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8일 작업실을 방문했던(엮인글) 홍장오의 개인전 '코즈믹 라이프'(2014.1215~2015.0111. 아마도 예술공간)의 서문으로 쓴 글. 이번 개인전에 국한하지 않고 작가론으로 썼다.
27개의 UFO_혼합재료_247x438x45cm_2014
마름모 도형에서 발견한 판타지와 자기풍자
반이정 미술평론가
다종다양한 만인의 취향을 도형 하나로 단순하게 흡수하는 간결한 디자인. 마름모형, 이등변 삼각형, 혹은 역삼각형이나 다이아몬드형. 이와 유사한 그 어떤 도형이어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 미확인비행물체인 UFO의 판타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름모나 여하한 삼각형들이 그 자체로 발광하는 판타지를 품은 도형일리 없다. 이 도형들이 UFO로 인식될 때, 단순한 도형 이상의 저력을 사람들이 발견한다는 게 바른 설명일 게다. 이 매혹적인 비행물체 수 십대, 이른바 UFO편대를 목격한 적이 있다. 1984년 어떤 밤. 그날 밤의 목격을 그림과 짧은 글로 기록한 종이가 있었는데, 후일 관리 소홀로 분실했다. 목격담을 기록한 종이의 분실은, UFO처럼 초자연현상을 향한 청소년기 특유의 호기심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내가 1984년 어느 날 밤하늘에서 본 것이 UFO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 밤 본 것은 아마 이동 중인 새의 무리거나,바람에 날려 창공을 비행하는 큰 비닐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내가 본 것이 UFO편대라고 확신했지만, 10년이 흐른 후UFO가 아닐 거라고 거의 확신한다.
인구에 흔히 회자되는 이 매혹적인 도형을 틈틈이 출몰시키는 홍장오의 작업 연보를 살피다가, 1984년 나의 목격 추억이 떠올랐다. UFO를 특집기사로 크게 다룬 청소년 잡지들을 유년시절 많이 접한, 미확인비행물체에 관심을 쏟은 청소년기를 보낸, 그래서 이따금 별이 아니라 UFO를 우연히 목격하고 싶어서 창공을 올려보던 어떤 소년의 집착이 밤하늘의 어떤 물체를 UFO로 착시하게 만들었으리라 추정한다.
전 세계적인 UFO현상은 아마 집단적 착시거나 의도된 사실 조작일 공산이 높다. UFO를 순수하게 믿었던 나의 과거사를 일깨울 단서를 이제 갤러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UFO의 이름과 형상을 차용해서 ‘미확인 된 끝내주게 멋진 물체’로 변형한 홍장오의 UFO(Unidentified Fabulous Object) 연작은 세간의 UFO 현상을 제도 미술계의 현상으로 치환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계에서 온 (아마도 초능력을 지닌) 외계인에 대한 경외감, 발광하는 비행물체에 대한 감각적인 호기심,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선망, 이 모든 판타지는 UFO 촬영 사진으로 보도되는 일련의 진짜처럼 조작한 가짜 사진들의 구체성으로 근거를 얻는다. UFO 목격담 내지 촬영 사진의 절대 다수 혹은 전부가 의도된 조작임에도, 이 날조된 신화를 둘러싼 대중적 믿음과 관심은 지대하고 흔들림이 없다.
빈약한 근거와 불분명한 출처에도 불구하고, 번쩍이는 외관에 대중이 호도되는 일은 실로 많다. 명품 가방을 베낀 불법 위조품이 대로변에서 팔리는 현상, 부정부패를 일삼아서 언론의 지탄을 받는 성직자인데도 천국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그의 초대형교회에 신도들이 몰리는 믿기 어려운 사회상, 미학적 완성도가 의심되지만 지명도 때문에 미술계에서 깊은 신망을 얻는 어떤 미술가들 등도 그렇다. 이런 믿음은 제의의 형태로 반복된다. 홍장오가 2014년 신작에서 UFO코드를 동양 부적으로 재현한 작품은 신비주의나 예술이나 나아가 의사과학이 모두 근거 없는 제의에 의존해서 존재함을 드러내려 한 것이리라. 비단 UFO 연작에 국한하지 않아도 홍장오의 작업 연보는, 악의 없는 집단 착시에 집중해서 그 착시가 만드는 허구적 현상을 다루고 있다.
착시에 대한 홍장오의 관심은 2014년 말 ‘cosmic~’ 연작이 계승하는데, 특히 <cosmic landscape>가 그 백미이다. 이 작품은 어떤 작가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파생된 파편들을 재활용한 입체설치물이다. 완성품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에 어떤 미적 의도가 담겼을 리 만무하지만, 홍장오는 그 무용한 파편을 가공해서 ‘의도를 담은 예술품’처럼 만들어 놨다. 크롬 도금으로 매끄럽고 반짝이는 표면은 미적 가치를 담보하는 것 같으며, 완성품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의 윤곽이 하나 같이 이런저런 형상들을 의도적으로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cosmic landscape>라는 이름으로 나열된 7개의 파편 가운데 손쉽게 연상할 수 있는 파편도 있다. 가령 중절모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형상을 발견한 어린왕자의 상상력을 재현한 파편이 그것이다. 또 인물의 측면을 닮거나, 새의 한쪽 날개를 재현한 것 같은 파편들도 보인다. 어린왕자의 발견에서 보듯, 완결체로 닫힌 해석이 아니라, 관객에게 무한히 열린 해석의 대상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파편들을 던져놓은 점에서, 홍장오의<cosmic landscape>는 뒤샹의 ‘발견된 사물’의 연장선에 있고, 때때로 아무거나 예술로 둔갑시키는 현대미술의 생리에 대한 자기풍자이기도 하다.
예술의 생리에 대한 자기풍자와 미적 유희는 홍장오의 작업 연보 속에 자주 등장했다. 2014년 말에 선보인 신작에도 포함되어 있다. 우연적 발견이 초래하는 미적 유희를 이번 개인전 전시실 한 구석에 마련된 ‘아트샵’에서 반복하고 있다. 스스로를 상품화한 이 자기풍자적 설치공간은 세상에서 어떤 사물이 미술로서 유통될 때 취하는 공식을 차용한 것이다. 그 결과 간이 아트샵을 채운 미술엽서 미술포스터 실크스크린 등은 모두 복제될 수 있는 결과물인데, 예술을 만드는 손쉬운 공정을 사용한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예술로 인정하는 대중의 공모를 아트샵으로 재현한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가 예술이 되는 현상의 배후에는 복잡하기보다 단순한 논리가, 필연보다는 우연적인 사건이 놓을 때가 많으며, 정교한 논리보다 집단 착각이 작용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상의 자기모순이나, 감동주의를 전제한 예술 존재론에 관해 홍장오는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인 것 같다. 조명의 자체 발광 기능을 무력화시키고도 마치 자체 발광하는 조명인양 연출한 <Blackout>(2010)이나, 무언가를 숨기는 위장(僞裝)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되 위장 자체는 투명하게 드러낸 <위장>(2007~) 연작 등이 대상의 자기모순을 다룬 작업일 테다. 대상을 둘러싼 고정적인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이 같은 미적 태도의 계보는 더 멀리까지 간다. 2001년 <탈색>연작이 그 시조일 텐데, 그 연작 중에서 반 고흐의 회화 <해바라기>를 투명한 유리로 만든 입체조형물로 재구성한 작품이 있다. 화사한 색감과 붓질 때문에 유독 모더니즘 예술의 전설로 격상되는 반 고흐를 둘러싼 세간의 맹신에 대한 동시대 미술가의 냉정한 화답 같기도 하다.
이처럼 때때로 황당무계한 예술 존재론은 단순한 마름모 도형을 향한 집단적 열광이 UFO 판타지를 만드는 현상과도 닮아 있다. 홍장오는 집단 열광과 맹신을 간단히 수렴시킬 디자인으로 마름모 도형을 택한 것 같다. 그의 마름모 도형은 UFO, Lucy,때로는 Stealth라는 이름으로 작품 속에 출연한다. 그리고 마름모 도형이 수렴시킨 그의 미학은 “(예술)이 존재하는 공식은 때때로 UFO를 향한 집단적 열광과 닮아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주어가 들어가는 괄호( )의 자리에 ‘신(神)’을 넣어도 ‘사랑’을 넣어도 뜻은 자주 통한다.
Cosmic Bed_나무, 쿠션_ 330x60x150cm_2014
Cosmic Landscape_철 위에 크롬도금_설치가변_2014
비행접시_스테인리스, 멜라민_설치가변_2014
아트숍 Artshop_2014
Welcom Space brothers!_혼합재료_설치가변, UFO착륙장_2014
blackout 01_천정등, 핀라이트_설치가변_2010
투명한 위장-꽃_ 유리벽 위에 매니큐어_설치가변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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