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자전거 인터뷰 (바이시클 프린트 #2)

* 자전거 문화 무크지를 표방하는 <바이시클 프린트 Bicycle print>의 2호다. 이 자전거 인터뷰는 작년 이맘때 수도권 매립지 관리공사가 발행하는 사보와 행한 자전거 인터뷰(엮인글)에 이은 두번째 자전거 관련 인터뷰로, 녹취된 대담 내용을 인터뷰어(이아람)가 모두 풀어서 썼더라. 애 먹었겠더라.      














인터뷰_반이정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어딜 가든 자전거를 이용하는 소문난 자전거광이다. 두 번의 사고를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쪽모자를 가볍게 쓰고 갤러리와 영화관, 강의실을 향해 서울 곳곳을  자전거로 누빈다. 자전거라는 도구를 사용할 때 발동하는 완벽에 가까운 ‘자기 통제력’ 때문에  그는 자전거를 예찬한다. 그 통제력의 원천은 신체의 기억과 경험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프로필:  미술평론가. 본명은 한만수. 미술이론을 전공했으며 <한겨레>, <중앙일보>, <경향신문>,  <씨네21>, <월간미술> 등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사회 등 다방면에  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새빨간 미술의 고백>이 있고 <웃기는 레볼루션>,  <신진 작가 수첩>,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등의 공동 저자다.  서울대·홍익대·성신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한다.  반이정 블로그 http://dogstylist.com/




당신 블로그에 올려둔 ‘자전거 연대기’가 흥미롭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게 된 경위를 알려  달라.

자전거를 직접 구입한 때가 2005년이었으니 지금까지 9년 정도 탄 셈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사 주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만, 지금만큼 애착 대상은 아니었다. 2005년 무렵 몸에  이상이나 반응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닌데 좀 움직이고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  일이 모두 앉아서 하는 일이다. 글을 쓴다거나 하다못해 강의를 가더라도 대중교통 수단에서 앉아서 돌아다니니까. 손쉬운 운동 방법으로 자전거가 괜찮을 것 같았다. 당시엔 자전거에  대해서 일천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9만 9,000원짜리 국산 보급형 자전거를 구입했다. 뭘  몰랐기도 했고 자전거가 10만 원에 육박해 좋은 자전거라고 생각했다. MTB(마운틴 바이크)라고  하길래 나는 이게 진짜 기능이 좋은 자전거인 줄 알았다. 모양만 MTB인 보급형 자전거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 아주 무거웠는데, 2년 동안 그걸 가지고 시내를 왔다 갔다 했다. 자전거가 열어  주는 인체의 연장 경험이라고 해야 하나? 그 뒤로 깊게 빠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자전거를  탔지만, 이건 차원이 좀 다르더라. 심히 무거웠던 자전거인데 새벽 3시 봉천동에서 안양까지  굉장한 오르막길을 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꽤 무리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기어를 안 쓰고  뻑뻑하게 타는 게 좀 더 고수라고 믿고 있었는데도 시흥을 넘어가는 그 오르막길에선 기어를  최대로 두고 ‘댄싱’이라고, 서서 페달질하며 올라갔다. 


이 기회에 반이정의 자전거 가족사 이야기를 다시 듣고자 한다. 

‘자전거 연대기’ 블로그에 썼듯이 첫 번째 자전거는 86년 이후부터 중·고등학교 때 타던  자전거다. 그다음이 2005년에 직접 구매한 9만 9,000원짜리 자전거. 여기 일지를 보면 2007년도  4월에 누군가에게 준 것으로 적혀 있다. 그다음은 2006년에 다혼(Dahon)에서 외주로 제작한  예(Yeah)라는 자전거인데, 첫 미니벨로(mini velo)로 한 2년 잘 탔었는데 결국 도난당했다.  다음은 스트라이다(Strida). 나중에 프레임 두 개를 교체해서 3색 스트라이다로 커스텀했다.  인터넷에서도 ‘반이정 스트라이다’라고 검색 키워드가 뜨더라. 그 이후 다혼 제트스트림(Dahon  Jetstream)을 중고로 저렴하게 샀다. 그 후에 브롬톤(Brompton)을 로망에 못 이겨 구매했는데  나중에 브리티시 그린 색의 브롬톤이 갖고 싶어 빨간색을 팔고 초록색 브롬톤을 마련했다.  그 뒤로는 버디(Birdy)의 스탠더드 알리비오(Standard Alivio). 이 주황색은 소위 ‘귤 버디’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고 지금은 단종되어 안 나오는 모델이다. 중고로 저렴하게 온라인에 물건이  나왔는데 주인이 충청도에 있었다. 아무도 안 가지러 간 거지. 그래서 충청도에 버스 타고 가서  데려왔다. 그리고 비앙키(Bianchi). 마지막으로, 2010년에 산 에이바이크(A-Bike)다. 이건 타려고  샀다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퀴를 가진 자전거니까 소장용으로 사들였다. 거쳐 간  자전거들은 10대이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전거는 7대이다.



모두 미니벨로 자전거다. 굳이 미니벨로 자전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사실 휴대전화 번호 016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데, 남들이 다 010 번호를 쓰니까 굳이 016을  고집하고 싶은 게 있다. 미니벨로도 그런 연유이다. 사람들이 큰 바퀴의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빠르고 낫다고 믿으니까. 작은 바퀴로도 충분히 잘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맞기도  하고. 뒤떨어지지 않는 자전거 기능과 주행능력이 그 근거일 텐데, 평지에서 경주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서 타고 다니는 것을 전제했을 때 미니벨로가 더 유리할 때도 있고 적어도 밀리지는  않는다.  


기어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바퀴가 작아, 같은 거리라 해도 페달질을 더 많이 해야 하지 않나?  

늘 하는 이야기인데, 미니벨로는 발을 한 번 굴릴 때 훨씬 더 많이 나간다. 왜냐하면, 바퀴가  큰 자전거에 비해서 기어 비율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기어비는 앞의 체인링과 뒤 체인링 간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미니벨로의 체인링은 대개 큰 자전거의 체인링보다 크다. 대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달려 보면 별로 안 밀리는 것 같다. 두 자전거 중 무엇이 먼저 도착했다는 차원을 떠나서 예전에 타던 26인치 엉터리 MTB의 주행거리를 20인치 미니벨로로  더 일찍 도착했다. 시간 재는 게 버릇이어서 매번 체크하는데, 성신여대 수업 나갈 때였으니까  봉천동에서 성신여대까지 1시간 7분 걸렸었는데 미니벨로로 바꾼 뒤에는 한 시간이 걸리더라.


자전거로 다닌 길들을 트래킹해서 블로그에 게재하곤 하는데 모든 여정을 기록하나?

모든 길을 다 하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장소에 갈 때나 전시나 영화 보러 갈 때, 그리고 강의  나가는 길을 올려두는 정도이다. 2003년부터 대학 강의를 나가는데 비가 온다거나 별일이 있지  않으면 거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출강 학교가 다행히도 서울 안에 있어서 무리는 없다. 한번은  안성에 있는 중앙대학교 예술대 정규 수업 요청이 들어왔다. 매주 안성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멀기도 하고 왕복하기 힘들어서 거절했다. 대신 특강으로 한 번 84km 편도를  다녀왔다. 제일 멀리 다녀온 건 편도 93km의 천안행이다. 주행시간이 네 시간 반이었던 것을  보면 중간에 쉬는 시간이랑 점심시간은 빼고 계산한 꼴이다. 돌아올 때는 버스에 싣고 와서  터미널에서부터 집까지는 타고 왔다. 주행 시작과 거리, 루트, 쉬는 시간까지 다 적어 두었다. 


시간을 재는 게 버릇이라고 했는데, 자전거 주행시간 이외에 다른 일상의 스케줄도 그렇게  하는가?

늘 정확하게 준수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하는 편이다. 스케줄러를 보면 시간 단위로 일정이 짜여  있다. 예상 주행시간을 출발 전에 미리 적어 두고 실제로 그만큼 소요되는지 확인한다.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내는지 정확하게 지키는 것을 선호하는 기질이 있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다  보니 더 잘 맞물리는 것 같다. 스마트폰을 안 쓰고 시계를 보다 보니 활동들과 이동의 발착 시간을  더 확인하게 된다.  


자전거를 서울에서 9년 정도 탔으니, 예상 시간이 정확히 떨어지는 편인가?  

그렇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전거 기종과 상관없이 거의 예상치 그대로 소요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시청까지는 거의 예외 없이 40분이다. 45분이나 50분 잡고 가는 경우가 없다. 앞뒤  5분 이상의 편차가 나지 않는다. 자전거의 좋은 점은 시간 예측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차는  차 막힘이라는 변수가 있는데 자전거는 그냥 옆으로 가 버리면 된다. 자전거가 사실 성미가  급하거나 시간을 칼같이 엄수하는 사람한테도 유리하다.  


전체 이동 경로에서 자전거로 이동하는 비율은? 반이정의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어느 정도일까?   

예전에는 8할 정도는 족히 되었는데 최근에는 조금 낮아진 것 같다. 너무 자전거에 매여 있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꼭 어디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예전에는 의무감처럼  있었는데 지금은 훨씬 홀가분한 편이다. 얼마 전에도 어느 작가의 비평 워크숍이 있었는데, 회식  자리에서 다들 자전거 가져왔느냐 물어보더라. 이따금 제어가 가능할 정도로 술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기도 하니깐. 이제는 술도 맘 놓고 마시고 책 보고 쉬면서 오자는 생각이다. 자전거에  너무 몰입하면 실제 삶에서 배려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 뭐든지 집착하게 되면 얻게 되는  혜택도 있고 나쁜 점도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자전거에 ‘꽂혀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자전거를 탈 때 육체적인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이건  꽤 중독적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한테 자전거의 즐거움에 대한 이유를 들어 보면 ‘온전히  제 힘으로만 자전거를 움직일 때 얻는 경이’, ‘자력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음을 느낄 때’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좀 더 섬세하게 말하고 싶은데, 주행 내내 발동하는 ‘자기통제력’이 내게는  가장 큰 기쁨이다. 자전거를 몰고 어떤 구간을 갈 때 모든 경로를 뇌로 판단해서 가야 한다. 아주  과장해서 말하자면 저 차가 어디 즈음 갔을 때 나올 기세구나, 이 도로에서는 이 정도의 힘과  속도로 지나쳐야 한다 등 전방의 조건을 즉각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차량  흐름, 교통 신호의 변경, 주차된 차량의 문이 갑자기 열릴 가능성, 도로 장애물 위치, 횡단보도  보행자 등, 이 모두를 종합해서 회전 여부나 정지, 가속을 결정한다. 이러한 전지적인 시점과  제어력은 몸이 기억하는 경험과 집중력을 통해서 쌓인 능력일 수밖에 없다.


보통 차도를 이용하는가?

도로를 타는 게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다. 한강변을 통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강 자전거  도로로 자전거를 타면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바람 때문에 추워지거나 역풍으로 속도가  느려지기도 한다. 또 심심하다. 도로로 가면 차량이나 도로 상황을 계속해서 신경 쓰기 때문에  몸이 어느 정도 긴장된 상태이다. 그게 주는 즐거움이 확실히 있다. 자전거를 오래 타면 긴장과  힘의 안배 조절이 잘 된다.


위험하진 않은지, 자동차 매연가스 등은 괜찮은가?

어차피 도로를 자동차와 공유한다면 그런 것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자전거는 도로의 약자다.  도로 위에 혼자 앉아 있는 셈인데,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런 상황을 다  고려해 가면서 민첩하게 가야 한다. 대신 반대급부도 있다. 도로에서 차량으로서 혜택을 훨씬  적게 받기 때문에 사람과 차량 사이의 중간지점, 눈감아 줄 수 있는 영역을 악의 없이 활용할 때  누릴 수 있는 이점들이 있다. 빨리 빼줘야 하는 상황에서 역주행을 한다든가, 노란색 신호에서  횡단보도를 빨리 지나간다든가. 자전거의 이런 행위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자전거가  도로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도 안 되고. 소수자로서 불리한 도로 상황을  뚫고 생존할 때의 자부심이 크다. 요즘은 아예 도로의 오른쪽 끝, 심지어 노란 선 바깥으로  다니는데, 한 번도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지 않고 주행하면 짜릿할 정도이다. 또 요령 있게 잘  타다 보면 매연도 덜 마시게 된다. 배기가스가 나오는 부분을 피해서 옆으로 빠진다든가, 여러 번  도로 경험을 하다 보면 대충 어디에서 숨을 멈추면 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운전 도중 다른 생각은 안 하게 되는가?

사실 자전거를 타면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 도로와 구간,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생각하고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원고 청탁받은 게 있을 때 원고를 구상해야지라고  생각해도 대개는 잘 안 된다. 그런데 어쩌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생각을 되뇌면서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바로  수첩에 적어 둔다. 2009년에 미술평론가들이 모여 전시한 적이 있다. 평론가들보고 작품을  내고 전시하라고 하니 초유의 사태인 거다. 평론가 9명에게 요청했는데, 대학에서 실기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물론 작품의 물리적인 결과물을 잘 만들었느냐만 가지고  평가받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해봤던 사람과 안 해본 사람 간의 차이는 있다. 적지 않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자전거로 주행하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걸로  전시했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는데, 노량진역에서 장승배기로 꺾어지는 도로에서 좌회전하는  순간이었다.


그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어떤 아이디어였나?

좌회전한 뒤에는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이젠 오르막 오르기가 전혀 어렵지는 않지만, 자전거의  오르막 주행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정치적 맥락과 결합하면 재밌겠더라. 이를 퍼포먼스하고  영상으로 만들었다. 리움 미술관에서 남산 정상까지, 그리고 청와대를 거쳐 북한산 정상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면서 책을 읽는 작업이다. 매슈 바니(Matthew Barney)라는 유명한  작가의 ‘구속의 드로잉’(Drawing Restraint)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제목을 차용해 ‘구속의  읽기/쓰기’(Reading/Writing Restraint)라는 명칭을 붙였다. 리움에서 매슈 바니 드로잉전을  예전에 했었다. 리움에서 출발해서 남산 정상까지, 자전거 핸들에 독서대를 장착해 매슈 바니의  책을 읽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다. “어, 매슈 바니, 이거 힘드네!”라고  하면서(웃음).




자전거에 대한 ‘탈신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자전거에 엮인 신비란 뭘까?

일상과 완전히 분리해 자전거를 타려 하는 문화를 말한다. 내가 각별한 자전거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한국 자전거 문화와 나와의 편차는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전거 동호회도 그렇고 사람들이 모여서 자전거를 탈 때면 특유의  집단정서가 많이 작용한다. 어느 정도의 장비와 착장을 하고 나오도록 하는, 아니면 안 끼워 준다는 암묵적이거나 혹은 명시적인 조항이 있다. 그렇게 모여서 가평이든 어디든 가서 유명한  맛집에서 뭘 먹고 돌아와서 기념사진을 올리는 식이 많은데 놀기 위해 실제 삶에서 유리된 곳을  방문하는 것은 내가 즐기고 싶은 문화는 아니다. 나는 혼자 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고 내가 정한  행선지를 이동해 가는 과정과 노선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편이지, 자전거를 명목 삼아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서 이벤트처럼 하는 것, 일상과 분리된 어떤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것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자전거 사고를 두 차례 겪었다고 들었다.

한번은 뺑소니 사고였고 2010년 사고는 큰 사고였다. 두 번 다 머리를 다쳤다. 2007년 8월 31일  저녁 8시경 귀가하던 중 (목격자들의 증언으로는) 모범택시가 치고 달아났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고 피를 엄청나게 흘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응급차와  경찰을 호출해줬고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머리 안쪽에 여섯 바늘을 꿰맸다. 이 사고는 신체적  외상이나 뺑소니범의 검거보다는 경찰이 자전거 사고와 사고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대해  체험한 사고였다. 아주 마음이 아프지만 경찰의 행정 처리와 자전거에 대한 인식에 굉장히  실망했다.


2010년도 사고도 차량과의 접촉사고였나?

문제는 내가 그것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다. 남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발생한  사고였는데, 남산의 그 길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 경위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 한다.  퇴원할 때까지 사고를 어떻게 당했는지 전혀 기억을 못하다가 119에 전화해서 응급차를  불러준 목격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가 타고 내려오다가 갑자기 휙 날아갔다고 한다.  앞뒤로는 차가 없었다고. 내가 봐도 차와의 접촉사고는 아니고 내 짐작이건대 너무 피곤한  상태여서 정신을 잃었거나 다른 누구를 피하려다 잘못 틀어 날아갔거나 둘 중 하나다.


지속되는 후유증이 있는가?

아무래도 다친 부위가 뇌이다 보니까. 사고 때부터 입원하기까지의 기억은 순간순간으로만  남아 있다. 그 이후로 기억력이 많이 나빠졌다. 또 이건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비현실감이라고  해야 하나? 술을 아주 많이 마셨을 때와 같은 상황이 된다. 술을 마시면 천천히 올라오고 서서히  떨어지는데 요즘은 순간적으로 술기운이 올라왔다가 순식간에 확 깬다. 뇌가 좀 오작동하는 느낌이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도, 퇴원한 직후도 술을 아주 많이 마셨을 때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 맞는 건가 헷갈리는 느낌이다. 눈물이  슬퍼서 나는 게 아니라 지금도 좀 그러한데, 수시로 고인다. 같은 일에 대해 기분이 관대해졌다가  예민해지는 기복이 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비현실감이 강해서는 수첩에 ‘현실 맞다’라고  적어둔 것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비현실감을 느끼고  기억력이 나빠졌다 하더라도, 지금 일들을 다 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자극되어 더 잘될 때도  있다. 받아들여야 한다.


<스타일 H> 기고에서, “자전거는 도로에서 소수자이고 주객일치로 불리한 상황에서 도로 상황을  뚫고 가야 하는, 이런 불리한 조건까지 수용할 때 진정 자전거 생활을 사랑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사고 이후에도 같은 생각인가?

사고로 인해 도로를 타기가 훨씬 더 무서워졌다거나 또다시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사고에 대한 상상은 사고 나기 전에도 했고 후에도 마찬가지다. 사고 이전에도,  자전거를 타기 전에 험악한 사고 상황을 상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타기 시작하면 운전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달라붙어 있지 않는다. 조심해서 살살  가야지라는 생각도 금세 잊고, 도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달릴까 집중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사고를 피하고자 느리게 가는 것이 절대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건 사고 경험자의 애먼  해명일 수도 있는데, 사고가 발생하는 데에는 우연적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한다. 나의 의지나 주변  상황과 상관없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든 사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게 내 입장이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다 말다 하는 게 아니라, 생활과 밀착해서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름마다 유럽여행을 가는데, 북유럽 덴마크의 자전거 문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 타는  풍경이나 문화가 어떻게 그 나라 사람의 수준을 말해주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고 싶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용인되지 않는 풍경일 텐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그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치심의 상한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행자 배려라는 일차원적 생각을  떠나서 정신문화가 달랐다는 게 놀라웠다. 치마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을  보고 감동을 할 정도였다. 서울에서 자연스럽고 실생활과 밀착된 자전거 풍경은 좀 어려울 것  같다. 토건사업식으로 도로를 뒤집어가며 만든 그 자전거 인프라의 경우 북유럽 자전거 도로  체계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많다. 두 가지 차원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북유럽과  달리 인구밀도가 확연히 높다. 차량도 매우 많고 사람들의 성격도 급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  빨리빨리 돌아가야 하는 사회적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전거가 끼어들 수 있는 틈새가 별로  없는 도시가 서울이다. 자전거 도로는 솔직히 민폐라고 생각한다. 깔아 놓아도 아무도 안 타니까  오히려 자전거를 타는 사람으로서 미안할 정도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비하하고 얕잡아 보는 마음이 여전히 많은데, 이게 자전거 인프라를 깔아놓는다고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자전거에 대한 배려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해선 어떤 노하우가 필요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알아보고 탐색할 의향은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인식의 변화를 위한 교육이나 미디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전거에 대한 문화 행사를 연다거나 책과 같은 매체를 통해 자전거 얘기를 쓸 의향은 있는지.

자전거 책을 한번 써 보고 싶다. 우리나라 자전거 책 시장은 양분되어 있다. 하나가 여행서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서이다. 둘 다 필요한 콘텐츠이지만 극히 양분화되어 있다. 자전거를  낭만적으로 생각해서 여행서를 본다거나 자전거를 실용적으로 정비하고 다루며 자신이  마니아라고 믿는 사람들은 존재하니까. 이런 단어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전거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소수의 독자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라도  정리하고 싶은 자전거론이 있다. 자전거 에세이 형태로 도난, 사고, 기계 자체가 주는 매력 같은  것. 예를 들면 휠(바퀴)에 관해서라면 기계적 메커니즘을 적는 게 아니라 휠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감정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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