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운의 오르가슴 후속편.
술자리에서 취기가 정점까지 금세 도달 했다가, 허무맹랑하리 만큼 난데없이 평상심으로 수직낙하 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고 작년 이 맘 때 고백한 바 있다(엮인글). 당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밑줄 긋지 않은 페이지가 거의 없을 만큼 촘촘히 열독한 책이 근래 있다. 석달 전 출간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정신병 진단의 통계편람(DSM)이 제약회사의 농간으로 기준이 느슨하게 완화되어, 일상적 근심이나 분노마저 정신병으로 둔갑하면서 진단 과열을 불러왔다고 책은 지적한다. 공감 가는 지문이 많다. 제약회사들이 예비 환자들을 포섭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매혹적인 표현이 바로 '화학적 불균형'이다. 화학적 불균형만 바로 잡으면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이 유혹적인 판촉 문구에 맞설 수단이 없단다. 평소 내가 품은 소신이 책 속에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적혀 있었다.
"우리는 시간, 자연스러운 회복력, 운동, 가족과 사회의 지지, 심리 치료의 놀라운 치유력을 좀 더 믿어야 하고, 화학적 불균형과 의약품에 대한 자동적인 믿음은 좀 더 줄여야 한다." -- 237쪽
정신 의학계의 과잉 진단을 향한 저자 앨런 프랜시스의 입체적인 지적에 크게 공감이 됐다. 그럼에도 긴장-이완, 분노-포용 처럼 상이한 정서들이 뒤엉킨 파동처럼 머리 속을 지나가는 느낌을 받는 처지에서 말하건데, 화학적 불균형이 지배할 때면 눈가가 화끈 거리고 안면 근육은 땡김이 느껴지며, 자기 안에 다른 얼굴을 한 무수한 자기들이 출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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