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69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4회.
예능이라는 독과 약
좌. 김연아 SKT 광대역 LTE-A X3 광고 2014년.
우상. 스토리온 <아트 스타 코리아> 2014년
우하. JTBC <썰전> 2013년~.
광고 화면에 투입된 운동선수 출신 모델은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뻣뻣하다. 반면 김연아가 출연하는 광고는 연예인 모델을 능가하는 흡인력을 갖는데, 남다른 미모와 몸매 피겨 스케이팅으로 다진 연기력 그리고 인지도 면에서 김연아가 예능 스타를 넘보기 때문일 것이다. 은반과 스튜디오를 오가는 호환성을 지닌 예외적인 스포츠 스타 김연아는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활동 무대를 광고 화면으로 옮긴 것처럼 느껴질 만큼 왕성한 현역이다.
스포츠와 예능은 분야는 달라도 여흥을 제공한다는 본질에서 같고, 그 때문에 혼재되어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진실에 기초한 정치 현안을 다루는 시사방송에 예능이 가세하는 건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나아가 순수예술을 예능프로로 가공하는 것도 같은 딜레마를 안는다. <썰전>은 전직 국회의원 강용석과 현역 시사평론가 이철희를 각각 보수와 진보의 패널로 세우고, 개그맨 김구라를 감초 같은 진행자로 묶은 예능방송이다. 시사 전문가들로 패널과 진행자를 꾸린 종래 토론방송의 편성을 고려할 때, 상상하기 힘든 라인업에 가깝다. <썰전>은 토론방송 고유의 엄숙한 분위기를 상쇄시키고 지상파가 취급하지 않는 민감한 주제나 뒷얘기 따위를 격의 없는 대화로 푼다. 선정적 재미와 정보의 밀도를 높인 전략이다.
<아트 스타 코리아>는 순수 예술을 예능으로 흡수한 경우다. 일주일이 안 되는 마감 기한 동안 최상의 작품을 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조건으로 최고의 아티스트를 가려내긴 어렵다. 단기간에 완성하는 창작은 미술 논리가 아니라 예능의 논리다. 그렇지만 <아트 스타 코리아>는 일반 시청자가 흔히 떠올리는 인습적인 미술이 아니라, 동시대 전시장에서 만날 법한 이해부득의 작품을 방송으로 송출하는 점에서 변별력이 있다. 시민과 현대미술 사이에 깊고 넓은 강이 흐르는 현실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환기는 비엔날레 같은 대형 미술축제보다 예능을 탑재한 미술 방송이 유리할 수 있다.
스포츠, 연예, 정치, 예술은 분야 별로 선명한 전문 구획을 갖고 나뉘어있다. 그러던 것이 세상을 통하는 창이 모니터로 수렴되는 뉴미디어 시대에 지각변동을 맞았다. 분야는 달라도 미디어라는 동일한 플랫폼 위에서 서로 다른 정보들이 교차하거나 뒤엉켰다.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고 시청률을 상승시킬 목적으로 딱딱한 시사 현안은 경량화 되거나 선정적으로 다듬어졌다. 정치권 뒷얘기를 삽입한 시사방송의 예능화는, 딱딱한 포맷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 토론방송보다 대중의 정치관심을 이끌기에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나 예술은 대중화하기 힘든 전문 영역이 있다. 시청률에 목을 맨 예능 방송이 전문 분야를 훼손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신 위험부담을 담보로 높은 파급력을 돌려준다. 위험부담 때문에 밀거나 파급력 때문에 당겨야 하는, 독도 되고 약도 되는 존재가 오늘날 예능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