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5일 금요일

1204 사랑에 대한 모든 것 ★★★☆ / 쿼바디스 ★★



* 어떤 점에서 종교적 독단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상반된 2개의 관점을 다룬 영화 2편을 시사회로 같은 날 보게 된 셈이다.



12월4(목) 14시. 왕십리CGV  <사랑에 대한 모든 것 The theory of everything>(2014) 시사회.

별점: 






실존한 위인의 전기를 다룬 영화는 한계점을 안고 출발한다. 유명인를 둘러싼 세간의 전설 때문에 일단 먹고 들어가는 가산점이 있다는 점, 그래서 영화가 그 가산점의 수혜를 과도하게 받는 점, 실존 위인의 천재성이 과장되게 연출되었을 의문과 우려,영화가 끝나고 올라오는 마지막 크레딧에 기재된 그의 업적에 대한 요약 정리 같은 천편일률성 등이 그렇다.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흔히 밟는 전철이고, 스티브 잡스를 삶을 다룬 영화도 같은 레퍼토리를 따랐고, 그래서 인물의 삶을 누추하게 만드는 졸작으로 남았다. 

생존하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어떨까? 영화를 통해 그의 천재성이 과장되게 연출 되었다는 인상을 받진 않는다. 왜냐하면 루게릭 병으로 사지가 마비된 후에도 현실에서 영화가 보여준 것 이상의 천재성을 밝휘한 진짜 천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분장술의 정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 영화를 볼때는 호킹을 연기하는 배우가 <레미제라블>에서 날렵한 청년으로 출연하는 에디 레드메인인줄 몰랐다. 자세히 계속 관찰하니 눈매와 표정에서 에디의 흔적이 읽혔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얼굴의 부피감 때문에 분장을 한 모양이다(위 사진). 

이 영화는 호킹의 전 부인 제인이 쓴 책 <Travelling to Infinity: My Life with Stephen>을 기초로 했다. 모든 전기 영화처럼 이 영화도 인물에 대한 절대 호감도 때문에 관람과 비평의 찬사를 받기 쉽다. 해외 영화 비평 사이트 rottentomatoes도 ★점을 4개씩 줬다. 큰 불평 없이 볼 만 했다. 루게릭 병으로 인체가 뒤틀린 호킹을 정상인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비슷하게 재현하는 점도 높은 가산점이 될 것이다. 이창동의 <오아시스>에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을 재현한 문소리의 감동적인 연기가 배우는 물론 영화에도 큰 가산점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해외에선 어떤지 몰라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호킹의 사생활에 묘사와, 이질적인 가족 관계이다. 수족을 사용할 수 없던 호킹의 집안은 아내가 참여하는 성가대를 지휘한 남성이 보모처럼 집안을 드나들었다. 호킹은 그를 간호하는 전문 간병인과 사랑에 빠졌고, 결국 그와 재혼하며 그의 아내도 성가대 남성과 재혼한다. 재혼까지 도달하기 전에, 호킹의 가정일을 외간 남자가 보모처럼 돌보는 생활을 하는 '대안적인 가정'의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수족이 불편한 남편과 아내. 그 가정을 돕겠다는 어느 외간 남자의 의지. 남자의 개입으로 가정불화로 예상된다는 우려. 이런 불안한 딜레마에 관객으로서 깊은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어디까지 사실인진 알 수 없으나, 동료와의 내기로 호킹은 '펜트하우스' 1년 구독권을 받아보았다고 하며, 그가 급성폐렴에 걸려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계기도 프랑스에서 개최된 바그너를 연주하는 음악회였을 만큼 바그너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가지 더 흥미롭고 인상적인 사실은 호킹이 불편한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무려 3명이나 가졌다는 점. 

영화에서 호킹의 첫부인인 제인이 호킹의 안경 렌지를 닦아주며 "당신의 안경 렌즈는 항상 지저분하더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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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4(목) 14시. 스폰지하우스광화문  <쿼바디스 Quo Vadis>(2014) 시사회.

별점: 


부당한 정치 개입, 교회 세습, 교회 총재의 상습적 부정부패 교인들의 정치적인 우민화 등 개신교의 폐단이 이만저만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문제적 영화이고 만들어 질 필요가 있는 작품일 수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쿼바디스>는 3천억원을 들려 걸립한 사랑의 교회의 새 건물,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의 장기집권과 교회돈 횡령, 삼일교회 전병욱의 성추행 등을 실존하는 교회와 실존 성직자를 다룬다. 개신교계 그룹 이랜드의 노사 갈등 때 노동자들이 사랑의 교회 앞에서 시위를 한 이유가 이랜드 박성수 대표회장이 사랑의 교회 시무장로였기 때문이라는 걸 이 영화로 알았다. 

현존하는 개신교단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일제 신사참배와 1980년 계엄령 당시 조찬기도회를 열어 신군부를 지지한 개신교 원로 성직자들을 다룬 기록 영상물도 보여준다. 현재의 한국 개신교의 비상식을 고발하는 <쿼바디스>의 사회적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다고 하긴 어렵다. 크게 3가지인데, 먼저 영화가 고발하는 개신교의 폐단이 사전에 무수한 시사 방송과 시사 잡지들에서 다뤄왔다는 점 때문에 영화의 신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복습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정보와 고발 내용이 없다시피 하다. 두번째는 대형교회의 성직자들에 문제의 포커스를 맞춘 덕에 이런 부정한 집단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불특정 다수의 신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다. 한국 개신교의 부패와 한국 현대 정치사의 폐단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는, 지목할 수 없는 불특정 신도와 유권자의 존재감인데, 그 가장 중요한 대목에 대한 연출가의 해석이 턱없이 약하다. 

세번째는 <쿼바디스>에서 개신교의 폐단을 지탄하는 측이 대부분 개신교도들이라는 점이다. 부정한 대형 개신교를 개선하려는 개신교내의 개혁세력이 주축이다. 이 영화의 연출자도 개신교도였다고 한다. 한국 개신교가 직면한 문제점은 가시화 된 부패(교회의 토건문화, 성직자와 신도 사이의 종속관계, 교회 세습....)으로 요약될 순 있겠지만, 개신교의 진짜 문제는 인본주의의 공화정 시대에 신본주의를 신념으로 믿는 개신교 자체에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유명해진 종교 비판론이 내부 집단이 아니라, 비종교인 혹은 유명한 무신론자에 의해 지적 된 점을 생각해보자. 아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교회 개혁이기 보다 교회의 해체에 있을 텐데, 그런 과격한 주장을 어떻게 교인이 할 순 없겠는가?  덧붙이자면 교회를 비판하는 <쿼바디스>의 주장이 교조적인 음성에 의지한 것도 보는 내내 불편했다. 패착이라고 본다. 예수까지 재현해서 교회를 성토하는 모습도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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