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9일 일요일

동물권 공감의 디딤돌, 반려동물 보호운동 (문화과학 17호. 2013년 겨울)

* 지난 10월말 '도망가고 싶은 심정'(엮인글)이었다고 고통스러워 한 그 문제의 원고. 발표한 모든 원고를 블로그에 어지간하면 공개하는 편이지만, 이 원고는 비공개로 숨겨두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부끄러운 원고조차 결국 발표 당시 내 수준에 대한 자성적인 기록이어서 공개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내심 자신있는 주제라 믿고 마감 이틀을 남겨두고 착수한 게 패착이었다.
원고는 <문화과학>(17호. 2013년 겨울)의 특집 '동물과 문화연구'에 수록되었다.
** 책에 실린 원문에는 총 9개의 각주가 달렸는데, 한글 hwp파일을 블로그로 퍼올때 각주를 같이 가져오는 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아래 글에는 각주가 생략되어 있다.


동물권 공감의 디딤돌, 반려동물 보호운동



반이정 미술평론가




윤석남, <1025>, 나무 위에 아크릴, 아르코 미술관 전시 장면 2008


전시장 데자뷔
2008년 서울 소재의 대형 미술관 전시실에서 7년 전 포천에서 내가 겪었던 시공간을 환기하는 체험을 했다. 전시실에 진입하자마자 마주한 작품은 바닥 깊숙이까지 채운 모래흙 위로 개들을 품종별 모양새로 깎은 1,025개의 침목들을 묘비처럼 세운 대형 설치물이었다. 칠순의 여성 미술인 윤석남의 작업량도 놀라웠지만, 한복 차림의 어머니, 여인 행상, 고무신, 뽑아낸 심장에 박힌 못, 거대한 자궁, 허난설헌 등 흔히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관행적인 도상과 현대 여성주의에 정신적 연대를 잇고 있는 머나먼 선배 여성들을 향한 오마주가를 내세웠던 게 그동안 윤석남의 작품 성향이었던 점에서 너무 큰 변화였다. 너무 낯익은 윤석남의 도상들과 비교할 때 2008년 내놓은 신작의 관심사는 여성 동지의 연대감에서 버림받은 유기 동물로 유연하게 이동해 있었다. 전시장 두 층을 채운 1,025개의 개 모양 침목은 윤석남이 2003년 언론 보도로 접한 포천 유기동물보호소 ‘애신의 집’(현 ‘애신동산’)에 수용된 동물 개체수를 따온 것이다.

전시실 입구로 들어오는 관람객을 향해 고개를 든 천여점의 유기동물 모양 침목은 7년 전 내가 ‘애신동산’ 철제문을 따고 들어설 때 내게 달려들던 수십 마리의 개들을 연상시켰다. 포천의 산 중턱에 기울어진 산세를 따라 동물 막사를 세운, 국내 대표 유기동물 보호시설 ‘애신동산’은 칠순 이애신 할머니가 1982년 평창동에서 버려진 고양이 13마리와 동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주민들의 원성 때문에 원년에는 삼각산 일대에 동물들을 풀어 방목하듯 부양했다. 직장에서 귀가해서 밤 12시가 넘으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선과 밥을 비벼 산에 올라가서 유기동물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는데, 이런 기행을 7년 간 계속 이어가자 남파 간첩이나 무당으로 오인 받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삼각산에서 철수한 후로는 경기도 일영 등을 거쳐 현재 위치한 포천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유기동물의 개체수도 1천마리대에 육박해 노인 홀로 부양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영세하나마 포천에 보호소 자리를 잡은 후에도 고초는 이어졌다. 여전한 민원 제기와 특히 복날 전후로 기승을 부린 극성맞은 개도둑의 침입, 무방비한 소방 대책 때문에 발생한 2차례의 화재까지.

전시장에서 침목의 형태로 다시 만난 유기견들은 나의 잠든 기억을 깨웠다. 그 기억은 ‘애신동산’으로 봉사하러 다니던 2001년과 2002년 무렵의 짧은 시기로 고정된다. 인터넷에 개설된 다음 카페 ‘애신의 집’(현 ‘애신동산 봉사단’)을 통해 수유역에 모여든 생면부지의 봉사단원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단체로 버스에 올라타 포천으로 함께 이동했다. 포천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1주일여 개 우리 안에 수북이 쌓인 배설물을 수거하고 우리 마다 사료와 물을 보급하는 것이었다. 각별히 복날 전날밤을 기해 보호소 외부에 조를 나눠 텐트를 치고 개 도둑을 감시하고 순찰 도는 일을 하기도 했다.

지나간 날을 돌아보건대 포천 동물보호소로 내가 듬성듬성 봉사활동을 다닌 2001년 전후는 기틀을 잡지 못한 한국 동물보호 운동이 어리숙한 눈으로 척박한 동물권의 현실과 직면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의 대표 동물보호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Korean society for animal freedom)’가 1999년에 설립되었고, 일반인에겐 여전히 생소한 ‘동물권(animal rights)’이라는 용어를 단체명에 삽입해서 2006년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s)’로 거듭난, 전신 ‘아름품’도 2002년 설립되었으니 말이다. ‘카라’는 2010년 농림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설립 초기에 비하면 운신의 폭이 훨씬 신장되었다. 지금이라고 큰 차이가 있을 턱은 없지만, 동물보호 운동의 맹아기에는 자발적으로 모인 초면의 봉사단원이 봉사를 다녀온 직후 마땅한 결산 없이 해산하기를 반복하던 시절이었고, 보호소와 관련해서 문제라도 발생하면 그때그때 정해진 매뉴얼 없이 회원들끼리 모여서 대책을 궁리하던 시절이다. 때문에 동물보호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연대로 맺어지는 일도 없이, 선의에 따라 봉사하던 때다. 체계적인 조직이 아니어서, 이권 개입을 목적으로 봉사단을 찾아온 불순한 의도의 사람로 인해 내부 갈등의 생기는 일도 드물지만 빚어졌다. 숙련된 지휘계통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동물 보호에 대한 개개인의 선의에 따라 운영된 탓에, 체계적인 봉사활동 노하우가 축적도진 못했고, 봉사활동도 불안정하게 이어졌다.



한국의 동물권
독재정권의 지배를 장기간 받은 현대사를 통과하면서, 한국민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정부 차원에서 인권을 의식한 시점을 국가인권위회가 설립으로 본다 한들, 인권위 설립이 2001년이었고 2008년 정권 교체 직후 입법 행정 사법으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간으로서 인권위의 자립성도 의심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심지어 국회 운영위에서 “위원회는 행정부 소속”이라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신임 위원장(현병철) 스스로 부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인권에 대한 위원장의 이해력이 이 정도로부박하니, 국가적 차원에서 동물권 보호를 요구할 순 없는 처지일 것이다.

동물권이란 용어보다 동물에 대한 연민을 사회 구성원이 가까스로 깨닫는 때는, 선정 보도로 인해 구성원들이 한시적으로 분노를 느낄 때로 제한되어 있다. 기르던 개가 성가셔서 산 채로 쓰레기통에 버린 철없는 개 주인의 사연, 군부대 이전에 반대하려고 모여든 전투복 차림 시위대가 숨이 붙어있는 산 돼지의 네발을 밧줄로 매달아 능지처참하는 시위 사진, 또는 수목원에서 탈주한 늑대를 생포하지 않고 사살로 매듭짓고 안전사고를 대비한 조처였다는 수목원장의 해명을 들을 때 등이다. 무려 12년간 수목원에서 산 늑대의 탈출이라면, 관리 부실을 들어 수목원장이 책임을 져야할 일일진대, 자리 보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민가 피해라도 행여 발생할까봐, 문제의 원점을 숫제 제거해 버린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시청자에 대한 상시적인 교육 기능을 탑재한 점을 고려할 때, 동물을 주제로 삼은 방송 편성도 동물권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고 있다. 2001년 첫 방송이 나간 장수 프로그램 SBS <TV 동물농장>은 한국 가정에 애견 구입 붐을 일으킬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렇지만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 한국 시청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편성된 방송은, 무수한 애견 붐을 일으켰지만, 생명체를 선물처럼 충동구매하고도 관리가 어려워지면 스스럼 없이 유기하는 사태로 이어져 유기동물 증가의 한 원인이 된 건 분명하다. <TV 동물농장>도 그 점을 인식했는지, 2000년대 후반 편성에선 학대받는 동물 고발로 포커스를 맞춰서, 애견 사재기 붐이 만든 부정한 후폭풍에 균형추를 달려고 한 것 같다.

버려진 동물의 열악한 형편이나, 문명과 동반하지 못하는 한국 환경파괴의 민낯을 즉물적으로 보여주는 건 공중파 시청자에겐 부담일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 미담 사례로 기운 공중파 방송의 일방적 편성에 균형을 다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내에서 제작되어 발표된 시기도 2000년대 초반이다. 황윤 감독은 무한한 들판과 창공을 생활 터전 삼던 야생 동물의 생리를 협소한 철창살에 가둔 동물원의 이면을 다룬 <작별>(2001)을 시작으로 <침묵의 숲>(2004)에 이어, 도로 변에서 로드킬로 최후를 맞은 희생 동물의 개체수가 2년간 지리산 주변에서 최소 6천 건 이상이라고 폭로하는 <어느 날 그 길에서>(2006)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동물권의 실태를 다큐멘터리 영상 3부작으로 내놨다. <작별>이 보여준 동물원의 내부는 절멸종을 보호하는 시설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동물을 가두는 감옥이다. 우중충한 우리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는 코끼리의 무표정과 원숭이의 지친 얼굴이 백색 타일을 배경으로 보일 때면, 동물원 우리가 흡사 퇴락한 정신병동처럼 보인다.

우리에 갇힌 동물의 처지로부터 병동의 환자가 연상되는 것처럼, 동물 보호론자는 동물에게 가해지는 참혹한 대우가 고대의 미개 사회에서 주종관계 사이인 주인이 인간 노예에게 가하는 폭행이나, 북미 서부개척기의 흑인 노예가 받은 비인도주의적 대우에 비유될 수 있다. 동물 실험의 비인도주의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에 의해 행해진 생체 실험에 비유된다. 때문에 유태인 작가 아이삭 바셰비스 싱어는 “생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라고 표현한다.

서구인을 지배한 사상적 전통인 유대주의와 고대 그리스 철학도 후대 서구인에게 비타협적인 동물권 인식의 근거를 마련했다.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인간에게 귀속시킨 구약성경은 동물에 대한 살해를 허용한다(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너희들의 양식이 되리라 -- 창세기 9장 3절). 종(種)차별주의(speciesism)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 깊게 뿌리 내렸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적이지 못한 동물을 잔혹하게 다뤄도 된다고 봤다. 희랍사상에선 피타고라스는 채식주의자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는 영혼의 개념을 도입해서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지었다. 동물은 고통과 쾌락을 모두 느낄 수 없는 기계라고 규정한 그의 기계론적 사유는 1980년대 수의학에까지 영향을 줬다. 동물도 인간처럼 통증과 공포를 느낀다는 점에, 현대 의학은 이견을 보이지 않지만, 불과 1980년대까지 수의사들은 동물에게 무마취 시술을 감행할 만큼, 동물의 통증에 대한 낮은 인식을 보여줬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현대적 인도주의는 여권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던 전근대기에, 극소수의 여권 운동가들을 조롱할 목적으로 빗댄 표현이기도 했다. 1792년 초창기 여성운동가 메리 월스톤크레프트(Mary Wollstonecraft)가 <여성의 권리 옹호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발표하자, 당시 저명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토마스 테일러(Thomas Taylor)는 이름을 숨긴 채 ‘남성과 여성에게 권리가 있다면, 동물에게 권리가 없을 이유가 뭔가?’라는 취지로 <짐승의 권리 옹호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Brutes>을 출간한다. 사회 구성원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것은, 그 사회가 백인종 우월주의와 남성 우월주의에 지배받아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동물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종차별적인 도그마는 통증을 감지하는 모든 생명체라면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to the interests)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 공동체의 공감이 아직 부족한 탓일 것이다.



여배우 매기 큐Maggie Q가 모델로 나선 PETA의 채식 권장 캠페인


여배우 조안나 크루파Joanna Krupa가 모델로 나선 PETA의 모피사용 금지 캠페인



여권과 동물권의 연결고리
여권이 오늘날의 수준으로 신장되기 이전까지 시각예술이 재현한 여성과 동물의 처우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성 상품화에 얽힌 여성의 육체나 음식물로 가공된 동물의 살은 홍등가와 정육점의 붉은 조명 아래에서 전시된다. 이 낯익은 현대적 풍경은 여성과 동물이 지배 권력으로부터 대상화된 노정을 유사하게 걸었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렘브란트로부터 수틴, 베이컨, 그리고 허스트로 이어지는 도살된 동물 군상을 다룬 그림이나 박제된 동물 오브제들은 침상 위에서 알몸을 노출한 누드 여성이 짓는 무감동한 표정의 전통과 동기화 된다. 때문인지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는 정상적인 누드화에 대한 규정으로 모델 스스로 벗은 상태를 깨닫지 못한 경우라는 해석을 남겼다. 대상화된 알몸 여성이 담고 있는 ‘무관심의 미학’은 그리는 주체/관람 주체인 남성과 대상으로 그려진 여성 사이의 종속관계를 확인시킨다. 이는 먹거리로 대상화된 동물 그림의 긴 전통과 맥이 닿아있다. 여성 누드에 드리운 성차별주의(sexism)는 붉은 살덩어리로 치환된 동물 그림에서는 종차별주의로 계승되며, 그 둘은 소유자와 피소유자의 관계를 확인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성 운동의 발전사와 동물보호 운동의 역사 사이의 근친성 때문인지, 혹은 여성의 타고난 모성본능 때문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동물보호 운동의 최전선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20세기 초반 현대적 동물보호 운동을 주도한 이도 무자비한 동물실험의 폐해를 고발한 스웨덴의 여성운동가였다.

미국의 대표 동물 보호단체, ‘동물의 윤리적인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의 공동 설립자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이도 여성 잉그리드 뉴커크(Ingrid Newkirk)이고, 우연히 한국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상임대표 조희경)와 ‘카라’(대표 임순례), 그리고 상징적인 한국 유기동물보호시설 ‘애신동산’의 주인(이애신)도 모두 여성이다. 동물보호소 현장 봉사 활동에서 관찰되는 성비 역시 남성보다 여성 자원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다못해 PETA가 주도하는 동물보호 캠페인 포스터에서 모피착용 금지, 채식 권유, 중성화 수술 권장, 동물 분양 홍보 등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서는 모델 중에도 파멜라 앤더슨, 홀리 매디슨, 샬롯 로스, 에바 멘데스, 나탈리 임브룰리아 등 유명인들은 대부분 여성이 다수다. 젊은 여성의 알몸 호소로 유명한 PETA의 캠페인 이미지의 도발성은, 젊은 여성 시위대의 알몸과 정치적인 요구를 결합시켜서 해외 토픽이 되곤 하는, 우크라이나 여성주의 단체 피멘(Femen)을 연상시킬 만큼 유사하다.

동물 보호 운동의 최전선에 여성이 주도적인 게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느린 속도로 차음 사정이 개선되곤 있다지만, 여성과 동물이 남성우월주의와 종우월주의의 대상화가 만든 피해자인 점에서 여성과 동물을 통하며, 모성본능이 강한 여성이 소수자의 아픔에 쉽게 감정이입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세기 여성 인권의 질박한 형편으로부터 오늘날 동물에게 가해진 부당 대우의 선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지나간 여성 운동의 노정과 투쟁의 노하우로부터 동물보호 운동의 대안적 선례를 참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정치는 개인으로부터
소신 때문에 불리한 싸움에 개인 자격으로 연신 매달리는 건 진 빠지는 싸움이 된다. 오늘날 한국 동물 보호 운동의 수준을 그저 걸음마 단계라고 볼 순 없으리라. 그러나 공동체의 절대 다수가 동물권에 관한한 악의 없는 몰이해의 장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동물보호 운동은 개개인이 자기 소신을 지키는 외로운 싸움이기 쉽다. 과거에는 그랬고 현재까지 절대 다수 동물권 싸움은 법의 보호 아래에서 맞서는 투쟁이기 보다, 개인의 소신을 지키는 일에 훨씬 가깝다. 절대다수 부동층 유권자의 무관심 때문에, 변모를 꾀하기 힘든 한국 정치 현실에 비유하면 어떨까. 동물권의 인식은 개선과 개악을 파도처럼 오가면서 흘러왔다. 개선의 역사는 길고 느렸으며 종종 퇴행하기도 했다. 여권 신장의 싸움도 이와 유사한 노정을 걸어왔을 것이다. 여전히 부족함은 많지만 여권에 대한 인식은 5년 전과 다르며 10년 전과도 분명 많이 달라졌다. 굴곡은 있을지언정 느린 속도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개인이 동물보호의 의지가 지닌다 한들, 공동체의 장벽과 만나기 십상이다.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최후의 장벽’이라고 말한 인류 공동체의 오랜 습관이 외부의 장벽일 것이다. 그 장벽이 사악한 무리가 아니라 평범하게 성장한 보통 사람들의 습관이 만든 것이어서 무서운 거다.


개인과 단체가 동물권 소신을 지키고, 주변의 몰이해에 대처할 수 있는 해법을 열거해보자.

1. 식습관에 저항
“동물에 대한 태도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형성되는데, 육식의 의미를 따져보지 못하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고기를 먹게 됨으로써 우리는 대개 평생 그 습관을 유지하게 된다.” 포괄적으로 반려동물을 넘어 전체 동물권의 보장을 주장하는 피터 싱어는 동물권 수호를 위해 넘어서기 힘든 가장 큰 장벽으로 습관을 지목한다. 또 유년시절 형성된 식습관은 윤리적은 모순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면서 육식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의 모순에 대해 “동화책을 통해 동물들이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죽어야 하긴 해도, 적어도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 올 때까지는 행복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고 해석한다.

식재료에 따라 분류된 서구식 채식 식단이 양념으로 고기를 조금 넣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요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중도에 채식을 단념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식문화에 적합한 대안적인 ‘준’ 채식으로 비덩주의가 2006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소개된 적이 있다. 삼겹살 돈가스 스테이크 같은 덩어리 고기부터 피하는 식습관이 비덩주의다. 이것은 완전 채식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로 볼 수도 있지만, 비덩주의 자체를 유의미한 자기 식단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살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채식자나 동물권 수호자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고 한다. 동물이 잔혹한 학대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 원점으로 마음에 남아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붉은 고기 비덩주의-가금류와 어류는 먹는다-를 하고 있는데, 내게도 결정적인 원점이 있었다. 2006년 끼니를 해결하러 외출하던 길에 대로변을 따라 서성대는 불안정한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개의 거동으로 봐서 이내 차도로 진입할 태세로 보였다. 몰골은 꾀죄죄했으며 오랫동안 방치된 몸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한쪽 안구는 이미 백태가 껴서 시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보호협회와 연결된 인근 동물병원으로 그 개를 넘기고 나온 후, 고기가 들어간 식사를 하려던 원래 계획을 포기하고 채식단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귀가했다. 그것이 불완전한 비덩주의의 원점인 사건이다. 설령 어쩌다 비덩주의에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낙담하지 말고 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식습관은 오랜 세월 형성되는 거여서 반복적으로 실수할 수도 있다. 낙담해서 원래 육식단으로 복귀 하느니 동물살육 그나마 최소화하는 차선책을 꾸준히 이행하는 것이 현명하다.


2. 자원봉사 후원금
동물권의 소신을 지키는 직접 방법은 자원 봉사이고 간접 방법은 기금 후원일 것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설 동물보호소에 대한 봉사 프로그램과 후원금 계좌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보호소 대부분이 유기된 반려동물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봉사 활동도 유기동물의 처우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 후원금은 유기동물의 사료 지원과 예방접종 및 중성화 수술 비용 나아가 동물보호 캠페인 자료 제작에 두루 쓰인다. 후원금은 직접 봉사에 나설 처지가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간접적인 채널이다.


3. 교육 프로그램
그렇지만 동물권에 대한 낮은 인식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가장 큰 급선무는 대민 교육프로그램이리라. 교육대상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유년기에 형성되는 만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해야할 것이다. 여성운동도 유아기에 사람의 태도가 형성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수세적인 역할로 한정되어 묘사되던 전통 동화의 여성에 반해, 활동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아동문학의 개발에 주력한단다. 동물 보호 운동도 참조할 만하다.



미흡하나마
“어떤 경우에도 개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들이 개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일반적으로 개와 친하게 지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라는 피터 싱어의 말은, 지적하려는 바와는 무관하게 동물운동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개를 여전히 불법적 식용으로 애용하는 한국에서, 개 식용론자들에게 “소와 돼지의 동물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왜 개만 배타적인 동물권을 주장하냐?”는 반론권을 주기 때문이다. 동물권 주장은 반려동물을 넘어 포괄적으로 고통을 감지하는 모든 생명체에게로 확대되어야 맞다. 다만 한국 동물운동이 아직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구원에 집중하는 이유는 인간과 밀접하게 교류하는 반려동물이 동물권이라는 포괄적인 가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공동체의 공감을 얻어낼 용이한 첫 디딤돌이어서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그 대상의 생명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공감을 얻어낼 최선의 부담보다, 대다수의 공감을 얻어낼 무수한 차선을 모을 때 동물권의 인식도 확대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부조리에 맞선 노예해방, 인권운동, 여성운동 등이 그랬던 것처럼, 느린 속도로 천천히 나아지리라 믿는다. 


김혜정, 강아지를 주웠어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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