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28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4회분. '브랜드 시리즈 9탄'
펜더 기타와 예술
좌. 벗겨진 도색과 흠집까지 똑같이 재현한 잉베이 맘스틴 트리뷰트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2008년.
중. 런던 경매에서 4억여원에 낙찰된 불에 그을린 지미 헨드릭스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2008년.
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아티스트 시리즈 - 리치 블랙모어 모델.
현대적 대중음악이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고 출연하게 된 원점에 전기 기타가 있다. 세계 양대 전기 기타 회사로 깁슨과 펜더를 꼽는데, 후대에 등장한 무수한 신생 전기 기타들의 모양새가 이 두 선배의 원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깁슨과 펜더는 전기 기타 디자인의 표준이다. 깁슨의 표준 모델 격인 레스폴(Les Paul)이 정통 어쿠스틱 기타의 외형과 목재 질감 표면을 전기 기타의 솔리드 바디로 옮겨와 풍성한 바디감을 갖는데 반해,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 모델은 날렵한 바디가 여체처럼 유연한 곡선을 취하면서 금속의 표면감을 띠기에 훨씬 현대적인 장비의 인상을 풍긴다.
물론 깁슨도 플라잉V처럼 현대적 모델을 보유하곤 있으나, 그런 전위적 실험을 따르지 않더라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현대성과 고전미를 부족함 없이 담는다. 깁슨과 스트라토캐스터의 자부심은 두 기타 회사가 보유한 높은 기량의 기타리스트의 명단에서 나온다. 두 기타 회사는 유명 연주자들의 시그니처를 딴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유명 기타리스트의 시그니처 모델은 연주자가 보장한 기량을 해당 제품에 입힐 것이다. 1954년 처음 설계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모델에는 버디 홀리의 정통 록큰롤, 데이비드 길모어의 프로그래시브 락,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 잉베이 맘스틴의 속주 연주까지 다채로운 연주자 연보가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스트라토캐스터의 인지도 확장에 기여한 기타리스트들은 많다.
지미 헨드릭스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재주가 있었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고의로 오른손잡이용 기타의 위아래를 뒤집어서 사용함으로써 뜻밖의 인상을 남겼다. 헨드릭스의 또 다른 쇼맨십은 자신의 기타를 무대 위에서 화형 시키는 거다. 그가 처음 무대 위에서 불태워서 쓸 수 없게 된 1965년형 스트라토캐스터가 2008년 런던 경매 시장에 나와서 무려 24만 파운드(4억1천만원)에 팔리며 부활하기도 했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출시하는 제품 시리즈 중에는 아티스트와 트리뷰트가 있다.
아티스트 시리즈는 특정 기타리스트들을 위해 과거에 1점을 주문 제작한 모델을 대중적 판매망에 내놓기 위해 생산 라인에서 부활시킨 것으로 기타의 헤드스탁 부분에 기타리스트의 서명이 표기되어 있다. 트리뷰트 시리즈는 한발 더 나아가, 세월의 때를 고스란히 간직한 연주자의 실제 기타를 시각적으로 100%에 가깝게 재현한 복제품이다. 가령 잉베이 맘스틴 트리뷰트 모델 ‘Play Loud’은 그가 썼던 1971년형 스트라토캐스터 기타의 파손 부위나 당시 재료로 쓰인 목재와 픽업까지 그대로 흉내를 냈으며 허름하게 붙인 Play Loud라 적힌 스티커마저 복제해서 2008년에 출시한 ‘낡은 신제품’이다. 기타리스트가 37년간 쌓은 연륜과 명성까지 복제한 이 트리뷰트 기타를 레릭(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100대 한정으로 제작 판매된 이 기타의 대당 가격은 2천만원에 육박한다. 후대가 표하는 경외, 원본을 향한 정밀한 재현, 희소가치와 높은 가격. 예술품의 탄생 과정도 대략 이렇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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