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When Attitudes Become Form - Bern1969 / Venice 2013 리뷰 <월간미술>(11월호. 346호)

올 여름 북유럽/서유럽 여행 중(엮인글) 관람한 베니스에서 리바이벌된 <When Attitudes Become Form - Bern1969 / Venice 2013)에 관한 리뷰. <월간미술>(11월호. 346호)에 기고했다.   


유실되어 전시할 수 없었던 Joseph Beuys의 33개의 펠트천을 쌓은 Fond(1969)는 밑줄로 처리되어 있다.


주의: 비극의 태도마저 희극의 형식을 낳는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홀수 해의 베니스는 그 해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엔날레 일정 탓에, 현대 미술 최전선의 수상 도시로 인식된다. 2013년 베니스의 밀도는 예년에 비해 한층 높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세계 언론이 집중되는 점에 착안해, 같은 기간에 초대형 기획전이 세 편 이상 열렸기 때문이다.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와 팔라조 그라씨Palazzo Grassi에서 전시 된 피노 프랭탕 르두트 그룹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컬렉션이 당대 미학적 유행에 초점을 맞췄다면, 프라다재단이 꺼내든 맞수는 전설로 굳은 과거사의 복원이었다. 

프라다 재단 소유의 카‘코너 델라 레지나Ca' Corner della Regina에서 재연된 과거사란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1969년 열린 <Live In Your Head: When Attitudes Become Form (Works – Concepts – Processes – Situations – Information)>(이하 <WABF69>)로, 이번 베니스 복원 전시에선 <When Attitudes Become Form - Bern1969 / Venice 2013)(이하 <WABF13>)로 타이틀을 고쳐 달았다.

공식 개막일마저 베니스 비엔날레와 동일했던 <WABF13>은 전공자들이 몰리는 개막 초반인 6월경에는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시간만 1시간을 훨씬 넘겼다고 전한다. 필자가 전시장을 방문한 8월초, 비엔날레 입장권을 구매하려면 여전히 긴 줄을 서야 했지만, 상대적으로 <WABF13>은 줄은 고사하고 전시장 내부마저 한산했다. 전시 초반부에 열기가 집중되는 전형적인 전공자 성지 순례용 행사인 셈이다.

전시 제목이 말하듯 1969년 쿤스트할레 베른의 시공간을 2013년 베니스로 옮겨오는 데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놓인 44년의 시차를 극복하는 타임머신은 숙명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1969년의 전시장 설계도는 존재해도,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 자료가 미흡했고 일부 전시장의 경우 관련 자료가 태부족해서 “CSI식으로 재구성되었다”고 보도 되었다.

이번 베니스 전시에서 참조한 <WABF69>는 20세기 중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전시 패러다임의 시원으로 간주된다. 개별 작품이 관객과 1:1로 마주하며 감상가치를 지녔던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다종의 출품작들이 한자리에 뒤엉켜 ‘어떤 느낌’을 연출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이란 얘기이다. <WABF69>에서 포스트미니멀리즘, 아르테포베라, 개념미술, 대지미술의 경향들이 비좁은 공간 안에 촘촘히 들어선 건 미학적 전환기의 불안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일 게다. 1969년 전시장 풍경을 하랄트 제만의 관용구에서 찾는다면 ‘구조적 혼돈’쯤 될 것이다. 또 이는 모더니즘 실험의 종결을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미학적 다원주의의 원인으로 풀이하는 아서 단토의 ‘예술 종말론’과도 맥이 닿는다. 당시 전시 개막 직후 보도된 현지 언론마저 전시 제목을 차용해서 “모든 것이 예술이 되다: 쿤스트할레의 새로운 태도”라는 기사 제목을 뽑았다. 1969년 전시 카탈로그에 수록된 찰스 해리슨의 글도, 의자와 탁자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익명의 사물들로 채워진 전시를,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표방하던 종래 전시 관례와 상이하다고 밝힌다.

 Gary B. Kuehn, Eva Hesse, Alan Saret, Reiner Ruthenbeck, Richard Tuttle의 작품은 1969년에는 큰 홀에 전시되었지만, 2013년에는 공간적 제약으로 벽들이 막아선 전시실에서 재연되었다.

Richard Serra의 작품이 1969년 설치된 공간을 유사하게 재연하려고 가벽을 세웠다.

Joseph Beuys의 Ja Ja Ja Ja Ja Nee Nee Nee Nee Nee [Yes Yes Yes Yes Yes No No No No No](1968)와 Fettecke [Fat Corner](1969)을 재연한 전시장



전 장르가 망라된 <WABF69>를 기획한 하랄트 제만은 최연소 예술 감독에 지명된 <도큐멘타 5>(1972)에서 평면 입체 사진 퍼포먼스를 모두 망라하면서 통합예술(total art)의 소신을 거듭 관철시킨다. 또 1981년 쿤스트하우스 취리히에서 ‘영구적인 독립 기획자’의 직위를 맡기까지 하는데, 그를 무소속 독립 기획자의 노정에 올려놓은 원점은 역시 <WABF69>이다. 1961년 28세로 입성한 쿤스트할레 베른의 예술 감독 자리에서 이 논쟁적 전시가 열린 해에 물러났기 때문이다. 감독직을 사임한 다음 달 ‘Agency for Intellectuual Guest Labour’를 세워 독립기획의 발판을 마련한다. 제도 미술관과 차별되는 독창적 전시기획을 위해 제만이 고안한 2가지 장치 중 하나가 Agency이고, 다른 하나가 아카이브다. 그가 수집한 아카이브는 8개의 방에 보관되어 운반이 용이하게 분류되었다고 한다. 특히 요셉 보이스와 마르셀 뒤샹의 자료는 각별히 'Beuys Island'와 'Duchamp Island'라는 칭호를 각기 달았다.

전시회 제작자exhibition maker로 불리길 선호한 제만은 무소속 독립 기획자 시대의 원조가 된 셈인데, 이 역시 개별 작가나 작품을 중심에 놓던 모더니즘 미학이 수명을 다해서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전시 기획자를 ‘전시의 저자author'로 예우하는 시대는 1987년 증권시장 붕괴로 미술시장이 나란히 무너지면서 미술계의 권세가 아트 딜러에서 대형 전시 기획자에게로 넘어간 구조 변화와 맞물린 현상이다.

1969년 베른을 복원한 베니스의 <WABF13>는 현대미술의 지형도 변화를 예고한 기획전의 원점과 독립 기획자 시대의 원조에 대한 후대의 예우일 것이다. 그런데 <WABF69>나 기획자 하랄트 제만을 향한 오마주는 전시의 형태로 줄곧 이어져왔다.
작년 CCA(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 Wattis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s가 주최하고 Jens Hoffmann이 기획한 <When Attitudes Became Form Become Attitudes>(2012.9.13~12.1)는 동시대 작가 90여명으로 편성된 그룹전으로 1969년 베른의 전시와 유사한 광경을 재연했다. 하랄트 제만이 감독한 <Documenta 5>(1972)의 자료를 모아놓은 아카이브형 전시가 ICI(Independent Curators International)의 주최와 David Platzker의 기획으로 <Harald Szeemann: Documenta 5>라는 타이틀을 달고 2011년 초부터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캐나다와 라트비아를 도는 2년여의 순회전을 마치기도 했다.

제만이 타계하기 2년 전에는 세계 도처를 비행기로 오갈 수 있는 오늘날의 초국적인 창작 환경과 ‘탈물질화된 예술’의 시원인 개념미술이나 과정예술 사이의 연관성을 보고, 원조 초국적 창작을 집결시킨 <WABF69>의 제목을 뒤튼 <How Latitudes Become Forms: Art in the Global Age>(2003. 2.9~5.4)라는 전시를 Walker Art Center가 연 바 있다.

제만을 향한 오마주 연속극의 정점은 1969년을 44년 후 고스란히 복원한 이번 전시일 것이다. <WABF13> 카탈로그 인터뷰에서 과거 전시를 복원한 목적이 예술 이해의 증진 때문이라는 밝힌 전시 기획자 Germano Celant의 진술이야 어떻건, <WABF13>를 통해 <WABF69>로 감정이입 되긴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무분별한 찬사로 신화의 반열에 오른 과거사의 복원 앞에서 비평적 중립을 유지하기 어려운 점도 그렇고, 1969년 당시로선 일상적 오브제들로 채워진 전시장의 충격적인 풍경이, 오늘날 전시장에서 목격되는 다만 상식적인 풍경과 같아진 사정도 있다.

1969년과 2013년 사이로 44년의 시차 외에 질감의 편차는 무수히 많다. 당시로선 너무 빈틈없이 늘어놓은 출품작 사이의 비좁은 거리감은 이번 전시에도 재연되었지만, 파손 우려가 있는 일부 출품작은 그것이 놓인 공간으로 관객의 진입이 금지되었다. 사물의 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상적 사물을 여기저기 늘어놓은 느슨한 전시장 안에 정장 차림의 프라다 직원 여럿이 서서 지키는 모습도 상이한 풍경이리라. 또 1969년의 전시 정경을 당시 사진 자료를 통해 성실히 복원했어도, 구조적으로 상이한 공간적 차이 때문에 벽들로 가로막힌 전시공간도 많다. 또 점선으로 표시된 유실된 작품의 위치는 본의 아니게 신화적 깊이를 더하는 지표가 된다. 18세기 건축된 베니스의 카‘코너 델라 레지나의 고전적 질감도 복원된 전시의 격조를 한층 높인다. 1969년 원본 전시가 대략 1달 일정(예정된 종료일 보다 며칠 일찍 마감했다)인데 비해, 2013년 복원 전시는 비엔날레 기간과 대등한 5달 넘게 진행된 점도 달라진 위상을 말해준다.

포스트미니멀리즘, 아르테포베라, 개념미술과 대지미술을 결집시켜서 20세기 중반 이후의 전시 문화의 새 방향성으로 평가된 <WABF69>. 그 전설의 복원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전시 주최자 프라다의 처지에선, 높은 비평 가치의 후광으로 논박의 여지가 낮은 <WABF69>를 44년 후 복원시킨 전시 사업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바람몰이 기간에 맞춰 경쟁자 피노 컬렉션과 겨룰 만한 승부수였으리라. 고득점을 이미 먹고 들어가는 형국이란 얘기이다. 전시 기획자의 처지에선 스타 기획자의 서막을 연 선조를 향해, 또는 종잡기 어려운 현대미술 기획전의 시원을 향해 후대가 표하는 손색없는 오마주였으리라.

‘처음에는 비극 그 다음은 희극’이라는 역사의 금언을 이번 전시에 정확히 대입할 순 없다할지라도, 1969년 전시 때 혹평이 있었던 점이나 제만의 감독직 사임을 비극으로, 2013년 전시에 프라다와 기획자가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회수하는 점을 희극으로 풀이해도 오독은 아닐 것이다. 하랄트 제만이 반평생 무소속으로 거리를 유지한 제도 미술권력은 제만의 상품가치를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고수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다수의 전공자는 이 복원물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1968년 이래, 하랄트 제만은 스스로를 이주 노동자(Gastarbeiter)라고 불렀는데, 알다시피 이 사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서 모든 곳에 속했다.”는 백남준의 회고나,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태로서의 예술’에 호감을 표한 하랄트 제만의 2001년 인터뷰와는 무관하게, 제만이 지향한 ‘태도’는 그것이 무엇이건, 언제고 부활할 상품의 ‘형식’을 지녔다. <WABF69>이 모더니즘 이후의 미학적 전망을 선도한 공로가 있다한들, 오늘날 난립하는 독해불능의 전시문화의 시원이 된 점도 그의 ‘태도’가 무한한 ‘형식’으로 변질된 채 계승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 또 당사자 제만도 그런 시류에 편승한 면이 분명 있다. 제만의 다원적 태도가 당대 평론가로부터 ‘저속하고 괴상하다.’(Hilton Kramer)거나 ‘말도 안 되고 정상도 아니다.’(Barbara Rose)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예술 종말의 위기에서 현대미술에게 비상구를 열어준 역설적인 구원인 점도 사실 아닌가.

다시 한번. 불완전성으로부터 취할 교훈을 생각해보자. 가공할 물동량으로 복원된 전설에 손쉽게 탄복하지 말기. 복원된 전시의 물리적 ‘형식’에 자신의 감동을 예속시키지 말기. 세월의 풍파로 훼손되었을지언정 제만이 지향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이라는 비평 ‘태도’와 제도 미술계에게 규범이 된 소속 없는 ‘태도’에 집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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