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1227 짐 자무쉬 감독: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12월27일(금) 14시. 동대문 메가박스. 짐 자무쉬 감독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2013) 시사회. 


별점:  ☆







네임벨류의 지대함을 새삼 자인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국외 평가를 달리 확인하지 않고도 친숙한 감독 이름 만으로 시사회 관람을 결정한 경우다. 짐 자무쉬의 단편 <커피와 담배> 연작이나,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장편 <천국보다 낯선>이나 <데드맨>을 나는 이전에 모두 관람했지만, 새롭다는 느낌은 받았어도 각인될 만한 인상을 얻진 못한 경우였다. 그럼에도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감독이 짐 자무쉬라니 시사회를 찾게 되더라. 짐 자무쉬라는 네임벨류 외에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배우의 아우라로 3할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나는 재미없게 봤지만) 한국영화 <설국열차>에 출연한 틸다 스윈튼의 주연 발탁이나 말로우 배역에 존 허트의 인지도는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담과 이브라는 예명을 쓰는 커플 뱀파이어의 이야기이자 전에 없이 탐미주의에 심취한 뱀파이어 영화다. 영화 초입부터 화면의 조도가 너무 어둡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막 시작할 무렵 입장한 나는 좌석을 찾으려고 계단을 오르던 중 2번이나 헛발질을 할 만큼 실내가 무척 어두웠다. 이런 우중충한 조도는 영화 내내 이어졌는데, 처음에는 진중한 분위기를 잡으려고 낮은 조도를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빛에 노출되면 생명을 잃는 뱀파이어의 숙명을 드러내려고 낮은 조도를 유지했던 거다.  

20세기 초에 제작된 깁슨 기타를 비롯해서 앤틱 물품을 열광적으로 수집하는 아담과 현대적 삶에 친숙한 이브의 대조적인 모습은 그들이 온라인 통화를 위해 아날로그 전자 제품을 총 동원시켜 접속하는 아담과 간단히 아이폰으로 접속하는 이브의 모습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이브가 대놓고 사용하는 아이폰을 보고 있자니 아이폰이 이제 영어처럼 국제 통용어가 된 느낌을 받는다. 

뱀파이어 영화를 표방하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가 인간의 피로 영원한 삶을 보장받은 뱀파이어 커플을 통해, 세월을 거슬러 뱀파이어 커플이 작곡가 슈베르트에게 영감을 건넸다거나, 유별난 골동취미를 지닌 아담이라는 남성 뱀파이어의 집 거실벽에 역사적 예술가들의 초상액자를 무수히 걸어놓은 건, 이 영화의 목적이 결국 예술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고 진술하는데에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일 거다. 심지어 피를 공급받기 위해 '닥터 파우스트'라고 개명한 뱀파이어 아담에게 피를 건네는 의사가 그를 'Dr. Strange Love'(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속 인물임)나 'Dr. Caligari'(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영화 속 인물임)라고 고의적으로 틀리게 호칭하는 것조차 과거의 명화에 대한 오마주 혹은 환기를 위함이리라.

문화적 골동 취향을 지닌 아담이나, 세상이 축적한 모든 지식에 능통한 아담과 이브라는 전지적 뱀파이어 커플을 통해 이미 과거사가 된 예술에 대한 감독의 탐미적 오마주가 드러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짐 자무쉬의 영화론/예술론에 대한 중간 결산 같기도 하다. 소수자의 예술에 흔히 훼방이기 마련인 대중을 좀비라고 낮잡아 칭하는 것도, 예술을 감식하는 취향과 능력이 극소수에게 제한적이라는 믿음 때문에 나온 영화적 설정일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조화의 걸작이요,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며, 그 능력과 재능은 얼마나 무한한가. 그 자태와 거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지 않은가. 그 행동은 천사와 같이 아름답고 지혜는 흡사 신에게도 필적하지. 온 누리의 아름다음의 극치요, 만물의 연장이라"고 인간을 예찬한 햄릿의 대사 중에서 영화가 “그러나 내겐 그 인간이 한낱 먼지로밖에 안 보인단 말일세."라는 부분을 발췌해서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즉 예술에 몰이해한 대중을 향한 짐 자무쉬의 멸시. 대중이 관객인 영화에서 짐 자마쉬가 평소 부딪히는 대중소통의 한계가 전에 없는 뱀파이어 영화를 만든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 어떤 대사:  "물불 안 가려야 살아 남지."  / "인기는 그 사람을 버려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대문 메가박스는 공사로 에스컬레이터가 제한적으로 이용되었다. 오늘은 9층까지 이동하더라.
*** 영화에 삽입된 1975년 프랑스 방송 영상 Soul Dracula(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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