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7(화)
전문가 지원프로그램 (11시30분. 금천예술공장)
스페인 비디오 아트 전시 Languages and Aesthetics of Spanish Video Art (2014.0512~0619 대안공간 루프)
0621(화)
파티 (19시. 토마스파크)
0625(수)
아트스펙트럼 2014 (2014.0501~0629 리움)
홍순명 '스펙터클의 여백' (2014.0628~0828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0626(목)
공공기관 및 기업대상 교육 '미술공감연수' (14시30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최만린, 조평휘 전시 관람
0630(월)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소득세 집합교육-특강 (17시. 여의도 동화빌딩 6층-한국경제TV강의실)
전문가 지원프로그램(금천예술공장)
마케도니아 태생 작가 Oliver Musovik을 상대로 멘토링.
전문가 지원 프로그램은 입주작가와 멘토링 미팅을 한 후, 짧은 촌평을 남기는 것이다. 내가 맡은 작가는 마케도니아 태생 올리버 무소빅으로 금천예술공장에서 서너달 가량 체류하며 작업을 한다고 했다. 무소빅에 대한 촌평을 전부 남길 필요는 없고 그중 일부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그의 작업의 성격은 그의 개인 웹사이트와 전문가 프로그램 미팅에서 확인한 사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관찰을 통해 비평의 한계를 감안하고 얘기한다면, 무소빅의 작업은, 내국인으로서는 파악하기 힘들었을 한국인의 보편적인 생활 패턴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수집한 결과물이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작가 노트나 미팅에서 그가 직접 들려준 해설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었는데, 가령 길가 여기저기에 무심히 버려진 빈 캔들을 추적해서 수집하듯 사진기에 담은 연작이 있다. 이 작업은 쓰레기통에 있고, 경범죄에 해당되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슬쩍 남겨두고 가는 한국인의 습관을 관찰한 결과이다. 이런 관찰을 통해서 무소빅은 한국인이 너무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나 혹은 일에 쫓기는 삶이 이런 ‘쓰레기 투기’를 낳았다고 풀이했다.
(중략)
이런 작가의 해설에 대해 나는 한국인으로서 너무 친숙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도시 광경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제시한 점을 높게 샀다. 하지만 개선되어야할 점으로 작품 설명 노트나 작가의 직접 해설을 듣고 나서야, 작품의 의도를 ‘사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부분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보완이냐면 작품 설명 노트는 필요하지만, 먼저 일련의 사진 연작을 보는 것만으로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30% 정도는 추론할 수 있게 만드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주변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국인에게 본인의 작품을 보여준 후, 그들이 작가의 설명이나 작가 노트 없이도 작품의 의미를 50% 이상 추론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조언했다. 올리버 무소빅에게 현재 필요한 요건은 정교한 작업 해설이나, 작가의 직접 해설보다는 작품의 이미지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비디오전시(루프)
추천 받은 작품 뿐 아니라, 전시 중인 영상물 중 다수는 저해상도 화면을 조악하게 편집한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 발표 당시에는 격찬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뉴미디어 작품은 매체를 시의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은 높게 살 수 있는데, 언제나 너무 빨리 구식이 되어버린다는 풀 수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파티(토마스파크)
파티(토마스파크)
전시 오프닝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일명 프라이빗 갤러리를 처음 가봤다.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을 지향하는 점에서 여느 전시회 오프닝과 같다. 일반적 전시와 다른 점이라면 미술계 인사 외에 다른 분야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아트스펙트럼2014(리움)
전시 종료 4일을 남겨두고 느지막 아트스펙트럼2014를 찾았다. 아트스펙트럼 2014는 세월호 참사로 개막식이 취소된 전시 중 하나였고 그래서 계속 관람을 잊고 있다가 이 지경까지 됐다. 내가 리움을 찾은 6월25일(수)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문화가 있는날-로서, 관람료 할인 혜택을 받는다.
* 작업노트나 해당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전혀 참조하지 않고 남기는 촌평은 이렇다.
건축가인 친아버지와 협업으로 작업을 진행한 장현준은 영상 속 내레이션, 퍼포밍, 전체 연출을 맡은 것 같다. 전시장에는 가건물처럼 전시장 공간을 점유한 구조물이 들어섰고, 미술관 벽과 기둥에 자잘한 메모와 낙서를 남겨, 자기 삶의 밀도를 공간에 밀착시켰다. 아버지와의 협업으로 건축가인 아버지의 직업을 이해하는 과정도 담았고, 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유사성 고백하는 대사도 나온다. <필름3> 영상에서 직업(건축)에 관한 장황한 해설, 그리고 교조적인 어투는 관람을 방해하는 요인 같았다. 나머지 작가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배당 받은 드넓은 공간과 리움의 권위 때문에 작가가 부담을 느낀 탓일 것이다.
말레비치를 인용한 <원을 그리며 뒤로 달리기>, 그리스 도리아풍 기둥이나 1점투시법, 기본 도형으로 구성된 화면으로 구성된 <패턴 원근법 연구> 그리고 <풍경화 연구> 시리즈 까지 제니 조는 일관되게 회화의 기본 문법을 작가로서 천착한 해석을 내놓은 것 같다. 학구적인 몰입이 전작품에서 느껴지는데, 벽면 하나를 채운 도안/공식은 회화를 지배하는 작가 나름의 도안/공식이거나 일종의 각주처럼 보였는데 해독하기 어려워서인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오디션 열풍이 남긴 남녀의 젊은 낙오자를 다룬 박모나는 젊은 미술가들이 처한 상시적인 형편을 그 둘을 통해 투사한 것 같다. 만일 그게 맞다면 다큐멘터리 영상 형식으로 다룬 남성 개그맨 응모자1인과 여성 가수 응모자 1인의 인터뷰와 연출된 오디션장면이 일반 시사다큐가 다루는 동일한 내용의 방송(이 있다면)로부터 어떤 변별점을 지닐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매스미디어 사회에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결과물과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 사이의 경계가 거의 무의미해는 현상은 박모나 말고도, 송호준에서도 느껴진다. 아동용 프로그램 진행자를 연기하는 작가의 영상물과 유리 부스에 인공위성 퀴즈쇼와 조악한 경품 따위를 넣은 설치물에서 어떤 비평적 유모를 찾을 수 있는지, 혹은 나 아닌 다른 세대에게만 특정한 미감이 표현된 건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단조롭고 완벽한 형태의 설치물을 내놓은 천영미의 작품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늘의 미감으로는 논평 지점을 찾기 어려운 것 같다.
김민애의 설치물의 경우는, 전시장의 공간 일부를 차용한 장소특정적 설치물이 새로운 시도랄 순 없지만, 리움 전시장의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와 건물 사이에 거대한 유리창을 작업으로 반복시킨 작업이나, 전시장 벽위에 새 벽을 덧붙이듯 가설한 <세 작가>가 지니는 모호한 의미가 호기심을 일으킨다.
촬영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이완을 제외하면 나머지 작가들이 모두 2014년 신작을 내놓은 반면에, 딱 한점의 대작만 2014년이고 나머지는 2013년 작업으로 채운 이은실. 여지껏 불명료한 메시지가 부풀린 무정형의 성적 메타포와 화면 안의 건축적 구성은, 2014년 신작에서는 지형지물로 드러난 교미하는 거대한 동물 군상으로 변했고, 2013년 작업들에서도 화면을 꽉 채운 육면체로 드러났다. 종래의 호기심이 모두 해결된 국면이랄까. 결국 차츰 명료해질 수밖에 없는 도상들이었지만 이렇게 죄다 해결되었으니 다름 진로를 어떻게 진행할 모르겠다.
스틸 사진과 입체 설치물을 함께 가져간 정희승은 <끝나지 않은 문장>에서 화면 일부를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대위법적 구성의 일부를 미완인 채로 남겨뒀다. 기우뚱하게 층층 쌓아올린 사진 설치물도 스틸 사진의 여백 처리처럼 고의적인 엔트로피인 것 같다. 사진 속에 대위법적으로 배치된 대상은 더러는 한쌍처럼 보였고, 일부 사진은 위아래가 뒤빠꿔서 길을 잃게 만든다. 아마 심사 때에는 작가노트도 함께 작품이 제시 되었겠지만, 작가 노트 없이 작품을 날로 보는 나같은 처지에서는 포인트를 쉽게 찾기 어려운 주관적인 내레이션처럼 읽힐 수 있다. (세세한 논평은 조만간 작가를 만날 일 생겼으니 그때 나누기로...)
심래정의 종래 자잘한 애니메이션 작품은 잘 봤는데, 거대한 스크린 셋으로 구성된 짧은 영상은 논점을 잡기 어려웠다. 심래정의 작품은 부담감이 만든 사이즈 증폭 같기도 했고, 일반적 애니메이션과의 편차 만들기라는 중요한 과제를 새삼 확인시키다.
아트스펙트럼 이번부터 작가상을 주는데 1회 수상자가 이완이다. 마이클 프리드는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을 비판했을 때에는 작품만의 몰입성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미술이 다른 장르처럼 변하면서 순수성이 훼손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마이클 프리드가 비판한 '관객이 개입하는' 연극성은 이제 관객의 개입 없이도 작품 스스로 시간 예술로 연장되는 자발적 연극성이 되었다. 너무 많은 비디오 영상과 너무 많은 해설적 자막 때문에 이완의 작품은 심사에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 되었지만, 그가 당선자가 됐다. 척박현 현장의 미술 작가가 지닌 적응력과 작가적 진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딴 것 같다. 하지만 내레이션으로 자주 들리는 세상사의 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소회는 좀 식상했다. 거국적으로 변하는 세상에 작가 개인이 내놓을 수 있는 논평은 아마 이 정도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홍순명(미메시스뮤지엄)
미팅 때문에 방문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에서, 전시 개막이 3일 후인 홍순명 개인전을 미리 보고 왔다. 설치가 모두 끝났다고 해서. 일기처럼 꾸준히 완성했을 소품들이 벽에 엄청나게 붙어있다. 그렇지만 소품들의 총합을 통해 어떤 이야기의 감을 잡을 순 없다. 왜냐하면 소품 캔버스는 필시 작가가 보도사진이나 광고사진을 옮긴 것 같은데, 인용된 사진의 부분을 옮겨왔기 때문에, 그림의 이야기는 모두 단절되어 있다. 이런 잘려나간 이야기, 미완의 이야기를 수년전부터 평면회화 작업에서 자주 만난다.
강연(국립현대미술관)
강연(국립현대미술관)
공공기관 및 기업대상 교육으로 대상은 이번에 새로 채용된 국회 사무처 직원들.
약간 일찍 도착한 나는, 강연 직전까지 7월초에 끝나는 최만린, 조평휘의 개인전을 봤다.
무수한 공공조형물로 만들었지만, 최만린의 연대기을 따라가면 자코메티와 서구 미니멀리즘 조각의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브랜드가 된 최만린의 '태'는 1979년 제작된 이래 약간의 변형들을 낳으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2014년 혹은 1990년이후 이런 미학적 형상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가 될 지 알 수 없었다.
조평휘의 운산 시리즈에서는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를 동양화로 번안한 효과가 느껴졌다.
강연(동화빌딩)
어찌 이런 일이. 더러 일반인 강의를 해주는데, 이번 강의는 첫날부터 약간 멘붕. 이 강연은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부록처럼 삽입된 교양 강연이어서 수강자들의 자발성이 전혀 없다. 뭐 그럴 수 있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미술에 관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한지 깨닫는 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진짜 멘붕인 이유는 그 다음이다... 설상가상으로 내게 강의를 부탁한 아는 분이 지방세 연구원들 대상으로 총 5회 '연속 강연'이라고 일러줬는다는 것. 내심 이상했다. 지방세를 연구하는 공무원들이 왜 현대미술을 무려 5회나 연속으로 들어야할까하고.... 의사전달이 잘못 된 거였다. 순진하게 믿고 총 5회 연속 강좌를 준비해 갔는데, 첫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수강한 연구원 한분이 자기네들은 딱 한번 수강하고 끝난다고 하더라. 다시 말해서 총 5팀의 다른 연구원들에게 내가 동일한 강연 5회를 해주는 강의였던 거다. 어찌 이런 일이. 아는 분의 부탁이어서 거절도 못하고 수락해 버렸는데, 지방세를 연구하는 공무원들에게 현대미술을 가르치러 매주 월요일 저 강의실로 향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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