 터라, 단란한 가정 혹은 가족화합에 대한 선망이 내겐 없다. 그래서 이런 성장 배경이 결혼이나 육아가 삶에 필요한 건 아니라는 현재의 소신을 심어준 것 같다.
자식이 뒤바뀐 걸 모른 채 6년여를 데리고 산 두 가정이 이 영화의 포커스다. 그런 황당한 상황이 과거에는 아주 드물게 발생했다고 한다(영화에서 왜 그런일이 벌어졌는지는 스포일러여서 삼가). 해서 친자를 서로 한시적으로 데리고 사는 '미션'을 시작으로 차츰 맞교환의 단계로 이행하다는 내용이 영화의 전개부를 차지한다. 친권에 대한 본성적인 중시와 기른 정이 서로 부딪히면 부모가 느끼는 모순된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격정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런 심리 갈등을 풀어낸 점을 높게 사고 싶다. 또 사회적 지위가 다른 두 가정의 성격을 단순 이항대립의 구도로 가져가지 않은 점도 퍽 맘에 든다. 즉 지위가 낮은 가정 부모를 천박하게 표현한다거나 지위가 높은 가정의 부모를 도도하고 격조있는 식으로 몰아가지 않더라는 얘기다. 계층의 성향을 분명 드러내되 동일한 계층의 부모 사이에도 차이점을 뒀다. 지위 높은 가정의 부친은 자상하지만 완벽주의자로 모친은 정에 끌리는 캐릭터로 묘사했으며, 지위 낮은 가정의 부친은 부주의하고 경박하지만 정이 많은 캐릭터로 모친은 정도 많고 이해심도 깊지만 맺고 끝는 게 분명한 캐릭터로 묘사함으로써, 두 계층을 단순 이항대립의 캐릭터로 가둬두지 않았다.
연기력이 받쳐주는 영화는 스토리가 빈약해도 일단 가산점이 있는 법인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스토리와 연기력 모두 빛이 난다. 특히 대사가 거의 없는 아역 배우 두명에 대한 연기 연출력은 뛰어나다. 어느날 갑자기 가정이 뒤바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아이들에게 감정과잉이라는 손쉬운 연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가장 맘에 드는 연출력이다. 아이가 바뀐 두 가정을 설정하되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을 지위가 높은 가정에 둔 것도 좋은 수이다. 모순된 감정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여건이 이 영화에선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일어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갈등 봉합의 역할도 그들의 몫이어서 마지막에 지위가 높은 가정의 아빠와 아이가 나란히 길을 걷는 명장면이 나올 수 있는거다. 갈등이 가라앉고 국면 전환을 암시하는 아빠와 아이가 양편 길을 나란히 걷는 장면에선 <파리 택사스>의 한 장면이 연상됐다.
조직 사회의 예의 문화나 건물의 실내외 풍경 묘사 등에서 한국과 너무 닮은 일본 사회를 확인하면서 감정의 동기화가 이뤄지곤 한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이국적인 매력이 발생하는 지점을 다다미 방에서 wii 게임에 몰두하는 짧은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 시사회 평점으로 ★점 다섯을 준 작품이 이제껏 총 3편 있다. 씨네큐브 시사회로 본 <마지막 사중주>, 대한극장 시사회로 본 <잉투기>에 이어 ★점 다섯을 줄만한 영화다. 표현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눈물 짓게 만든 영화라면 ★ 다섯. 관람 추천.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또 다른 첫영화로 2010년 배두나 주연의 <공기인형>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그 영화는 별로 였다고 적었더라(엮인글).
*** 우연히 내 옆에 관람 내내 부산맞은 관객이 앉았다. 손과 몸을 한자리에 두지 않고 부시럭부시럭. 영화에 이렇게 집중 못할 거면 왜 시사회 내내 앉아서 보다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격미달자를 멸시하는 내 성향은 내게 강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풀어야할 작은 과제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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