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문화회관에서 간행되는 <문화공간>(12월. 357호)의 칼럼란 '말말말'에 기고한 원고.
'무단 횡단'과 '태도 논란' 사이
유럽 일대의 도시들에서 흔히 목격되는 친숙한 광경은, 십수년 전 한국 예능방송에서 큰 화제가 된 어떤 광경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우리 방송에서 화제가 된 광경이란 차와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에 보행자등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 앞을 지나지 않고 대기하는 차량을 촬영한 국내 몰래카메라 영상이다. ‘모든 운전자가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지나치는 가운데, 오로지 한 대가 꿋꿋이 준법을 지켰다’는 게 그 몰래카메라의 전달 메시지였다. 새벽 시간 교통규범을 준수한 차량 앞으로 몰래카메라가 들이 닥쳤을 때, 차안에서 장애인 부부의 모습이 발견되어 두고두고 미담으로 회자 되었고, 이 일화는 십수년이 지난 후 <무릎팍 도사>에 또 다시 인용될 만큼 유명했다.
반면 유럽의 많은 도시를 다녀보면 백주대낮에 경찰관 버젓이 서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보행자들이 서슴없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곤 한다. 신호등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 더 재밌는 건 현지 경찰도 그런 무단횡단에 대체로 관대해서 단속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다. 한국과 유럽 사이의 대조적인 교통 문화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인구밀도와 도로의 차량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서울과 유럽의 한산한 도로를 대등하게 비교할 순 없다. 차량 통행 여부를 확인한 후 주의해서 대로를 건너는 유럽의 여건이, 끊임없이 차량이 밀려오는 서울 중심부 도로 환경과 차이가 너무 크니 말이다.
이런 구조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엄정한 교통법규를 내면화한 시청자들이 차와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새벽 시간에 정지선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어느 시민을 몰래 숨어 촬영한 영상을 보고 집단적인 감동에 빠지는 현상은 어딘지 괴상하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는 스스로 자치구를 선포한 크리스티아니아라는 무정부적 프리타운(Freetown)이 있다. 이곳은 대마초 판매가 허용된다는 통설이 있지만, 현지인들의 얘기에 따르면 대마초 판매는 덴마크 전 지역에서 모두 단속 대상이란다. 크리스티아니아 내부의 입간판에도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 주의 문구가 붙어있다. 대마초를 매매하는 장면이 혹시라도 촬영될까봐 써 붙인 경고인 거다. 심지어 크리스티아니아 입구에 경찰차까지 상주한 걸로 봐서 대마초 판매가 불법인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경찰차만 세워뒀을 뿐 단속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공동체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구성원 개인의 자율에 맡기고, 이 지역을 일종의 해방구로 묵인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일탈을 위한 해방구는 모든 사회에 필요하다. 예술/예능은 일탈을 위한 해방구를 칭하는 공인된 이름일 것이다. 새벽시간 교통법규 준수를 미담으로 인용하며 감동 받는 우리의 안목은 일탈을 위한 예술/예능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일쑤다. 그 중심에 ‘태도 논란’이 있다. 방송에 출연한 예능인에게 단정한 예의범절을 따지는 게 태도논란의 전말이다. 오락프로를 틀어놓고선 예능인 개개인이 되바라진 언행을 하는지 안 하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시청자의 강박을 상상해보라. 방송 콘셉트에 따라 선배에게 반말을 한 구하라와 한지혜, 방송 중 굳은 표정을 지었던 아이유 등을 지적하는 까다로운 시청자의 요구를 언론이 선정적으로 받아 적으면서, 태도논란은 끊어지지 않을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충분히 반듯하기로 정평 난 유재석마저 태도 논란을 피해가지 못할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연상의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는 게 이유다. 어쩌면 유재석은 개인적 자질에 더해, 반듯한 태도와 언행이 국민적 선호도와 일치해서 예능계의 우상인 된 경우일 거다. 그러니 약간만 어긋나도 태도논란의 부메랑이 날아온다. 사전에 연출된 예능 방송을 다큐멘터리처럼 지켜보려는 시청자의 고루한 안목이 태도논란 기사를 양산한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창작의 원점이다.” 일본의 다방면 예술가 기타노 다케시의 말이지만, 유사한 발언은 여러 예술가들이 했고 이들이 주장하는 ‘제멋대로 행동하기’란 공중파의 태도논란을 훨씬 넘어서는 진짜 일탈이다.
유럽에서 관찰되는 느슨한 교통규범 문화나 크리스티아니아를 일탈의 해방구로 눈감는 코펜하겐 당국의 태도는, 삼엄한 제재나 규율로는 다스릴 수 없는 인간의 성정을 고려한 배려로 보인다. 대부분의 예능 프로가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 방송인 점을 감안할 때, 담당 PD들이 문제가 된 장면을 눈치 채지 못해서 방송에 내보낸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편집 없이 방송을 탔다는 건, 방송인의 태도논란을 문제 삼는 시청자의 도가 지나쳤다고 느꼈거나,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방임한 건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인 일탈을 위해 만든 시공간에서 정상 생활의 예의를 요구하는 건,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다른 이름이다. 예술과 인생 전부가 불행한 사회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위안을 얻는다. 우리 사회도 그런 위안에 길들여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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