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화) 11시. 아트나인. <숫호구 Super Virgin>(2012) 시사회.
별점: 보류
B급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 포스터에 낚여 기대감을 품고 시사회를 찾았으나, 기대치를 채워주진 못했다.
2012년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후지필름이터나상을 받은 <숫호구>는 어쩌면 지각 상륙한 C급 무비 같기도 하다. 뭔가 전에 없는 에너지가 터져나올 것 같던 상영 초반부의 실험은 시간이 흐르자 금세 시시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는 건 영화의 자체 완성도보다는, 영화 제작과 연출자의 이력에 얽힌 호사가 일단 작용하는 것 같다.
초저여산 제작, 연출자 개인 경험의 시나리오화, 인천이라는 거주지를 중심으로 연출자의 가족과 지인으로 구성된 배우들. 이같이 연출과 관련된 호사는 충분한 화제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목받을 요건도 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국내에 지각 상류한 C급 무비' 같다는 인상을 받은 건, 대중음악으로 비유하면 1990년대 중반 출현한 황신혜 밴드와 유사한 밴드를 2010년대에 다시 만나는 느낌이랄까. 당연히 신선도가 유지되기 어렵다. 기왕 C급 정서로 갔다면 훨씬 황당무게하게 무너지거나 극단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가야 호소력을 지닐텐데 일정 수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영화가 후반부로 지속될 수록 관람이 지루해진다. <숫호구>는 영화를 만든이들의 아는 친구들이 모여 본다면 관람 내내 웃을 수 있지만, 프로들의 필드에 내놓기엔 다듬어야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B급이건 C급이건 결과적으로 지인들끼리 보자고 영화를 만들진 않을 것이다. 연출자의 연고지인 인천과 지인 네트워크는 데뷔 초반에는 차별점으로 부각될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굴레가 될 것이다.
또 분명히 해두고 싶은 건 B급/C급 문화를 지향한들 영화의 기본기(대사/연기/배우의 캐릭터/시나리오)로부터 완성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데 <숫호구>의 대사와 연기는 대체로 진부하거나 시종 신파조로 흘러 관람의 피로도를 높이고, 선명하게 기억될 캐릭터도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백승기 말곤 떠올리기 어렵다. 시나리오도 B급무비로는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굴레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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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8일(월) 14시. 왕십리CGV. <안녕, 헤이즐 The Fault in Our Stars>(2014) 시사회.
별점: ★★★★
다른 영화 시사회 상영 전에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치아교정기를 한 여성과 젊은남성의 사랑 얘기인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니 여자가 귀에서 코언저리에 얹은 호스는 '호흡기'였고 여성도 남성도 모두 말기에 해당하는 암환자였다. 결과적으로 건강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두 남녀가 사랑에 이르는 이야기인 셈이지만, 또 그렇게 간략하게 요약하기엔 밀도가 높은 편이다. 여주인공 헤이즐이 남주인공 어거스터스와 암환자 모임에서 만나지만, '결말이 지연된' 어떤 소설책을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빌려주면서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설정이 이야기 전개의 단서가 된다. 그 소설책의 저자는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두 남녀가 암스테르담까지 찾아가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 이뤄지지만 큰 실망을 서로 하게 된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방문의 성과는 소설가의 만남을 대신하여 '안네의 일기'의 저자인 살던 집(기념관)을 찾아가 더 큰 결실을 얻는다. (왜 인지는 영화를 보시길)
생존이 위태로운 헤이즐(혹은 어거스터스)이 현실 도피처로 정한 장소가 '결말이 지연된' 허구적 스토리의 소설가가 사는 암스테르담이라는 설정도 의미 있었다.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곳은 현실보다 허구적 시공간이라는 의미 같기도 했고, 또는 현실적 절망감을 맛본 사람에게 허구적 예술이 도피처일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했다.
담배를 필 수 없는 암환자가 불 붙이지 않은 담배를 멋으로 입술로 물고 있는 어거스터스의 '상징적 의사 흡연 행위'은 위기를 극복할 때 누구나 선택할 만한 자기위안책 같기도 했다.
* 오전에 본 <숫호구>나 <안녕, 헤이즐>이나 어떤 점에서 성관계 경험이 전혀 없는 초심자의 첫경험에 관해 다룬다. 결과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꼬시려는 상황이 여럿 나오는데, 두 영화 모두에서 남주인공이 여자에게 "우리 당장 영화나 보러 갈래?"라고 작업을 걸더라. 영화라는 매체가 전 장르에서 가장 선전하는 이유가 이런 사정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 스웨덴 힙합을 함께 듣자며 음악을 튼 소설가에게 헤이즐이 "우리는 스웨덴어를 모른다고요!"고 따지자, 소설가가 해주는 답변이 맘에 든다. 내가 평소 품고 있는 외국어 음악 감상에 관한 포인트이기도 함. "힙합은 가사의 느낌을 캐치하면서 듣는 게 포인트야."
*** 얼마전 관람한 <해적>이나 <해무> 같은 대중영화에 내가 공감을 못할 때는 비평적 안목의 편차 때문이라고 믿는 편인데, 이런 영화에서 10대 후반 남녀가 주고받는 감정 표현에 내가 쉽게 감정이입을 못할 때는 세대 편차(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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