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1일 일요일

서울-부산 왕복 간 아노미

  9월18일(목)부터 9월20일(토)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개막 방문을 위해 서울-부산을 왕복했다. 
규모와 위상에선 부산과 광주의 차이는 크지만, 부산비엔날레는 흔히 광주비엔날레와 비교되곤 한다.  올해 전시만 두고 본다면 나는 차라리 광주보다 부산이 나아 보였다. 프레스 개막식 하루 동안 본전시와 특별전을 모두 소화하는 일정이 퍽 빠듯했지만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으며 심지어 융숭한 대접까지 받아서 부산 안에서 일정만 두고 본다면 나름 쾌적한 하루하루였다.  


근데 정작 문제는 서울-부산 간의 왕복 차편을 잡으러 이동할 때마다 발생했고, 완전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서울 → 부산: 현 거주지(신림동 강남아파트)에선 서울역보다 광명역KTX가 더 가깝다. 그래서 광명-부산행을 끊었는데, 네이버나 다음맵에 따르면 지하철로 광명역까지 이동하는 게 가장 빠른 노선이어서, 신도림에서 광명행을 기다렸는데, 도무지 차가 오질 않았고, 신도림은 인천행과 천안행으로 나뉘는 역이라 광명행이 어떤건지 찾기도 힘들었고, 주변에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신도림에서 가산디지털단지까지 되돌아가서 광명행 기차를 타는 미련한 노선을 결심 했다.  ​그런데 가산디지털단지역도 마찬가지라, 광명역까지 가는 차편을 선명하게 구분할 수 없었고 주변에도 아는 사람이 없지 뭔가. 다급해진 나는 지하철역을 나와서 택시를 잡아탔는데, 기사 말이 "KTX차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차에서 내려 표를 끊어준 부산비엔날레 홍보팀에 전화를 걸어 차편을 취소하고 다음 차편으로 재예약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천천히 돌아가려는데, 이젠 지갑이 보이질 않는거다. 다급하게 택시정류장으로 뛰어갔더니, 내가 타고 가려했던 택시의 조수석쪽 문 바깥 도로 위로 다행히 내 지갑이 여전히 놓여있었다. 휴... 결과적으로 관악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광명역으로 이동했고, 부산에는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다. 광명역의 역무원에게 문의하니 광명역까지 오가는 지하철은 출퇴근시간에나 집중되어 있지 평시에는 거의 운행하지 않는다지 뭔가. 그것까지 네이버맵이나 다음맵이 알려주진 않았던 거다. 
  

부산 → 서울: 9월19일 프레스 오프닝의 전시관람 일정이 빠듯해서 부산시립미술관의 본전시를 약 7할 만 보고는 특별전시를 보러 이동하는 차에 올라타야했다.  그래서 20일 정오 무렵 상경하는 KTX차편을 끊은 터라, 그날 오전에 일찍 미술관에 다시 들르기로 마음을 정했고,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미술관까지 운행하는 307번 버스를 타고 벡스코에 내려서 미술관까지 이동했다. 가방과 짐을 정리한 후 미술관에 입장하려고 보니, 또 다시 지갑이 사라진 것이다.  세상에.... 그제서야 전날 서울에서 택시를 내릴 때 왜 지갑을 바닥에 떨어뜨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입었던 얇은 아디다스 주머니는 직각에 가까운 세로로 주머니가 봉합되어 몸을 기울이면 소지품이 쉽게 빠졌던 거다. 또 다시 정신적 아노미 상태. 
 일단 체념 하고 카드부터 정지시키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정신을 놓고 있던 터라 실수로 지갑에 있었던 KB체크카드가 아닌, 수첩에 꽂아둔 농협카드를 정지시키고 만 거다. 수첩은 소지하고 있었기에 내 유일한 자금줄이었는데 농협카드까지 사용 중지가 되어버렸다. 다행인 건 수첩에 비상금 1만원을 꽂아둔 터라 그 돈으로 부산역까지 차비를 댈 수 있었다. 쓸때까지 써서 봉합이 다 튿어지고 표면도 어지간히 지저분한 지갑( 지갑 사연 보기 )과, 분실한 지갑 안에는 2만원이 채 안되는 돈과 체크 카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적립카드들, usb 정도만 담긴 터여서 홀가분하게 분실물을 잊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행 KTX에 올랐다. 그런데 서울로 이동 중인 KTX안에서 월간미술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내게 인사를 한 기자라고 자기를 소개한 기자는 '어느 부산 분이 내 지갑을 주웠는데 지갑 안에 기자 명함을 있어서 전화를 걸었더라'는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그 분과 통화를 나눴고, 다음주 월요일 우체국 택배로 지갑을 보내주시기로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통화로 전달했다. 이로써 지갑 분실소동마저 절반 가량 일단락 된 셈이다. 이번 서울-부산 왕복 간은 연달아 아노미 상태여서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되면, 비엔날레 홍보팀에서 항상 해운대가 내려보이는 씨클라우드 호텔을 예약해준다. 이 호텔은 같은 건물을  '씨클라우드'와 '건오 씨클라우드'로 구분해서 운영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건오 씨클라우드'가 운영하는 객실에 투숙했다. 




숙소 앞의 해운대 해변가. 지난 2012년 부산비엔날레 방문 때가 기억나서, 해운대와 전에 가보지 않았던 주변 도회를 1시간 넘게 홀로 걸어서 산책했다.



문제의 아디다스 바지: 주머니의 세로형 봉합. 2시간 이상 앉아있어야 하는 KTX 탑승 때와, 부산에서 일정을 마친 직후 숙소에서 입으려고 챙겨간 바지.  세로형 바지 주머니 사이로 지갑이 2번이나 결정적 순간에 빠져나왔고, 결과적으로 부산에 내 지갑을 떨어뜨린 채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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