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4일 화요일

0624 님포매니악 볼륨2 Nymphomaniac: Vol.2 ★★★★

6월24일(화) 10시30분. 왕십리CGV <님포매니악 볼륨2 Nymphomaniac: Vol.2>(2013) 시사회.

별점: 







남다른 성적 조숙으로 공중부양에 버금가는 오르가슴을 체험한 12세 소녀 조의 모습으로 볼륨2가 시작된다. 볼륨1에 이어 님포매니악(색정광)인 조가 그녀의 과거사를 노인 샐리그만에게 털어놓는 천일야화의 연장선에 볼륨2가 있다. 조가 얘기하고 샐리그만의 듣는 영화의 대위법적 스토리텔링은, 조가 체험하고 실행한 무절제한 무정형 본능을 샐리그만이 수학 공식처럼 가지런히 재배열해서 듣는 형식을 따른다.

이 같은 대위법 구성은 볼륨2의 도입인 6장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의 대비로 배치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자신의 영화적 주제로 정하기도 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류블로프의 동방교회의 이콘(icon)그림이 샐리그만의 방에 걸려있는데, 그에 따르면 동방교회의 성화는 기쁨에 관한 것이고, 반대편에 수난사를 묘사하는 서방교회 성화가 있단다. 6장에선 서방교회의 수난사처럼, 갑자기 상실한 오르가슴을 되찾으려는 조의 과거의 수난사가 나온다.

샐리그만은 성경험은 물론이고 성욕 자체가 없는 무성애자라 고백하면서, 무절제한 욕망이 만든 조의 고통을 자신은 공감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영화에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기억 약간 가물가물). 무정형 질감의 리비도(조의 영역)는 논리나 공식(샐리그만의 영역)으로는 완벽히 풀이되기 어려운, 리비도 고유의 질감이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 마지막 반전에서 확인시킨 것 같기도 하다.

조와 샐리그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대비는 흑인을 니그로라고 부르는 조와 그런 표현을 인종차별이라며 주의를 주는 샐리그만의 태도에서 극명해지는데, “있는 그대로 거침없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 바닥의 매력”이라는 조의 항변이 퍽 맘에 와 닿았다. 비유하자면 정사 중에, 상대를 모욕할 의사는 하등 없으면서 험악한 표현을 주고받는 체험, 그런 체험이 있다면 그걸 떠올리면 될 거 같다.

유명한 현역 여배우를 반쯤 벗긴 채로 소파에 그녀의 ㄱ자로 구부려 결박시킨 화면에서, 굉장히 독보적인 비주얼을 연출자가 배려한 것처럼 느꼈다.



* <님포매니악>은 볼륨1과 볼륨2를 한 묶음으로 평가해야 할 게다. 볼륨2는 볼륨1에 비하면 신선도가 약했는데, 평균 수위를 뛰어넘는 노출과 표현이 <님포 매니악>의 매력 포인트인 점을 감안할 때, 볼륨1에서 상당 부분 체험한 강도로 내성이 생긴 감식안이, 볼륨2에 둔하게 반응한 탓 같기도 하다. 즉 동일한 강도로는 후속타로 연결되지 않는다. 볼륨2에서 느낀 또 다른 패착은 이야기를 수미쌍관 전개시키려는 감독의 강박이 관람 말미로 갈수록, 관객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반전은 한편 싱겁고 강박적인 설정이라고 느껴졌다. 세간에서 <님포매니악>에 관한한 선정적 수위가 주로 회자되는 모양인데, 실제 상영관 내부는 무거운 진지함이 지배한다.

** 영화가 끝나고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 여러 락커들이 불러서 록의 스탠더드가 된 '헤이 조 Hey Joe'를 어떤 여성 가수의 노래로 흘러나왔다. 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버전으로 이 곡을 갖고 있다. 

*** 바흐의 푸가와 베토벤의 푸가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짧은 언질이 영화 속에 있었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베토벤이 푸가를 이단적으로 해석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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