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4일 일요일

0822 야간비행

8월22일(금) 14시. 메가박스동대문. <야간비행 Night flight> (2014) 시사회. 

별점: 보류 




 한 기사에 따르면 <야간 비행>은 "입시경쟁, 왕따, 폭력, 자살, 결손가정 등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세상 속에서 두 친구들이 겪어나가는 우정과 삶을 그려내는 영화"라고 묘사했던데, 나는 오히려 우리 사회 구성원 입장에선 자명한 주제들을 너무 많이 한 점에 교차시켜서 신선도와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미성년자 동성애 문제나, 학력사회의 그늘, 결손가정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 점은 서구의 시선으로 볼 때 <야간비행>의 변별력있는 평가 포인트일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가 <소설가의 각오>라는 산문집에 수록한 '오해에 대한 기대'라는 짧은 산문에 아래 같은 지문이 있다.  

 "요컨대 서로 다른 많은 작품에 대해 주저없이 비평을 가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소박한 의문을 던져보고 싶은 것이다. 완성도가 높건 낮건 각 작품은 나름의 인생을 담고 있고 다양한 인종-국적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살아온 과정의 차이에 따른 분류-으로 가득한데, 간혹 옆길로 새기는 했어도 결국 돌아와 한길을 걷고 있는 인간이 그렇게 많은 인종을 향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비평을 가할 수 있늘 것인가. 자기 능력에 부친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전제 없이, 일반 독자들보다 깊이 꿰뚫어볼 수 있단 말인가." 

요컨대 평론가라는 1인이 다종다양한 체험들의 산물인 작가의 결과물을 온전히 파악할 순 없다는 뜻이다. <야간비행>의 평가를 유보하고 싶을 때, 내놓을 수 있는 핑계도 동일하다. 동성애적 지향성에 토대한 작품 세계인 만큼, 이성애자(나)가 공감하기 힘든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밀도를 느끼기엔 객관적인 한계가 많아 느껴진다.  

이성애자 기웅을 짝사랑하는 동성애자 용주의 번뇌와, 그 둘을 우등생과 문제학생으로 설정한 것까지 괜찮지만, 극적 갈등을 빚는 장치들은 무모하거나 우연적이거나 혹은 서툴다. 우연히 기웅이 여자애와 정사하는 장면을 발견하는 용주, 용주와 기웅의 관계를 우연히 짐작하게 되는 절친 준하, 반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교실에서 털어놓는 어느 무심한 교사의 발언, 용주의 동성애 정체성을 확인한 반 급우들의 갑작스런 왕따시키기 따위가 극을 갈등 국면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들인데, 아무리 봐도 개운한 전개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사소한 흠일진 몰라도, 진도를 따라잡지 않고 69페이지를 펼쳐놓고 있는  학생을 잡아낸 교사가 "너 69자세 좋아하냐?"는 설익은 농담을 하다가 "뭘 하건 좋으니, 서울대만 가면 돼"라고 눙치는 장면이나, 용주의 동성애 사실을 안 담임교사가 "서울대만 가면 용서한다"고 눙치는 벌언 등도, 고학력 사회에 물든 교정 분위기를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한 것들로, 오히려 극적 긴장감을 팍 풀어버리고 만다. 

사정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고교생으로 봐주기엔 너무 장성한 배우들의 신체 발육 상태나, 십대의 말투를 '흉내 내는 게' 너무 자명한 그들의 대사도 관람의 불안감을 보탠다.  

사춘기 세대의 동성애 문제와 학력사회의 문제를 교차시켰다는 평가에 머물지 말고, 왜 이성애자를 짝사랑하는 동성애자라는 설정을 정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런 영화적 설정으로부터, 동성애자의 소규모 커뮤니티 바깥에 있는 거대한 이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동성애자(문화)를 진정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외부 조력자'에 대한 갈망을 그리려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설익은 생각을 해본다.  


그 밖에....

* 사모하는 이성애 친구 기웅이 흘린 운동화를 내내 간직한 동성애자 용주의 태도에서, 흡사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간직한 동화 속 왕자님이 떠오르기도 한다. 

** 영화를 보는 내내 주연배우 곽시양을 어디서 봤지...했는데, 박봄의 뮤비 'Y&I'에 출연한 적이 있었더라. 위대한 뮤비의 힘이여. 

*** 영화 공식 포스터에 나온 이재준보다 영화 속 이재준이 훨씬 매력있다. 

*** 동성애 학생들의 아지트로 쓰인 '야간 비행'이라는 이름의 카페 옥상 난간에서 내려보이는 이촌동 일대 풍경을 보면 기분이 짠해지고 착잡해진다. 2010년 입원한 순천향대병원이 이촌동 일대와 한강변이 내려보이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인데, 이런 저런 화면을 통해 이촌동 일대를 볼 때마다 나는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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