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7일 목요일

16회 서울 변방 연극제

7월16일(수) 저녁. 16회 서울 변방 연극제의 상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캠프 : 사자가된 장소들 미완성프로젝트(한국)+OLTA(일본)'를 보고 왔다. 위치가 가리봉동 126-18으로 표기 되어 있어서, 소극장이 거기 있는줄 알고 갔는데, 상가 건물 한층의 평바닥을 좌석 없는 무대로 전용한 공간이었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서울 변방 연극제'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다만 직접 공연을 관람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어제 본 연극에 <아트 스타 코리아>로 알게 된 유병서씨가 연기자로 참여해서 초대를 해서 찾아간 거다. 프로그램을 살피니 <아스코> 도전자 중 차지량도 어느 연극엔가 출연하고 있었다.  

연극 공연 직전에 가리봉동 시장 일대를 배우들이 한바퀴 거니는 행진이 있었다. 행진의 종착지인 공연장으로 돌아와서 연극이 시작된다. 공연이 끝난 직후 맞은 편 건물 야외 술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나와 일행은 밤 10시경 일어났고, 배우와 스탭들은 더 남아 있었다. 술자리에서 공연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길래 즉흥적으로 내 생각을 들려줬는데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변방 연극제가 생겨난 취지가 그랬지만, 정형화된 연극 무대에 대한 원칙과 기대감을 저버린 작업이다. 아주 신선하진 않았어도 이번 관람을 통해 나의 미감을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도 되었고, 남 다른 체험 인상도 남았다. 정형화된 연극 문법을 저버리는 경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무대와 객석을 구분 짓지 않고, 관객이 앉은 바닥에 나란히 앉아있던 배우들이 돌발적으로 연기에 참여하거나 무대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무대 중심을 밝히는 메인 조명을 자주 꺼둔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무대 전체는 무척 어두웠다. 그러나 생각만큼 관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위치가 다른 여러 조명을 번갈아가며 on/off 조작을 하는데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텐데, 그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각기 다른 전공자들이 모여서 만든 연극인 만큼, 연극의 자기지시성self-reference, 연극이라는 예술 매체성에 대한 자성이 이 이번 연극의 한 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생사가 불명확한 '깊은 잠'을 무력하게 내려보는 단원들의 모습을 연극 마지막 장면에 배치한 것도, 그런 해답없는 자기풍자를 위한 걸게다. 그래서 정형화된 연극을 구성하는 기본 문법들(조명, 대사, 스토리텔링, 발성, 무대-객석의 관계...)을 조금씩 균열 내는 연극이었다.  대사와 연기 중간중간에 신디사이즈 효과음이 뜬금없이 개입하는 것도, 혹은 넝마를 착용한 일본인 단원들이 어슬렁어슬렁 개입하는 것도 균열 중 하나다. 특히 넝마차림 일본 단원이 여기저기 어슬렁대는 모습에서는 한때 국내 학계에서 꽤 유행했던 발터 벤야민의 '산보객' 같은 효과를 느꼈다. 제도권과 거리를 두고 개인주의에 몰입하는 댄디처럼.  

마음에 걸렸던 부분도 있다. 연극 도입부에 가리봉동 일대에 실제 있었던 정치적 사건-아마 노동탄압문제-에 대한 정치적 다짐(가령 "우리에겐 단결만이 남아있다." 같은)이 무척 긴 내레이션으로 흘러 나오는데, 중요한 화두였겠지만 당위적인 선언으로 점철된 대사여서 식상했고 공감하기 힘들었다.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의 내레이션을 장황한 시간으로 전면에 안배한 건 맘에 걸렸다. 또 연출자가 배우들의 연기를 조정해주는 신에서도, 그냥 핵심이 되는 장면 몇개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너무 늘어지는 느낌이다. 

뒷풀이 술자리에서 나는 연극 시작 전 행진이 가리봉동 시장 영업을 방해한다고 투정하는 상인들을 여럿 만난 걸 상기시키면서, 공동체가 이런 실험 연극을 이해할 정서적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꼭 가리봉동 시장에서 할 필요가 있었을까에 대해 얘길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그런 입장은 어쩌면 '수용자 중심주의적 시선'으로 실험 연극을 바라본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상인들이 투정하는 영업방해래야 고작 몇십분 아닌가. 나아가 꼭 현지 거주자들과 교감을 전제하는 입장도 유연성이 낮은 '관성적 수용자 중심주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됐다.  

다만 비록 비제도 연극 미학을 지향하곤 있지만, 배우들의 대사 발성이나 일상적 이야기로 구성된 대사를 좀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대사의 정교함이 떨어지고 발성이 약하기 때문에 관람의 집중도가 자주 분산된다. 

연극무대에서 대사를 내뱉는 유병서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스코> 도전자들 인터뷰 영상에서 유병서씨가 유독 조리있게 답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기왕 가리봉동까지 간 김에, 술자리에서 일어나 인근 구로이마트에 들러 배혜정도가 막걸리 5병을 사들고 귀가했다. 뒷풀이 술로는 영 아쉬워서 집에 도착해서 보드카에 자몽주스를 타서 마셨다. '주5일 이내 음주 결심'에 따르면 이번주는 목금토일 중 이틀만 마실 권리가 있다. 오늘도 마실 일정이 잡혔고, 누나와 미팅하는 일요일도 아마 마실 듯. 그러니 금토는 절주의 날. 내가 이행하는 '주5일 습관' 가운데 가장 지키기 힘든 습관.   


** 어제 본 '캠프 : 사자가된 장소들 미완성프로젝트(한국)+OLTA(일본)'는 7.15(화)~7.17(목)까지 19:30에 공연이 시작된다. 입장료는 일반 20,000원 / 가리봉동주민 및 예술가 10,000원로 구분되어 있으나, 신분확인 절차가 없어서 그냥 예술가라고 말하고 1만원을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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