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4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성기 가리개 무화과잎(씨네21)

* <씨네21>(971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5회.



성기라는 최후의 전쟁터

  


마르셀 뒤샹 <여성용 무화과 잎> 1950년 (1961년 주조)
미켈란젤로 <다비드상> 복제품에 사용된 무화과 잎 1857년경
리차드 워스트마코트 경이 제작한 아킬레스 상에서 성기를 덮은 무화과 잎 1822년



성기는 윤리 의식이 다른 양측이 격전하는 최후의 전쟁터, 최후의 보루다. 먼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사망 후 생식기를 드러낸 대표작 2점을 가리려고 후대가 어떤 조취를 취한 예술가였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심판>의 원화에는 다수의 인물이 성기를 드러낸 알몸으로 묘사되었다. 성당에 그려진 알몸이 못마땅한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림을 성토했고, 결국 오늘날 우리가 관람하는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 사후에 후대 미술가에 의해 성기 부분을 옷자락 따위로 추가로 덧댄 수정본이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다비드 상>은 후일 무수한 복제품이 제작되었는데,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서 소장한 한 복제품에는 탈부착이 가능한 무화과 잎이 다비드의 생식기 부분에 부착되었다. 완고한 윤리의식으로 무장한 18세기 빅토리아 왕족과 귀족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려던 조치다.

대중의 원성 때문에 멀쩡한 원작에 무화과 잎 따위를 덧대는 일은 미켈란젤로만 겪은 소동이 아니다. 영국의 국민영웅 웰링턴 장군을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스에 빗대어 제작한 기념비를 바라본 영국 국민은 아킬레스의 알몸에 노여워했고 언론도 조롱에 가세했다. 결국 성기 부위에 무화과 잎을 추가로 올려야 했다.

무화과 잎이 창작자의 의도와 대중의 몰이해 사이의 골을 봉합하려는 방편으로 고안된 만큼, 무화과 잎은 모순된 성격을 지닌다. 성기를 간신히 가리는 검열 장치로도 기능하지만, 고작 손바닥만한 면적으로 성기 일부를 보일 듯 말 듯 가려봐야, 내숭을 떠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화과 잎이 가린 부분에 집중하게 만드는 역효과까지 있다.

무화과 잎의 모순 때문인지, 현대 미술가 뒤샹은 성기 가리개로 출현한 이 구시대 유산을 조롱하는 독특한 해석을 작품으로 내놨다. 남녀 성기의 외관 차이 때문인지, 그림이나 조각 속에서 무화과 잎 가리개는 여성기보다는 남성의 돌출된 외성기 위로 집요하게 출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뒤샹은 여성기 전용 가리개를 고안했다. 용도만 따지면 성기를 단지 덮으면 될 일일 텐데, 뒤샹이 고안한 여성기 가리개는 여성기를 음각으로 뜬 음각 캐스팅이다. 결과적으로 내성기인 여성기의 속내를 속속 관찰하게 만들어, 잠들어 있던 선정적인 상상력을 흔들어 깨운 셈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무화과 잎의 위선을 위악적으로 전복했다고나 할까.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