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85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12회.
명품의 자기모순
상좌. 리차드 밀(Richard Mille) 시계를 착용한 제이 지를 포착해서 공유하는 명품 동호회 사이트의 사진
상우. 네덜란드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헤르펜이 디자인한 돔 페리뇽 빈티지 2004의 ‘메타모포시스’의 론칭 파티에 참여한 유명인사들 2014년.
하.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탑승객에게 명품 화장품 다비(DAVI)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전무. 2011년
명품과 예술품은 공유하는 지점을 많이 갖는다.
특별한 소수의 취향을 반영 하고, 그 진가를 누구나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 선망의 대상이며 재료비에 대비해 훨씬 고가에 거래되는 점 등이 그렇다.
명품과 예술품은 소유자의 특권의식과 근거 없는 선민의식을 심어준다. 사용 가치보다 전시 가치나 과시 가치를 위해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실용성 그 이상의 덧붙임이 명품과 예술품이다.
명품과 예술품은 불필요한 잉여의 산물로, 생계 수단을 초월하는 가치를 소유함으로서 일반성과 차별화 된다. 예술품의 기원은 장신구였다. 생존과 무관한 잉여의 산물인 장신구를 제작하는 능력은 높은 구애 능력을 뜻했다. 장신구를 제작하는 자는 높은 적응도 지표를 지닌 셈이었다. 아름다움은 고비용과 숙련도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명품과 예술품은 고등한 지성을 상징한다, 예술은 인간에게 의식이 출현한 인류사의 후반기에 등장했다. 경험과 감정을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홍적세의 인류가 예술을 만들었다.
명품과 예술품은 가진 자의 높은 계급성을 상징한다. 명품과 예술품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완전히 별난 세계’에 대한 증거처럼 보인다.
구매자의 소유 욕구에 의존하기에, 명품은 예술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명품 고유의 속물근성을 희석시킨다. 명품 제조사들은 유명 인사를 모델로 고용하거나, 그들을 제품 론칭 파티에 초대하거나, 제품을 사용하는 유명인사의 사진을 차별성의 증거처럼 홍보한다.
명품과 예술품은 속물근성도 공유한다. 명품을 칭송하려고 영어를 무분별하게 혼용한 문장은 ‘보그 병신체’라는 조롱을 들었고, 예술품을 해석하는 난문과 비문이 뒤범벅이 된 평문은 ‘인문 병신체’라는 쌍생아를 낳았다. 저급이 고급을 흉내 내려다가 발생한 모순된 해프닝이다.
명품과 예술품은 고위층의 천박성을 가리는 위장으로 쓰일 때도 많다. 저급과 고급이 혼재하는 모순된 현상은 사용자의 처신을 통해 확연해진다. 고위 인사의 천박성에 세간의 지탄이 집중되는 까닭은,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서 비난할 수 없었던 명품과 예술품 사용자의 천박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다.
<학이>편에 나오는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아(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 군자다)’는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명품과 예술품의 높은 경지를, 물질성 없이 관념으로 보여준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