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은 개인전 'Dr. Lucy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2013.1122~1205 쿤스트독)을 위해 쓴 전시 서문.
성대결절 Vocal Cord Nodule, 종이에 드로잉 2013
미지의 살 구멍의 자기 치유
반이정 미술평론가 dogstylist.com
에든버러에 있는 홀리루드하우스 궁전 Palace of Holyroodhouse 내부의 퀸즈 갤러리는 2013년 8월 <Leonardo da Vinci: The Mechanics of Man>이라는 기획 전시를 개막했다. 전시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체부검에 20여회 참여한 결과물로 남긴 16세기 초엽 해부학 습작 서른 점이 전시되었고, 그의 해부학 습작의 완성도를 강조하려 했던지 현대 의학의 화상처리 방식인 CT와 MRI 화면도 나란히 놓였다. 인간 본질에 가까이 가려던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시대는 인체 표면의 재현을 넘어, 육안이 살필 수 없는 인체 내부를 응시하려는 실험이 집중된 때였다. 다방면에 해박한 르네상스적 전인(全人)의 추구는 미학과 의학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비단 르네상스로 국한 짓지 않아도 의학은 시각예술에게 매혹적인 주제로 끊임없이 소환되어, 하나의 독립된 범주를 차지할 만큼 미술사에 누적된 작품의 양은 실로 많다. 바로크 시대 렘브란트는 해부학 실험을 다뤄서 베일에 가린 의학의 탐색 방식을 미학적으로 동기화 시켰고, 현대의 데미안 허스트는 설치물의 방부처리를 위해 포르말린 용액을 작품으로 사용했고, 기상천외한 설치 작품을 위해 알약을 모방해서 만든 가짜 알약 수백 개를 늘어놓은 설치물을 여러 점 제작했으며, 의약품들을 캐비닛에 늘어놓는 약국의 진열 방식 차용한 설치물도 수차례 내놓은 바 있다. 질병의 원인을 찾아 해법을 내놓은 의술은, 형이상학적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처럼 신비주의와 아우라를 품고 있다.
16세기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남긴 <인체 해부학 대계 De humani corporis fabrica>에서 보듯, 의술의 집행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인체 내부를 도감 형식으로 집대성한 논문에도 시각예술은 깊게 관여해 왔다. 수술을 기록한 의학 도감의 발전사는 시각예술과 유사한 노정을 걸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의식이 살아있는 환자의 맨살을 가르는 시술의 야만성은 해부학과 마취 시술의 발명을 거쳐, 맨살을 가르지 않고도 속내를 들여 보는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도약한다. 대상의 표면을 1차원적으로 재현하던 미술이 뉴미디어를 장착하여 공간예술에서 시간예술로 도약한 것처럼, 첨단 장비 의존도가 높은 의학이나 미학은 1차원적 재현을 넘어 속 깊은 본질을 탐구하면서 차츰 해독 불가한 추상적 화면을 내놓곤 했다.
의학 기록과 미술의 또 다른 공유점은 궁극적으로 꽤 눈요기가 될 만한 볼거리로 귀결된다는 점일 게다. 전근대기에 행해진 야만적인 수술을 다룬 그림이나, 내장이 인체 밖으로 나온 해부학 삽화는 의학적 기록 가치야 어떻건 간에 충분히 관음적인 볼거리이다. 현대 의학 장비로 인체를 투과해서 얻은 이미지는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감을 부추기는 도상이기 쉽다. 인체 스캔 사진 가운데에 CT와 MRI의 흑백 단층촬영 영상보다, PET로 출력된 총천연색 양전자 단층 영상이 훨씬 매혹적인 것도 인체 투과의 신비감이 현란한 색채와 결합해서 일 것이다.
미지의 심연을 향해 열린 무정형 살 구멍들이 열거된 화면이 있다. 저해상도 잿빛 화면으로 일관된 살 구멍들을 무어라 단정하긴 어려울지언정, 혈관이나 살갗으로 추정되는 수축성 있는 질감으로부터 이것들이 인체 내부의 풍경이리라 쉽게 직감할 수 있다. 내시경으로 바라본 인체의 내부는 육안으로 살피기 힘든 영역이기에, 경외감과 관음 욕구가 또 다시 환기되는 순간이다. 의학 도표와 영어로 적힌 장황한 텍스트들, 더러 의료 장비와 의사 가운 차림의 행위 예술까지 동원하여 전시실을 포괄적인 설치 공간으로 채운 것이 2008년 이전까지 박지은 의술 미학의 전말일 것이다. 그 복잡한 계통도가 신작에선 흑백 무정형의 살 구멍들로 단순하게 환원되었다. 복합매체를 사용한 초기 의학 시리즈가 현대 의술이 개발한 이색적인 색채의 발견과 전문 영역에 관한 포괄적인 언급에 가깝다면, 단색조의 살 구멍으로 환원된 2013년 신작은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을 독해할 시각적 단서를 손쉽게 던지며, 포괄적인 의술 스케치보다 의술을 매개로 삼되 자기 지시 self-reference에 집중한 작품으로 보인다.
이로써 신작은 단색조 살 구멍의 시각자극과 이번 전시 타이틀에도 부분 인용된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청각자극의 결합으로 편성되었다. 내시경으로 촬영한 흑백 살 구멍의 실체는 성대(聲帶)이지만, 수축성이 있는 상상 가능한 무엇이건 떠올릴 수 있는 열린 해석의 구멍이다. 비틀즈가 애시드 락 acid rock방식으로 연주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는 환각제를 문화의 근거로 삼았던 1960년대 플라워 세대 Flower Generation의 산물답게 곡 제목에 포함된 단어의 첫 알파벳을 합쳐서 환각제 LSD의 약자일 것으로 해석된다. 현실을 탈피하는 환각에의 예찬. 곡 제목을 고스란히 풀면 ‘다이아몬드로 총총히 박힌 하늘 위에 떠 있는 루시’라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될 텐데, 이 역시 자기 치유와 자기 이상향을 얻기 위한 비현실적 착상을 구현하려는 우회적인 가사 말이리라.
여성 육체의 은유보다 오히려 색감과 형태에 집중했다는 조지아 오키프의 자기 꽃그림에 대한 소신이야 어떻건, 오키프와 함께 작업한 여성 미술가 미리엄 샤피로는 ‘여성 육체의 은유가 되는 중심 구멍’의 혈통으로 조지아 오키프를 해석했고,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도 오키프의 무수한 꽃 그림을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강력한 도식적 은유”로 풀이했다.
명시적이지 않은 오키프 꽃잎의 열린 해석처럼, 내시경으로 바라본 박지은의 성대 그림들은, 명시적으로 LSD를 지시하진 않더라도 환각의 탈출구를 희구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노랫말과 결합해서, 혹은 그 노래를 작가 스스로 직접 부름으로써, 자기 치유 효과를 발휘하는 위약(僞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제를 쓰면서도 단지 환자의 강한 믿음의 힘으로 실질적인 치료 성과를 얻는 위약 효과는 의학계가 여전히 확답을 얻지 못한 비의학적 현상, 의학이 직면한 ‘긍정적인 미스터리’이다. 위약 효과는 2006년 박지은이 개인전에서 영어 제목 ‘플라시보 이펙트 placebo effect’로 이미 선택한 바 있다.
자기애와 자기 치유를 위해 의학적 위약 효과를 미학적으로 전용한 박지은 신작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자기 언급, 자기 지시성에 있으리라. 다이아몬드들이 총총히 박힌 하늘 위에 떠 있는 초현실적 개인, 루시는 때문에 아마 미지의 살 구멍을 무수히 그리고 미지의 노래를 스스로 부른 작가 본인일 테다. 확산력을 키우는 담론의 시작점은 흔히 개인적인 문제의 해결로부터 발단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아주 오래된 정치 관용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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