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수)
권오상 'Structure' (2014.0912~1108. 페리지갤러리)
0913(토)
봄로야 '사라의 짐' (2014.0814~0921. 얼터에고)
0915(월)
정해진 '호피-명작' (2014.0912~0925 한옥)
정희승 (2014.0808~0930 PKM)
0916(화)
난지 8기입주작가 비평워크샵 (15시. 난지스튜디오)
0917(수)
이경 '느낌 언어 그리고 색채' (2014.0901~0928 로얄)
Catherine Wagner (2014.0829~0920 이유진갤러리)
리카 재단상 수상 작가전 Me+You in a living room (2014.0918~1129 송은아트스페이스)
0919(금)
부산비엔날레 '세상 속에 거주하기' 프레스 개막 (2014.0920~1122 부산)
0921(일)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2014.0626~0921 일민미술관)
J 'The century of melancholy' (2014.0917~0922 인사아트센터)
김영은 '맞춤벽지음악' (2014.0918~0925 솔로몬빌딩+케이크갤러리)
0924(수)
창작지원전 - 서해영, 김의식, 이원호 (2014.0803~0824 김종영미술관)
KIAF/14 (2014.0925~0929 코엑스 hall A&B)
0926(금)
XX (17시. 덕수궁미술관)
0929(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 이불 (2014.0930~2015.0301 국립현대 서울관)
권오상 'Structure' (2014.0912~1108. 페리지갤러리)
3차원 입체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평면 시각예술의 이점을 흡수하는 재량이 권오상 기량의 절반 이상일 거다. 의도적으로 복잡한 3차원 구조물을 거대한 평면 사진 설치물로 옮기거나, 망점까지 전부 드러나는 저해상 이미지를 과감하세 사용한 이번 전시를 보면서, 초반보다 사진매체를 다루는 자신감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봄로야 '사라의 짐' (2014.0814~0921. 얼터에고)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 8월 현장평가에 포함된 전시.
드로잉, 간소한 설치물, 단문 에세이, 노래CD 이 모두를 담은 책자와 음악 공연의 패키지. 봄로야의 개인전은 다원적 장르로 전개되는 이 시대 시각예술가의 한 징후로 보인다. <사라의 짐>이라는 제목의 책도, 그 안에 수록된 내용도 동음이의어를 비트는 유희로 채워져 있다. 요컨대, ‘사라짐’으로부터 사라, 짐(Burden), 짐(Jim), 급기야 사라와 짐 사이의 임의적인 대화를 담고 있다. 짐작컨대 누군가와의 결별(사라짐)으로부터 ‘사라’와 ‘짐’이라는 두 인물을 지어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동음이의어의 유희는 이외에도 많다.
기억의 재구성을 Re-collection of recollection으로 옮기는 행태도 그렇다. 봄로야의 책 <사라의 짐>과 이번 전시가 자신의 지난 기억들을 재구성하면서 스스로를 위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나아가 불특정 다수의 지난 기억을 치유하는 관객참여 작업도 전시와 책자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지난 기억이란 실연의 상처로 구성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라의 상대인 짐(Jim)의 이름을 들어 “짐 같은 나의 기억 덩어리들”이라고 칭하는 것일 테다.
전시된 작품은 동일한 대상의 상반되는 한 쌍으로 나란히 열거하는 작업이 많았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마저 ‘도피하고 맞서고’처럼 짓고 있다. 봄로야의 작업은 긴장감 혹은 심리적 결여가 창작의 동력인 것으로 보인다. 봄로야의 작업은 개인적 사연이 중심이어서 나같은 외부 평자가 알기 어려운 사적인 지점을 다루는 것 같다. 봄로야와 공감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관계 문화’인 것 같고, 이처럼 인간관계의 회복을 도모하는 역할이 아마 예술의 원점이리라. --- 내가 제출한 평가
정해진 '호피-명작' (2014.0912~0925 한옥)
정해진 '호피-명작' (2014.0912~0925 한옥)
새로운 동양화가 모색할 수 있는 대안적 변주 가운데 서구 대중문화의 차용을 넘어, 서구의 오래된 유산의 차용까지 이르렀다는 걸 보여준 전시. 작가가 택한 전근대기 서구 명화는 이미 오랜 검증을 통과해서 가장 신뢰할 만한 아이콘으로 통하는 작품들이다. 비단 위에 공필로 옮긴 얀 반 아이크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익숙한 명화는 전혀 이질감을 주지 않더라.
정희승 (2014.0808~0930 PKM)
아트 스펙트럼 때 전시된 작품 말곤, 사실상 단 한점으로 승부를 건 정희승의 개인전. 사진전도 종래의 관성으로 보거나 비평할 수 없게 되었음.
난지 8기입주작가 비평워크샵 (15시. 난지스튜디오)
난지 워크샵은 다른 워크샵처럼, 작가가 평론가를 먼저 선택한 후, 평론가가 이를 수락하면 한조로 편성된다. 나를 선택한 난지 입주작가는 ‘한석현+유병서+’였다. 아래는 비평워크샵 이후 써서 보낸 최종 원고 가운데 일부를 추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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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현+유병서+’로 이름 붙은 아트 콜렉티브의 활동은 아래의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 본다.
* 키워드: 반미학, 콜렉티브, 일시성, 거대 모뉴먼트, 탈 미술관-현장 진출, 문화훼방, 관제(冠制) 미감의 재구성, 자기 지시self-reference, 놀이로써 예술,
(중략)
이 두 사람은 2006년 ‘micro/weiv’(한석현+유병서 외 20명)라는 이름으로 처음 콜렉티브를 결정했고, 해체 이후 2013년 다시 ‘한석현+유병서+’ 이름의 콜렉티브로 활동을 재개한다.
‘한석현+유병서+’ 콜렉티브의 성과와 당면한 딜레마를 정리해 본다.
이들의 일관되게 지향한 ‘놀이로써 예술’은 화단에서 실종된 창작의 원형인 점에서, 이들의 반-엄숙주의는 고무적이며 가장 기특한 성과라고 본다. 내면 깊이 작동하는 반제도성도 창작의 동력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이력으로 볼 때, 제도권의 기금을 받아 반제도적 작업을 수행해 왔는데, 후원 하는 제도권과 갈등과 협력의 긴장을 유지하는 자세가 중요할 게다. 보완점으로 지적될 부분은 작업의 첫인상이 남기는 패기에 반해, 언제나 느슨한 마감을 반복한다는 인상이다. 이는 메시지와 충격을 차츰 경감시키는 역효과가 있다. (후략)
이경 '느낌 언어 그리고 색채' (2014.0901~0928 로얄)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 8월 현장평가에 포함된 전시.
괴테가 1790년 시작한 초고를 무려 20년 가까이 첨삭한 말년의 작품이 있었다. 이 문필가는 말년에 희곡이 아닌, 과학서 <색채론>(초판 1810)에 매달렸다. 그는 인간의 성정과 색이 연관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래서 노랑과 파랑이라는 양축으로 집필을 진행했고, 노랑을 긍정과 밝은 성품으로, 파랑을 부정과 어두운 성품으로 연결 지었다. 그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에서 권총 자살한 베르테르가 괜히 파란 재킷 차림이었던 게 아닌 거다. 시각 예술가 칸딘스키도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쓰면서, 책의 한 장을 색채이론에 할애한다. 노랑과 파랑을 대비시킨 입장은 괴테와 같다.
색이 보편 언어라는 입장은 증명되진 않았지만 탄탄한 정서적 기반을 갖는 듯하다. 색은 저마다 속성을 부여받는다. 요컨대 ‘녹색 -> 숲 -> 자연과 생태’ 이런 도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색채이론은 이현령비현령이다. 안전한 퇴로로 언제건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다. 파랑을 우울하고 수동적인 색이라고 규정했다가, 쾌활하고 신선한 색이라고 돌려 말하며, 빨강을 악마나 범죄와 연결 짓지만 언제든 열정과 사랑의 색으로 낯빛을 바꿔도 전부 통하니 말이다. 이경의 개인전은 보편적으로 통하는 특정 색과 어떤 성질이 관계를 맺는다는 보편적인 공감에 대해, 주관적인 자기 경험을 도입해서 관계를 비트는 작업을 한다. ‘색채-언어의 관계’가 임의적인 연결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가설 하에 이경이 내놓은 작업들은 작가의 색채론과는 무관하게 장식적인 가치가 가장 높아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주관적인 색채론을 내세운 작업이지만, 미학적 유행이 지난 추상회화의 형식을 계승하는 ‘후기 추상적 열망’ 같기도 하다. --- 내가 제출한 평가
Catherine Wagner (2014.0829~0920 이유진갤러리)
처음 봤을 땐 앤틱 진공관 앰프를 근접 촬영했는 줄 알았는데, 수명을 다한 아주 오래된 램프였다. 램프 외에도 아주 오래된 맹인용 점자책 등 앤틴의 기록이 이 작가의 관심사인 모양이다. 점자책 가운데에는 카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심판, 성경 따위가 있었다. 일련의 진공관 앰프 사진은 바니타스 정물화을 여러 점에서 환기시킨다. 유리알, 인생 무상, 정적인 스틸라이프...
리카 재단상 수상 작가전 Me+You in a living room (2014.0918~1129 송은아트스페이스)
리카 재단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만 모아 놓았으니 최소한의 권위는 이미 보장받는 전시인 셈인데, 솔직히 내 품평을 밝히면 "이것 밖에 안되나?" 였다. 전시된 작품과 작가의 수가 제한 된 탓도 있겠지만, 프랑스 현대작가들은 올드패션한 창작 태도를 보여줬다. 또 테크닉적으로도 세련된 마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누드 퍼포먼스하며 먼 프랑스 선배작가인 다니엘 뷔랭의 라인line작업을 연상시키는 작업들만 봐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산비엔날레 '세상 속에 거주하기' 프레스 개막 (2014.0920~1122 부산)
부산 (비엔날레) 왕복에서 빚어진 멘붕의 해프닝은 앞서 한번 정리를 했고, 비엔날레 전시에 관해선 광주와 비교할 때 호의적인 편이라고 밝혔고, 광주와 부산을 함께 묶어서 아주 짧은 촌평을 다음달에 기고할 생각이므로 여기선 이 정도만.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2014.0626~0921 일민미술관)
한국의 모더니즘은 일민미술관이 줄기차게 고집하는 기획 주제다. 흡사 2000년대 전후 학계에 불었던 근대 연구 열풍이 연상될 정도다. 이제까지 일민미술관은 근대화 연작을 수차례 냈다.
군부가 방송을 장악한 시대를 산 세대(오늘날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두뇌 구조가 동시대인과 동일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열된 당시 자료는 군부 독재의 과정을 보여주는 전근대적 정치 기사와, 근대적 의상을 소개하는 상업광고와 서구식 음식을 선전하는 식료품 광고 따위나 뒤엉켜 있었다. 이러니 서구적 편의를 전근대적 정부 밑에서 누린 셈 아닌가. 정치의식이 제대로 뿌리내렸을 턱이 없으리라.
지난 시절 자료를 꼼꼼하게 액자에 담아 벽에 촘촘하게 늘어놓은 모양새는 살롱 회화 전시장을 연상시킨다. 이제 지난 시절의 일상적 사료가 후일 향수의 대상, 희귀한 가치를 담은 감상대상으로 지위 이동하고 있다. 박정희의 서거를 알리는 당시의 신문이나, 종로 3가 화신백화점을 축소한 모형물을 보고 있자니, 박정희의 죽음과 화신백화점을 생전에 모두 경험했던 이로서 내가 벌써 이런 세대가 되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필시 누가 대필해준 게 분명한 김신조의 자성 어린 고백도 낯 간지럽게 읽혔다.
"나는 감격해 있습니다. '김일성이가 나쁘지, 김신조에게야 무슨 죄가 있느냐' 하는 신문기사를 읽었을때, 과연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을까,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닌 밤 중에 나타나 가지고 천일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그것을 받아줄 줄 아는 사회의 아량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 김신조의 글
J 'The century of melancholy' (2014.0917~0922 인사아트센터)
작가에게서 개별 연락을 받아서 찾아간 전시회.
J 'The century of melancholy' (2014.0917~0922 인사아트센터)
작가에게서 개별 연락을 받아서 찾아간 전시회.
표면 처리를 지금보다 성심껏 세밀하게. 시각적인 감각자극도 지금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강도 높게. 주제도 대중문화니, 섹스어필이니, 섹스 아이콘 등을 두서없이 다룰 게 아니라 원포인트로 집중할 것. 내가 해주고 싶었던 조언은 이랬다.
김영은 '맞춤벽지음악' (2014.0918~0925 솔로몬빌딩+케이크갤러리)
청각 신호과 공간에 관한 김영은의 또 다른 실험극.
전시장에 걸린 악보는 흡시 근대기 시인 이상의 시를 연상시켰다.
기계같은 수행자로서 퍼포머를 정한 점이, 기계적인 연주를 지시하는 지휘자의 태도 같았다. 이번 사운드 공연은 건물이라는 공간 내부에서 입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이었다. 자세히 알 순 없지만 13번 정도의 소리가 한 단위로 여러번 반복되는 것 같아서 소리의 미니멀리즘을 공간에서 체험하게 만든 것 같았다.
'아'와 같은 모음으로 사운드 아트를 구성한 점이나, 음들의 단순하고 기계적인 배열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봐서, 김영은은 예술의 기본요소에 관심이 많다. 완결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에 대한 관심. 대개의 실험예술은 매체의 기본에 집중하곤 한다. 현대음악도 현대미술도.
김영은의 이번 공연 '맞춤벽지음악'은 소리+행위자의 퍼포밍+관람자의 공간이동 체험이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된다. 시작과 끝은 정해져있지만 감상자는 그 시작과 끝 혹은 공연의 서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그것은 해석의 지평을 무책임할 만큼 무한히 열어놓는다는 얘기가 될 게다. 결과적으로 예측가능성에 예속되지 않은 채, 관객을 단조루운 사운드 공연이 열리는 공간 속에서 꼼짝 못하게 만든 것 같기도 했다. 설마 그게 의도는 아닐 테지만.
* 내게 "이곳(황학동)에 와본 적이 있냐"고 묻는 김영은에게 1990년대 초중반에 중고음반을 구입하러 아주 드물게 방문한 적이 있던 곳이라고 답해줬다. LP와 CD의 시장이 위축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주 오래된 중고음반 가게 2곳은 연명하여 영업 중이었다.
창작지원전 - 서해영, 김의식, 이원호 (2014.0803~0824 김종영미술관)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 8월 현장평가에 포함된 전시로, 평가대상은 이원호만 해당된다.
세간에서 의심 없이 합의된 약속을 전복시키는 유희로 자신의 기량을 과시한 이원호의 전시다. 요컨대 평평한 땅을 테니스 경기장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다만 테니스코트 땅바닥에 그어진 화이트 라인인데, 이원호는 화이트 라인을 정성스레 수거해서 다른 장소에 옮겨놓는 작업들을 했다. 이런 작은 손질을 통해 테니스 코트는 그 고유의 경기장 기능을 일시에 상실하고, 화이트 라인을 옮겨온 모처는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미니멀리즘 조각을 설치한 것처럼 연출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종래의 순발력을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다. 작가 노트로 보이는, 벽면에 적힌 짧은 해설을 참조하면, 홍보물의 목적 지향성이 실제 풍경을 포스트 프로덕션을 통해 전혀 상이한 풍경으로 손질하는 현실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즉 포스트 프로덕션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의 일면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답게 후기 편집된 소형 홍보 인쇄물과 그 홍보물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했을 타이어, 할로겐 조명, 페인트 통 등을 너저분하게 늘어놓아 극단적인 대비를 시키려 한 것도 같다. 작품이 메시지를 선명하게 탑재해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해설 지문을 읽고도 설치된 작품의 내용을 어렵게 추정해야 하는 정도라면, 연출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게다. --- 내가 제출한 평가
창작지원전 - 서해영, 김의식, 이원호 (2014.0803~0824 김종영미술관)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 8월 현장평가에 포함된 전시로, 평가대상은 이원호만 해당된다.
세간에서 의심 없이 합의된 약속을 전복시키는 유희로 자신의 기량을 과시한 이원호의 전시다. 요컨대 평평한 땅을 테니스 경기장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다만 테니스코트 땅바닥에 그어진 화이트 라인인데, 이원호는 화이트 라인을 정성스레 수거해서 다른 장소에 옮겨놓는 작업들을 했다. 이런 작은 손질을 통해 테니스 코트는 그 고유의 경기장 기능을 일시에 상실하고, 화이트 라인을 옮겨온 모처는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미니멀리즘 조각을 설치한 것처럼 연출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종래의 순발력을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다. 작가 노트로 보이는, 벽면에 적힌 짧은 해설을 참조하면, 홍보물의 목적 지향성이 실제 풍경을 포스트 프로덕션을 통해 전혀 상이한 풍경으로 손질하는 현실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즉 포스트 프로덕션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의 일면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답게 후기 편집된 소형 홍보 인쇄물과 그 홍보물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했을 타이어, 할로겐 조명, 페인트 통 등을 너저분하게 늘어놓아 극단적인 대비를 시키려 한 것도 같다. 작품이 메시지를 선명하게 탑재해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해설 지문을 읽고도 설치된 작품의 내용을 어렵게 추정해야 하는 정도라면, 연출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게다. --- 내가 제출한 평가
KIAF/14 (2014.0925~0929 코엑스 hall A&B)
아트페어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카드를 매해 아트페어 측에서 배송해주지만, 거의 예외없이 분리수거 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던가 아트페어를 찾기 시작했다. 배울 점이 있다. 아트페어의 일반적 풍경은 극사실주의 회화, 안료의 재질감을 극대화시킨 회화, 팝아트, 아주 오래된 추상화가의 작품, 셀러브리티(영화배우, 가수)의 작품들이 항상 고정 부스를 차지하는 형국으로 제시된다.
XX (17시. 덕수궁미술관)
어떤 업무가 생겨서 집에서 덕수궁까지 자전거를 몰고 간 날.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 이불 (2014.0930~2015.0301 국립현대 서울관)
기하학적인 무정형 반사면을 구름처럼 바닥에 둥둥 떠다니게 얹은 설치물과, 파손된 우주선을 닮은 거대한 조형물. 이렇게 대형 설치물 2점이 이번 전시의 전부다. 이제 작품 단독이 아닌 공간 전체의 연출로 승부수를 던지는 건, 대형 작가들에게서 종종 관찰 되는 현상이 되었다. 이런 부류의 대형 설치물은 작품의 논점 속에 관객을 가두어, 정작 작품의 논점이 뭔지를 지목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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