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8일 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자전거 집단 주행 (씨네21)

* <씨네21>(967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3회.



떼 지어 자전거 타기


상. 런던에서 열린 세계 나체 자전거타기(WNBR) 2014년
하. 타이베이에서 열린 앨리캣 레이스(Alleycat race)



앨리캣 레이스(Alleycat race)는 매달 1회 정해진 날짜에 불특정한 라이더들이 모여 자전거의 권리를 주장하며 나른하게 자전거를 모는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와는 본질이 다르다. 둘 사이의 공유점은 집단 자전거 타기 퍼포먼스라는 점 뿐이다.

우승자를 가리는 경주를 표방하는 만큼, 앨리캣 레이스 참가자들은 자전거를 쾌속으로 질주하며 도심을 헤집는다. 앨리캣 레이스의 참가자 대부분이 전문 자전거 메신저들인 점도, 이 행사가 보헤미안적 자기 과시임을 드러낸다. 자전거 메신저들이 떼 지어 도시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교통문화의 일상적 흐름에 역행하는 위협처럼 보인다.

역주행이나 신호 위반 등 번번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앨리캣 레이스의 동선은 예측 가능한 교통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앨리캣 레이스가 상황주의자의 문화훼방 전략과 닮아 보이는 까닭이다. 현대 계획도시에 꽉 짜인 질서를 균열 내려고 무계획적으로 여기 저기 표류(dervie)하는 상황주의 전략을, 앨리캣 레이스는 자전거 타기로 계승한 모양새이다. 그 점 때문에 앨리캣 레이스의 먼 기원은 근대 초기 프랑스 파리에 출현한 산보객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하다.

세계 나체 자전거타기(World Naked Bike Ride: WNBR)의 집단 자전거타기도 앨리캣 레이스처럼 일상적 일탈을 꾀한 하위문화이지만 질감은 훨씬 자연주의적이고 원시적이다. WNBR의 모토는 ‘감당할 만큼 옷 벗고 자전거 타자’이다. 이 모토 아래 자발적인 남녀 참여자는 세미 누드 혹은 전체 알몸으로 안장에 올라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함께 벗었기 때문에 남달리 부끄러울 게 없다.

하위문화를 형성한 앨리캣과 WNBR의 집단 자전거 타기가 잔잔한 들불처럼 세계 각 도시들로 번져간 이유는 무엇일까? 앨리캣과 WNBR은 교통법규 위반이나 알몸 공공 노출이 문제가 되어 도시들마다 위헌의 압박을 받지만 꾸준히 유지된다. 현대 생활을 유지하는 서열과 관습에서 탈출하는 일시적인 해방구가 두 행사의 핵심이다. 

요컨대 WNBR의 탑승자는 자신의 알몸을 비록 드러내지만, 안장 위로 살짝 포개어 이동 중인 알몸을 구경꾼이 또렷이 관찰하긴 어렵다. 앨리캣에 참여하는 자전거 메신저는 도로 위의 약자일 수밖에 없지만, 떼 지어 몰려다니며 차량의 압박을 이겨낸다. WNBR의 누드 참여자가 의복착용의 무거운 관습을 벗어날 때 체험하는 최소한의 수치심이나, 앨리캣 자전거 메신저가 직면하는 사고 위험은 한시적이지만 남다른 해방 체험에 대한 값비싼 담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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