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34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7회분. 신간 소개 포스팅 때문에 계속 한 주 씩 밀려서 글을 올린다.
축소된 세계 확장된 미학
상좌. 아이다 마코토, 믹서기, 2001년
상우. 제이크와 디노스 채프만 <모든 악의 총합> 전시 장면 2013년
하.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 1562년
축척의 비율을 조절하여 얻어낸 초소형 세계가 디오라마다. 축소된 세상을 보려는 높은 수요가 입체 모형물 디오라마뿐만 아니라 <걸리버 여행기>처럼 소인과 거인 나라를 묘사한 상상 속 이야기들을 양산했다. 실제 과거의 역사 현장을 현재 시점으로 수평 이동시켜서 한 눈에 보게 만든 디오라마 특별함 때문에 디오라마의 본래 제작 목적은 교육용 모형물에 있었다. 그렇지만 디오라마의 구성이 시각적인 재현으로 귀결되는 점과 실물을 초소형으로 집약시키는 노동집약적 장인 기술에 보는 이가 탄복하는 점으로 인해, 예술 관람에서 얻는 감동과 등가의 효력을 발휘하면서 예술 작품마저 디오라마의 형식으로 제시된 예가 적지 않다.
시간의 흐름을 담은 이야기를 공간예술로 구현시키는 디오라마는 밀집된 구조물 속에 무수한 이야기 전개를 숨겨놓기에 유리한 구성을 지닌다. 숨은 그림 찾기 방식의 구성에 심어진 허구적 비약들은 높은 구경거리로 인식된다. 2차 대전 무렵 나치가 포로수용소에서 인류에게 실제로 자행한 야만을 초소형 입체물로 차용한 제이크와 디노스 채프만 형제의 디오라마 작품도 잔인한 역사에 상상력의 과장을 덧대어 충격미학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경우이다.
채프만 형제의 작품 속에 번번이 등장하는 산더미처럼 시체를 쌓아놓은 과시적인 만행 장면이나, 인체에서 분리시킨 머리를 꼬챙이에 무수히 매단 엽기적인 장면들이 실제 나치시대에 벌어진 것 같진 않다. 그렇지만 인류가 기억하는 극악무도한 역사의 체험에 허구적 상상력을 슬쩍 개입시켜서 얻는 충격 효과는 실로 크다. 고작 초소형으로 축소된 세계 모형이 만드는 위력이 그렇다.
그림이나 등신대보다 크게 제작된 조각품과 비교할 때, 디오라마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라면 조감도처럼 대상을 아래로 내려 보게 만든 시선 구도이다. 이런 시점은 보는 이에게 전지적 우월감을 안길 수 있다. 물론 일부 회화에도 디오라마적 시선은 확인될 수 있다. 군상들로 빼곡 들어찬 광장을 하늘에서 내려 본 일련의 풍경 그림들이 그렇다. 이는 입체 디오라마가 참조했을 원조인지도 모른다. 해골 형상의 죽음 군단이 몰려와 산자들의 터를 일거에 밀어내는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는 하나의 시공간 안에 무수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디오라마의 구성과 같다.
축소된 모형과 거대한 관람자 사이는 작은 대상을 물리적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전지적 시점 때문에 은연중 종속 관계를 취한다. 관객을 압도하는 대형 회화/조각의 일방적인 감동 공식의 틈새를 비집고 얻어낸 디오라마만의 변별적인 미학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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