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칼럼] 미니스커트 입고 자전거 타기에 관해

* 작년 <스타일 H>(8월호-엮인글)에 쓴 글에 이어, 올해 가을에는 <국민대 신문>(901호) 칼럼에 또 다른 자전거 에세이를 썼다. 올 여름 북유럽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


[칼럼]미니스커트 입고 자전거 타기에 관해
기사입력 2013-11-03 10:54


반이정미술평론가









영어 Copenhagenization은 ‘코펜하겐 방식으로 만들다’ 정도로 풀이될 것이다. 덴마크 수도의 이름으로 신조어가 지어질 만큼 코펜하겐은 도시 계획을 짤 때 타국에서 모범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우수한 자전거 문화를 정착시킨 도시이다. 차량 의존도를 낮추고 보행자와 특히 자전거를 배려하는 도시 설계를 뜻하는 코펜하게니제이션은 유럽 도시들은 물론이고 뉴욕까지 도시계획에서 참조한 모형이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놓인 자전거 도로로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자전거의 무리는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여느 유럽 도시에 비교해도 매우 변별적인 코펜하겐만의 도시적 풍경이 된다. 일시적인 유행처럼 서울시가 도심에 듬성듬성 심어놓은 자전거도로의 전범 역시 코펜하겐이 아닐까 싶다. 

코펜하겐이 2011년 발표한 자전거 장기 정책에 따르면 자전거 수송 부담률을 무려 50%까지 끌어올릴 목표를 세우고 있다(2010년 코펜하겐의 자전거 수송 부담률은 이미 35%다). 차량이 번잡한 서울의 도로 위에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하부구조를 깔아봤자 코펜하겐 방식 자전거 문화는 서울에 구현되기 힘들다. 코펜하겐에서 이삼일만 지내보면 그 점을 깨달을 게다. 고온다습한 한국과 달리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덴마크 기후도 한 몫 하지만, 두 도시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자동차 생산이 오랜 주력 기간산업이 된, 그리고 자가 운전을 향한 공동체의 선호가 매우 높은 한국에서는 자동차 물신주의 때문에 자전거가 도로에 진입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도심의 자전거 도로가 무용지물이 된 건 예상했던 일이다. 자전거 도로는 실생활과 유리된 한강을 따라 동서로 긴 길을 만들어서, 한국에서 자전거는 그저 레저의 한 수단으로 눌러앉았을 뿐이다. 그런데 레저로서의 자전거마저 이제 한철이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여느 유럽 도시가 그렇듯 코펜하겐의 자전거 주행자들은 한국처럼 ‘별도의 복장’을 차려입지 않고, 평상복을 입고 자전거를 몬다. 때문에 패션 감각을 거스르지 않은 개성이 강한 자전거 주행자가 유독 코펜하겐에선 일상적으로 관찰 된다. 멋쟁이 자전거 주행자를 Bicycle Chic으로 부르게 된 계기도 바로 코펜하겐의 자전거 문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코펜하겐에서는 자기 패션을 고집한 채 페달을 굴리는 여성 라이더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태연히 자전거를 모는 여성 또한 많다. 자전거를 타는 미니스커트 여성이나 주변의 보행자들이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전거 타는 행위를 조금도 의식하지도 개의치도 않는 분위기다. 한국 사회에선 상상도 못할 일인 만큼, 이방인인 내 눈에 이 광경은 퍽 남다른 인상을 줬다. 설령 작심하고 유심히 응시한들 페달을 돌리는 약 0.3초 가량 비칠 듯 말듯 어두컴컴한 치마 속 광경이 현지인에겐 당초 관심조차 아닌 거다. 여성의 치마 속을 한낱 관음적 상상과 연결 짓는 국민과는 관심사의 수준부터가 다른 거다. 한 사회의 자전거 문화를 통해 그 구성원의 가치관까지 역 추정해본 경험이었다.

그런데 도로로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자전거를 보면서 내 안에 혼란이 하나 생겼다. 그건 코펜하겐 자전거 문화와 지역의 주거 문화를 관찰하면서 동시에 느낀 점이기도 하다. 코펜하겐의 자전거와 가옥 사이에서 공통점을 하나 짚을 수 있었는데, 자전거는 예외 없이 큰 프레임에 큰 바퀴를 장착한 검정색 계열의 모델이 주류였다. 도시 주행에 최적화된 설계이겠지만 디자인 면에선 다양성도 낮고 몰개성해보였다. 마찬가지로 코펜하겐의 가옥도 벽돌로 세운 밋밋한 건물 위로 세모꼴 지붕을 얹은 외형이 지배적이다. 이는 어쩌면 현지 사정에 어리숙한 이방인의 선입견일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코펜하겐의 자전거와 가옥 디자인은 균일한 외관을 지향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내 안의 혼란이란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는 균일한 시각적 도상들은 흔히 전체주의 사회의 잔재로 인식 되어왔던 점에서 비롯한다.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은 민주체계를 정교하게 발달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가장 낮은 범죄율과 무상 의료 거기에 양성평등 부문까지도 최 상위권으로 조사되곤 한다. 그 뿐인가. 경제적 평등지수에서도 최상위권이며, 11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코노미스트>의 ‘삶의 질 평가’에서 덴마크는 9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전체주의의 본색으로 평소 내가 믿었던 균질한 시각 문화가 덴마크의 가옥과 자전거 문화에서 반복된 까닭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 코펜하겐의 가옥과 자전거 문화가 만드는 몰개성한 시각적 통일감은 효율적인 기동과 거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시행착오가 누적된 최종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여러 조사가 증언하듯 덴마크가 복지와 관대지수가 높은 이유 역시 안정적인 거주와 기동력을 확보해서 생긴 여유일 것이다. 실용성에 방점을 둔 코펜하겐의 자전거와 가옥이 균일한 스타일로 수렴된 반면, 한국의 자전거와 가옥은 (산을 오를 것도 아니면서) 산악자전거와 아파트 단지로 수렴되는 이유는 실생활의 편의보다 대중적 유행(산악자전거)과 투기(아파트)를 줏대없이 추종한 결과일 것이다. 찻길과 나란히 달리는 코펜하겐 자전거 도로가 실생활과의 밀착지수를 고려한 결과라면, 한강변에 고립시킨 서울의 자전거 도로는 실생활로부터 자전거를 분리시키려는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리라. 실생활과 유리된 정책은 오래 못가고 유행이 지나면 금세 사그라진다.

이 사회가 직면한 후진성의 배후에는 다양성의 결여보다는 실용보다 유행에 손쉽게 편승하려는 집단 무의식이 있어서인 것 같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태연히 자전거를 타는 코펜하겐의 일상적이고 이국적인 광경을 본 후 느낀 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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