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금). 한달 가량 지속되는 불완전한 후각/미각에 대한 근심 때문에, 고심 끝에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질 않고 전날 전화예약을 잡은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고 왔다. 8월 중순의 요통이나 8월 말의 후각/미각 상실이나, 결국 혼자서 고민하며 버티다가 종합병원에 이르는 꼴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후각 기능을 객관적으로 수치화 할 도리가 없어서, 주관적인 판단으로만 내 후각의 정상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다. 보라매병원에선 과연 비기능검사(후각 기능 검사)를 별도로 하더라. 보험 적용이 안 되는지 비기능검사비는 4만원 이상 나오더라. 비기능검사는 십수개 이상의 검사지의 냄새를 맡은 후, 어떤 향인지 표시하는 검사다. 답안은 총 3개의 후보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답안에 오른 후보로는 '장미' '오이' '연기' 초콜릿' '땅콩' '라임' '레몬'....등등이 적혀있고, 왠지 대충 맞힐 만 했다. 비기능검사를 마친 후 다시 의사에게 돌아와 결과를 들었는데, 의사 소견에 따르면 내 후각 기능이 '정상'이라는 거다. 그는 덧붙여서 후각 기능 검사에서 심지어 정상인 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는 거다. 이럴 수가 있나...
보라매 이비인후과 의사는 내게 한달 정도 약을 써보고도 이상하면 다시 오라했는데, 심지어 내복약을 하나도 처방해주지 않고 코 안에 뿌리는 나잘 스프레이만 처방해줬다. 그동안 동네에서 처방받은 약이 너무 셌다는 거다.
좀 더 지켜볼 일이나, 보라매 병원의 진단에 따르면, 내가 삶의 무의미함까지 절감했던 후각/미각 상실의 해프닝은 어쩌면 약 1달간의 고초로 끝날 전망이다. 내 안에는 어떤 상황이건 최악의 결과를 전제하는 오랜 관성이 숨어 있다. 이 버릇이 비관주의를 키우는 요인 같다. 또 기대치를 평균보다 높게 잡아두는 관성 때문에 후한 평가에 늘 인색하게 된다. 요컨대 후각/미각이 느린 속도로 회복되는 건 나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속도가 더디고 회복된 후각/미각도 내 기대치에 한참 미치질 못해서 후일 후각/미각이 어쩌면 상실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까지 이르렀다. 성미가 급한 편이라 예상한 결론을 신속히 얻지 못하면 조바심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현재의 후각/미각의 불완전성에 나는 쉽게 안도 할 수 없었던 거다.
오죽하면 보라매병원을 방문하기 바로 전날, <서강대학교 학보사>에서 며칠 전 내게 청탁한 에세이 주제로, 한달여 체험하고 있는 이 후각/미각의 상실에 관해 적어 보냈을 정도다.
전문가의 확답이 비전문가에게 주는 확신의 무게는 실로 지대한 것 같다. 보라매병원에서 내 후각이 정상이니 천천히 기다려도 될 거라는 답을 들은 직후, 초조함을 안겼던 불완전한 후각/미각에서 심리적 불편함을 더는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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