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2014 오픈 스튜디오'용으로 작가 전혜림을 스튜디오에서 만난 직후(엮인글) 쓴 작가론.
밤 oil on canvas 73x61cm 2014
나르카디아NArcadia, 나락에서 발견한 위안.
반이정 미술평론가
집단 제의가 만든 주술적인 에로티즘. 포트폴리오가 준 첫인상은 이랬다. 전혜림의 2014년을 대표할 회화 ‘나르카디아NArcadia’의 모든 화면이 잿빛과 어두운 청색을 오가는 죽음의 채색으로 덮인 점이나 모두 불투명한 채색으로 처리 된 점은 우울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반면 잿빛톤이 지배하는 화면 속에서 남녀청춘의 연분홍색 알몸들은 도드라진 포인트처럼 보였다. 이미 죽음을 에로티즘과 혼재시킨 시각예술의 선례까지 있었기에, 나는 전혜림의 2014년 작업들이 죽음과 불행의 정서로부터 역설적으로 비의적인 에로티즘을 읽어낸 작업일 거라고 추측했다. 동물 머리를 뒤집어쓴 채 내달리는 벌거벗은 청춘들로부터 원시의 섹스 판타지와 제의를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다. 결론적으로 작가가 불행의 순간들로부터 알 수 없는 끌림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래서 일종의 불완전한 유토피아를 재현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2014년 ‘나르카디아NArcadia’ 연작은 불투명한 잿빛 배경에 살색 인체들이 도드라진 대조를 만드는 화면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주제의 첫 시도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2014년 상반기에 제작한 ‘나르카디아’의 예비 작품에선 화면에서 원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화면의 구성도 균질적이지 않고 복잡하다. 그래서 본격적인 ‘나르카디아NArcadia’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대비감이 낮은 편이다. ‘나르카디아’에 착수하기 이전에 전혜림은 훨씬 화사한 도회적인 풍경화를 그려왔다. 그래서2014년 ‘나르카디아’는 전혜림의 종래 회화 계보를 중간 정리하고 비약하는 터닝 포인트인 것 같다. 2010년 전후의 회화는 경쾌한 번화가를 중심에 둔 도시 풍경 일색인데, 광각 렌즈의 효과를 고스란히 회화로 번역하거나, 한 화면에 여러 화면을 분할해서 옮기거나,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을 한 화면 속에 재편집한 원색 회화들이 많다. 사진 문화가 영향을 준 시선의 문제를 그리는 이로서 대응한 것처럼 느껴지는 회화 작품이었다.
전혜림의 진술에 따르면 ‘나르카디아’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재난과 불행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어떤 동질적인 태도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현실에 밀어닥친 재난과 불행은 작가의 그림에서 잿빛으로 재현된 부분일 것이다. 반면 암울한 현실 속에서 과도하게 낙관적인 희망을 품는 사람들의 경향은 그림에서 축제에 빠져 알몸 상태로 내달리는 남녀 청춘의 모습으로 반영된 것일 게다. 재난과 사고나 가져온 불행의 무게가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그 불행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상황을 낙관하려 드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작가는 허망함을 느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품 제목을 목자들의 낙원으로 알려진 허구적인 이상향 아르카디아Arcadia에서 따온 것도 같은 이유다. 아르카디아에 부정접사 N을 붙여 만든 조어가 ‘나르카디아’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고전 회화 전통에서 목자들을 위한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아르카디아는 전적인 유토피아를 추앙하는 도상이 아니었다. 아르카디아라는 낙원에서 목동들이 우연히 묘비를 발견하는데, 그 묘비에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비명이 적혀있더라는 게 아르카디아 도상을 둘러싼 설화이다. 아르카디아라는 낙원에조차 죽음이 관여하더라는 교훈을 남기는 전원풍 그림인 거다. 아르카디아는 유토피아를 희구하는 도상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인생무상의 교훈을 담은 아주 오래된 메멘토 모리의 도상이다.
때문에 전혜림이 번역한 아르카디아, 나르카디아는 행과 불행이 교차하는 점만 아르카디아와 닮았을 뿐, 행운의 순간에서 불행(죽음)을 깨닫아 인생무상의 교훈으로 얻게 된다는 아르카디아 도상의 원래 의미를 유보하고 있다. 정반대로 아르카디아라는 도상에 현실 속 불행을 관찰하면서 느낀 자기 해석을 기입했다. 그 결과 나르카디아는 절망적인 불행의 순간에조차 행운이 따르리라 굳게 믿는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심리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행과 불행이 공존하는 ‘나르카디아’라는 주제를 보강하고, 더 깊은 인상을 남기려면 지금보다는 화면 속 감각자극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행과 불행 사이의 대비감을 더 부각시키거나, 행과 불행 중 한 요소의 드라마성을 더 높이거나. 더불어 동일한 주제를 다뤘음에도 여러 ‘나르카디아’ 연작 가운데 두 점의 <밤> 시리즈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매력적인 붓질과 색감이 주는 인상 때문이었다. 불길의 묘사에 불투명한 채색을 두툼하게 옮긴 것이 아르카디아라는 양면적인 이상향의 모습에 호소력을 보탠 것 같았다.
ps2. 덧붙이자면 불행의 조건에서 잘 되리라 낙관하는 마음가짐은 생명체가 진화적으로 습득한 형질일 것 같다. 디스토피아의 심연에서 불가능한 구원을 상기하는 습성이 불행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이를 구해내는 효과를 발휘하리라 생각한다. 낙관과 위안의 자기주문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생존에 유리한 처지에 놓일 테니 말이다.
Metamorphosis oil on canvas 45x37.5cm 2014
narcadia, oil on canvas 145x112cm 2014
narcadia 1, oil on canvas 53x45.5cm 2014
건널목에서 oil on canvas 140x13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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