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일 금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가면 (씨네21)

* <씨네21>(965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2회.



일그러진 얼굴의 매력




상. <스크림 2> 1997년
중. 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 1972년
하. 네덜란드 블랙메탈밴드 카락 앙그렌(Carach Angren )



얼굴은 대상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창문이다. 미지의 누군가가 장안의 화제로 뜨면 기필코 그의 숨은 얼굴은 색출되어 폭로되고 공유되고 만다. 호기심 가는 대상의 이목구비를 확인하고픈 욕구는 진화적 본능 같다. 이 같은 얼굴 숭배 혹은 얼굴 노출에 저항하는 미적 움직임도 꾸준히 개발되었다. 가면이나 분장에 가까운 짙은 화장은 주어진 정체성을 지우고 새로운 개인으로 재탄생하는 가장 쉬운 장치이다. 본명 대신 예명을 고집하는 태도의 비주얼 버전 쯤 되리라.

프란시스 베이컨이 그린 얼굴을 해체시킨 초상화는 정교한 재현에 충실한 초상화 관행을 해체하는 의미까지 담으리라. 초상화의 관행을 저버린 베이컨의 초상화들은 화가의 자의적인 붓질의 총합으로 특별한 개인이 탄생되었기에 매력적이다. 베이컨 자화상에서 얼굴은 파편화 되었지만, 펑퍼짐한 얼굴형과 헤어스타일 같은 단서가 남아있다. 관객이 으깨진 얼굴로부터 베이컨을 인지하는 이유는 그런 단서 때문이다. 베이컨을 암시하는 흔적 같은 단서를 기준으로 무한한 해석의 지평이 관객에게 열리며, 실물과 달리 거친 붓질만으로 새로운 개인이 창조된 점 때문에 화가는 독창성을 인정받는다.

앨리스 쿠퍼, 키스 같은 고전 하드락 그룹은 차별화를 위해, 음악 외에도 짙은 얼굴 화장으로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 화장은 임계점도 아니었다. 주류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로 출발한 블랙메탈은 충분히 과격한 주류 헤비메탈로부터의 훨씬 극단적인 결별을 꾀한다. 사탄숭배를 공공연히 찬양하는 노랫말과 멤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시체 화장(corpse paint)을 올린 것이다.

베이컨 초상화의 일그러진 얼굴이나, 블랙메탈의 시체 화장이 새로운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실물 얼굴을 지워버린 경우라면, 만인의 감정 표현을 대변하는 공용어처럼 통용되는 가면도 있다.

뭉크의 그림 <절규>에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해골형 캐릭터가 등장한다. 1893년 고안된 이 캐릭터는 고유명사였으나, 현대적 공포를 표현할 때 두루 참조하는 가면인 점에선 일반명사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나 영화 <나 홀로 집에>의 포스터, 심지어 공포 영화 <스크림>은 아예 뭉크의 작품 제목을 영어로 번역해서 사용했고, 살인범이 착용한 가면 디자인은 야윈 얼굴에 가늘게 찢긴 입모양의 <절규>의 캐릭터를 차용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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