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6일(목) 16시30분. 롯데시네마 건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ur> (2013) 시사회.
별점: ★★★★
노출수위가 굉장히 높은 농염한 영화다. 일반적 에로물과 비교할 때 다른 점이라면 뒤엉킨 이성의 알몸으로 제시되기 보단 여성 인체만 집중적으로 노출시켜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영어 제목 <Blue Is the Warmest Colour>을 번역한 거고,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의 불어 제목은 극중 여고생 아델의 이름을 딴 <La Vie d'Adele – Chapitres 1 & 2>이다. 혹은 이 두 제목을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혼용해서 쓰는 것 같다. 극중 여고생 아델 역을 맡은 아델 엑사르쇼폴로스의 실제 나이도 1993년생이니 어리다.
소설(희곡?)의 지문을 학생들에게 따라 읽게 하는 고교 수업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사는 '첫눈에 사로잡혀 사랑이 이뤄질때의 감정'에 관해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다. 이어지는 장면에 휴게실에 모여앉은 여고생 집단 사이를 지나가는 (에단 호크를 아주 약간 닮은 눈매의) 남학생과, 그와 곁눈질을 주고 받는 여고생 아델이 놓인다. 이쯤 되면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될지 감을 잡을 수 있고, 전반부의 맥락은 그 감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랑의 뜨거운 징조를 품고 있는 바로 그 곁눈질을 통해 아델이 순간적 충동으로 투신하는 대상은 우연히 남자처럼 생긴 미대 4년 여학생 엠마. 그게 아델의 성적 취향인 거다.
아델과 엠마가 양가의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나눌 때 먹는 음식도 재밌다. 개방적인 엠마의 집안에선 아델이 평소 좋아하질 않았던 굴 요리가 우연히 제공된다. 아델이 굴을 먹을 수 있도록 엠마가 굴에 레몬을 뿌려 먹어야 하며, 신선한 굴은 레몬을 뿌렸을 때 움찍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둥의 설명을 해주는데, 굴을 맛있게 먹는 요령에 대한 엠마의 해설은 여지없이 '여자 취향'을 지닌 아델과 엠마의 관계를 진하게 암시하는 장치가 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청소년기에 흔히 눈뜨는 동성애 감정에 촛점을 맞춘 동성애물 같진 않았다. 영화 초반에 곁눈질로 사랑이 진전한다는 소설의 지문은 아델과 엠마 사이의 사랑 진전에서도 잘 포착된다. 핸드 헬드 카메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화면 속에는 아델의 눈매와 입언저리가 클로즈업으로 자주 잡히는데, 이 관객시점은 엠마의 시점이기도 할 것이고 이 시점은 아델에게 느끼는 엠마의 농염한 감정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알몸으로 아델과 엠마가 선 채로 교환하는 쿤니링구스 69 그리고 가랑이를 교차한 성교 자세는 스크린을 하나 가득 적나라하게 채운다. 그렇지만 긴 영화의 러닝타임 만큼이나 두 사람의 성관계를 롱테이크로 밀접하게 잡는 카메라의 시선은 금세 지루해진다.
러닝타임은 길지만 격정지수가 최고점을 찍는 서너 장면들이 관객의 긴장과 집중을 끌어모은다. 아델과 엠마가 처음 만나서 속내를 떠보는 장면에서 이름(아델)의 의미를 따져 묻거나, 엠마가 아델에게 삶을 선택하게 해주는 실존주의의 매력에 관해 일러주는 장면이나, 화가인 엠마가 그의 동료들과 에곤 실레와 클림트를 둘러싸고 미적 우열을 따지는 대화 장면 등은 미술전공자의 눈으로 볼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현대 미술에 대한 영화계 종사자의 안일한 태도를 느낄 만큼. 서로의 감정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내뱉는 유치한 대사의 총합은 실제로 애정이 발전하는 단계일 것이다. 아델이 게이 클럽에서 만난 왠 나이든 게이 남성의 대사를 영화 속에 삽입한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대상이 누구건 무슨 상관이야. 사랑하면 그만이지."
* 사랑하지 않아서가 외도를 한 게 아니라, 단지 외로웠기 때문이었다고 울먹이는 미숙한 대사도 맘에 든다.
** 영화를 통해 문화적 격차가 큰 다른 나라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은 이미 몇차례 밝힌 바 있는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그에 더해서, 높은 표현수위를 통해 차츰 개방 되는 세계인의 태도까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 시사회 일정표를 보고 영화를 고를 때, 나는 해외 평가지수를 먼저 확인해서 검수를 한다. 이 영화는 올해 2013 깐느 필름 페스티벌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해서 보러 갔다. 최고점까진 아니어도 별 4개는 줄 만하다. 그러나 3시간에 육박하는 긴 분량에 꼭 담았어야 하는 점이 점수를 아끼게 만든다. 내 취향은 역시 압축미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